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미우리의 에이스였던 재일교포 김일융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서 3년간 54승을 기록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다시 부활에 성공했다. DB
“병살타 쳤어도 고개 숙이지마”
넥센 정신교육이 승승장구 한몫
잘하는 선수가 갑자기 슬럼프?
김기태 박흥식 김일융 등 거목들
“승리의 제1조건은 여유와 자신감”
‘축구의 전설’ 펠레가 부진에 빠졌을 때다. 예전처럼 축구가 흥미롭지 않았다. 당연히 슬럼프가 왔다. 심리상담을 받았다. 의사가 결론을 내렸다. 처음 축구를 하던 어릴 때를 되돌아보라고 했다. 펠레는 브라질 해변에서 맨발로 공을 차던 때를 기억해냈다. 의사는 그 때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뛰놀던 축구로 돌아가라고 했다. 스포츠는 즐거운 것. 펠레는 결국 의사의 처방대로 축구를 즐겁게 받아들였고 성공했다.
○야구가 멘탈 스포츠인 이유
야구가 다른 스포츠와 다른 점은 여러 가지지만 결정적 차이는 득점방법이다. 대부분은 공이 득점을 하지만 야구는 사람이 한다. 공은 물리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선수가 실행을 하면 변화가 없다. 변수가 적다. 반면 사람은 다르다. 홈까지 뛰는 도중 생각을 한다. 큰 변수다. 야구에서 멘탈이 중요한 이유다. 1987년 9월 29일 MBC는 청보와의 시즌 막판 중요한 경기 연장 10회 2사 1·2루서 신언호의 2루타 때 1루 대주자 김우근이 3루를 돌아 홈에 들어오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아웃되는 바람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뒷날 김우근은 “감기로 약을 먹은 상태였는데 느닷없이 대주자로 나가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야구가 즐거운 선수, 괴로운 선수
잘하던 선수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면 구단은 집안 사정부터 살핀다. 십중팔구는 여자문제, 금전문제가 나온다. 그 밖에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본프로야구는 팀마다 독특한 일을 하는 직원이 있다. 대부분이 전직 경찰 출신으로 사무실에도 출근하지 않는다. 이들은 선수들이 꽃뱀이나 도박단, 폭력조직의 유혹에 넘어가 어려운 상태에 빠지기 전에 은밀히 예방활동을 하고 첩보를 모은다. 선수들의 경기조작으로 대한민국 프로스포츠가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 우리 구단은 실감했을 것이다. 선수들의 경기장 밖 생활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는 것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사생활을 침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선수가 법의 테두리를 넘어가려고 할 때 호루라기는 불어야 한다.
○좋은 타자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다!
예상을 깨고 순항하던 LG 김기태 감독의 타격 지론은 여유와 자신감이다. “주전 타자는 한 경기에서 대충 14개의 공을 볼 수 있다. 이 중에 하나만 잘 치면 성공한다. 부정적인 결과에 지레 겁을 내거나 감독, 코치에게 의존해선 좋은 타자가 될 수 없다.” 경기당 4타석에서 하나의 4사구나 희생타가 나오고 3타수 1안타를 친다는 가정 아래, 한 타자가 평균 볼 수 있는 투구수가 그렇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투수들은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한다.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로 갈수록 심리전에서 타자가 불리하기에 초반의 공이 좋을 수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슬럼프에 빠진 타자는 여유가 없다. 자신에게 있는 14번의 기회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나 잘못됐을 경우를 먼저 생각한다. 방망이가 약한 팀이나 연패에 빠진 팀 일수록 소극적 공격을 하는 이유다.
넥센 박흥식 타격코치. 지난해와 올해 넥센 타자들이 가장 달라진 점으로 “레이더가 없다”고 했다. ‘레이더’는 삼진이나 병살타를 친 타자가 덕아웃으로 돌아오면서 감독이나 코치의 눈치를 살피며 눈을 굴리는 것을 말한다. 선수용 속어다. 박 코치는 과감하게 배트를 휘두르고 결과가 나쁘더라도 고개를 쳐들고 들어오라고 했다. 요즘 넥센 타자들 가운데 삼진을 먹었다고, 병살타를 쳤다고 고개를 숙이는 선수는 없다.
○선수가 고개를 들어야 하는 이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삼성에서 뛰면서 54승20패, 방어율 2.58을 거둔 왼손투수 김일융. 요미우리의 에이스였지만 ‘괴물투수’ 에가와 스구루에 밀려 설 자리가 없자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수 아래의 한국야구에서 새 경험을 한 김일융은 부활에 성공해 다이요 웨일즈로 컴백했다. 김일융은 삼성을 떠나면서 후배이자 동료였던 김시진, 성준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마운드에서 일찍 내려오더라도 절대 머리를 숙이지 말라. 에이스는 그래야 한다. 아침도 꼭 챙겨먹어라.” 투수가 난타를 당할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자존심을 지키라는 얘기다. 타석에서 과감하게 배트를 돌리고 결과에 겁먹지 말라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고(故) 최동원이 위대했던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건 마운드에서 최고 투수로서의 자존심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존심은 선수 스스로 만든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