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유럽연합 위원회가 부과한 불공정거래 벌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인텔은 최근 룩셈부르크 유럽연합 2심법원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유럽연합 위원회는 입증책임(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라며, “인텔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방해했다는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므로 벌금도 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는 유럽연합 위원회가 제기한 불공정거래 행위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인텔은 전 세계에 걸쳐 AMD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대가로 리베이트(지불대금 중 일부를 환급해주는 행위)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은 바 있다. 리베이트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경쟁자를 방해하는 행위는 반독점법에 위배된다. 지난 2004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인텔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라며 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으며, 2008년에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약 266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었다. 이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제소했다. 유럽연합에서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는데, 그 금액이 유럽연합 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인 10억 6,000만 유로(한화 약 1조 6,000억 원)에 달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인텔측은 결백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일종의 할인 정책이었을 뿐, AMD의 진입을 봉쇄하지는 않았다는 것. 따라서 불공정거래에 대한 시시비비는 ‘인텔이 정말로 PC 제조업체들에게 AMD의 제품을 쓰지 말라고 요청했는가’에 달렸다. 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은 유럽연합 위원회에 있는데, 그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게 인텔의 주장이다.
심증은 있지만 결정적 물증이 없어
인텔의 변호사 니콜라스 그린(Nicholas Green)은 유럽연합 위원회의 조사 과정에 결함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2006년 PC 제조업체 델 관계자들이 “AMD 제품을 쓰지 않은 이유는 성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인텔에 유리한 증언을 했지만, 이 내용을 고의적으로 누락했다는 것.
공청회에 참석한 PC 제조업체 레노버 관계자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는 “2007년 인텔과 맺은 계약은 배타적 계약이 아니었다”라며, “레노버 내부에서 AMD가 사업 파트너로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라고 증언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AMD가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인텔에게 힘을 실어줬다. 인텔은 AMD와의 치열한 법정 투쟁 끝에 12억 5,000만 달러의 합의금을 건넸고, 이에 대해 AMD는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던 소송을 일제히 취하했다. 논쟁의 당사자 AMD가 사건에서 손을 완전히 뗀 것이다. 인텔측은 “유럽연합 위원회가 AMD로부터 어떠한 내부 문서를 전달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텔의 결백을 입증해 줄 간접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 위원회는 당시 계약에 참가한 PC 제조업체들의 임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들을 공개하며 반박에 나섰다. 이 문서에는 “AMD 노트북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면 인텔의 보복을 당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PC 제조업체들은 AMD 제품을 계속 생산하길 원했지만, 인텔측의 압박 때문에 부득이하게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유럽연합 위원회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업체 내부에서 주고받은 문서일 뿐, 인텔이 AMD 제품 생산을 방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밑져야 본전인 인텔, 소송 끝까지 갈 듯
4일간에 걸친 공청회는 끝났고, 인텔과 유럽연합 위원회는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벌금이 줄어들 거나, 벌금이 완전히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와 유럽연합 위원회의 불공정거래 법정 공방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패소했지만, 벌금은 다소 줄어든 바 있다. 인텔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다. 만일 인텔이 2심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유럽연합의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에 상고할 수도 있다.
지난 수년간 인텔은 리베이트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잃었다.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자신들보다 작은 회사인 AMD에 합의금까지 건네는 굴욕을 맛봤다. 이번 재판을 통해 잃어버린 명예와 금전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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