[테마 베이스볼] 괴물 류현진도 못던지는 구종 있다고?

입력 2012-03-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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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스포츠동아DB

류현진. 스포츠동아DB

겨우내 땀흘려 연마한 신무기…실전서 왜 안통할까


서클체인지업 2개월만에 장착 류현진
“공 들인 슬라이더는 아직도 성에 안차”
정우람은 커브만 7년째…“실전용 미흡”

새 구종 익히기 투수들 2∼3년 구슬땀
선수들마다 구종 궁합 달라…폼도 변수


스프링캠프가 끝났다. 겨우내 반복되는 투수들의 화두는 새로운 구종의 장착이다. SK 정우람은 “직구에 확실한 변화구 2개만 있어도 A급 투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투수들이 구종 추가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하지만 시즌종료 시점에서 평가해보면, 스프링캠프에서 말한 신형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투수들이 많지 않다. 구종과 투수 사이에도 궁합이 있기 때문이다.


○수개월 만에 연마하는 구종, 수년이 걸려도 안 되는 구종

대한민국 최고로 꼽히는 류현진(한화)의 서클체인지업. 하지만 류현진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 공을 던지지 않았다”고 했다. 데뷔 첫 시즌을 준비하면서 익힌 것이다.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는 “실전에서 사용하기까지 약 2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했다.

정우람(SK)을 최고의 불펜투수로 등극시킨 구종도 서클체인지업이다. 정우람은 “주로 직구와 포크볼을 사용하다가, 2007년 여름부터 서클체인지업을 익혔다. 서클체인지업 장착까지는 3∼4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했다. 결국 2008시즌부터 그는 한 단계 도약했다.

하지만 정우람도 커브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갸웃한다. 6∼7년 째 시도하고 있지만, 실전용으로 가다듬지 못했기 때문이다. SK 이영욱 역시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6∼7년 째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테스트 중이다. 서클체인지업을 던지기 위해 직구그립, 투심그립, 투심변형그립까지 써봤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연습 때 던지는 것과 실전에서 던지는 것은 천지차이다. 보통 새로운 구종을 익히려면 2∼3년은 걸린다. 장원준(경찰청) 역시 체인지업을 장착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박희수의 투심 역시, 그가 상무에서 2년간 공들인 결과물이었다.


○내 몸에 가까운 구종

투수들은 보통 “손끝 감각이 좋아야 변화구도 빨리 익힌다”고 말한다. 류현진과 윤석민(KIA) 같은 투수들이 부러움을 사는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효봉 해설위원은 “천재성만으로 구종 장착에 걸리는 시간을 환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류현진이 천재라서 서클체인지업을 빨리 익혔다면, 슬라이더는 왜 자신의 성에 차지 않겠느냐”는 설명이었다. 류현진이 던지는 슬라이더 역시 수준급이지만,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평가한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자신의 신체적 특징과 폼에 맞는 구종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작년 포스트시즌에서 맹위를 떨친 윤희상(SK)의 포크볼이 한 예다. 윤희상은 지난 여름 무심코 던져본 포크볼이 잘 먹혀, 실전에서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유난히 길고, 손가락 사이도 보통 선수보다 잘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포크볼에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신체적 특징이다. 정우람은 폼과 구종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커브볼은 위에서 아래로 던지는 정통파 투수가 유리하다. 하지만 난 정통파와 스리쿼터의 중간 형태다. 지금은 커브볼보다 느린 슬라이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점이 높은 최동원의 주무기가 커브였고, 상대적으로 타점이 낮은 선동열(KIA 감독)의 주무기가 슬라이더였던 것도 맥을 같이 한다.
SK 윤희상이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도중 자신의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손가락 사이도 보통 선수보다 잘 벌어진다. 포크볼에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신체적 특징이다. 오키나와(일본)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SK 윤희상이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도중 자신의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손가락 사이도 보통 선수보다 잘 벌어진다. 포크볼에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신체적 특징이다. 오키나와(일본)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그립보다는 그립감

명품 슬라이더를 던지는 김광현(SK)에게 “선동열 감독의 슬라이더 그립을 본적이 있냐?”고 물으면, “그립이 중요한가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투수들은 “똑같은 그립으로 던져도 공의 궤적은 다를 수 있다. 공을 손에서 뺄 때의 그립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윤희상은 포크볼을 던지기 위해 여러 투수들에게 그립감에 대해 물었다. “카도쿠라(전 삼성)의 포크볼은 위에서 아래로 쑥 빼는 감이라고 하더라. 나는 공이 손에서 빠질 때, 공이 중지 안쪽에 걸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중지 안쪽에 굳은살이 박혀 있다. 내게는 일종의 변형 포크볼이 잘 맞았다”고 했다. 싱커성 궤적을 보이는 윤희상의 포크볼은 상하변화 뿐 아니라, 좌우변화도 크다.

공을 빼는 감각의 차이 때문에 변화구 장착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도 있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공이 가는 방향이 다르다. 팔의 감각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어차피 투수가 훈련 과정에서 공을 던지는 개수는 한정돼 있다. 새로운 구종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그 공을 던지는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 해설위원은 “이 과정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구종의 감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화구를 많이 던지면 직구구속이 떨어진다”는 속설도 같은 맥락에서 기인한 것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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