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이범영 “승부차기? 이제까지 딱 3번만 졌죠”

입력 2012-08-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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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영(왼쪽). 스포츠동아DB

승부차기 승부사, 그 웃음과 눈물

상대선수 자극하려 늑장 골킥…계산된 경고
승부차기서도 과장된 동작으로 신경전 벌여


U-20월드컵·광저우亞게임 실수 단번에 만회
“잘 막는 비결요? 은퇴 후 제자들한테만 공개”


훈련이나 경기 후 선수들이 믹스트 존(공동취재구역)을 통과할 때 후보 골키퍼 이범영(23·부산·사진)을 잡는 기자는 없었다. 그는 후보 선수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덜 받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기회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5일(한국시간) 영국과 올림픽 남자축구 준결승 후반 도중 주전 골키퍼 정성룡(27·수원)이 상대와 공중 볼 경합을 벌이다 쓰러졌다. 부랴부랴 이범영이 투입됐다. 이후 연장과 승부차기로 이어진 피 말리는 승부가 끝난 뒤 히어로는 이범영이었다. ‘별’로 우뚝 선 그는 “승부차기는 잘 막는다니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웃음 뒤에 눈물 자욱이 어른거렸다.


○계산된 신경전

이범영은 영국 5번째 키커 스터리지 슛의 방향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골문 왼쪽으로 몸을 비호같이 날려 손으로 쳐냈다. 영국 팬 7만 여명의 함성을 일순간 잠재웠다. 승부차기 5-4 승.

이범영은 연장 후반 막판부터 승부차기로 갈 것을 예감하고 신경전을 벌였다. 골킥을 찰 듯 말 듯 하다가 거센 야유 속에 경고를 받았다. 4강에 오르면 8강까지의 경고 1장은 소멸되기에 피해볼 일은 없었다. 승부차기에서도 상대 키커가 볼을 차야 할 위치에서 어슬렁대다가 주의를 들었다. 골문 앞에서 과장된 동작으로 상대를 자극했다. 다 계산된 것이었다. “제가 키가 크고 덩치도 좋은 편이라 골문을 최대한 좁아 보이게 하려는 작전이었죠. 막상 승부차기 들어간 뒤에는 즐겼고, 본능적으로 움직였어요. 지금까지 승부차기 딱 3번 밖에 안 졌거든요. 자신 있었어요. 비결이요? 일급비밀입니다. 은퇴한 뒤 제자들에게 가르쳐 줄래요. 하하.”

키커 스텝을 유심히 보는 게 비결 중 하나다. 이범영은 2009년 7월 성남 일화와 컵 대회 8강 2차전 승부차기에서 상대 6번째 키커 라돈치치의 슛을 침착하게 막아내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언론과 인터뷰 한 토막.

“상대 키커 스텝의 보폭을 보고 방향을 정합니다. 오른발잡이가 보폭을 크게 띄운 채 달려오면 오른쪽 방향일 확률이 높죠. 달려오면서 왼쪽으로 꺾어 차기는 쉽지 않거든요.” 이후 3년 동안 그의 눈과 반사 신경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2전3기로

이범영은 2전3기만에 메이저 대회 트라우마를 깨끗하게 털어버렸다. 첫 번째 시련은 2009년 U-20 월드컵. 이범영은 카메룬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 선발로 나섰지만 중거리 슛을 잡으려다 빠트리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분위기를 뺐긴 한국은 0-2로 패했다. 한국이 8강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김승규(울산)가 계속 골문을 지켰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때 또 악몽을 겪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확률이 높아지자 홍 감독은 연장 후반 막판 이범영을 투입했다. 2분도 지나지 않아 통한의 결승골을 내줬다. 이범영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비난의 화살이 그에게 쏟아졌다.

이범영의 휴대폰 끝자리는 ‘2012’다. 그만큼 런던올림픽 출전의 의지가 강했다. 여론은 냉정했다. 와일드카드 정성룡을 뺀 1장은 김승규(울산)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최종 낙점된 건 이범영이었다. 홍 감독은 이범영의 대범함을 믿었고,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줄곧 골문을 지켜 준 공로를 인정했다.

이날 영국을 누른 뒤 쏟아낸 눈물에는 그의 회한이 담겨 있었다.

“아시안게임 때 안 좋은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선수들 다 울었어요.”

카디프(영국)|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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