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슬링 8년만의 金 김현우의 불꽃 투혼
오른손 엄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5월 어느 대회에서 다친 뒤 ‘인대가 조금 늘어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게 화근이었다. 런던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1일. 통증이라도 줄이고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뼛조각이 인대와 함께 떨어져 나와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올림픽 출전도 무리란다. 진단명은 오른손 엄지 중수골 내측 골절. 8일 영국 런던 엑셀 레슬링 경기장에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급 챔피언에 오른 김현우(24)는 자칫 올림픽에 출전조차 못할 뻔했다.○ 아들 위해 영양탕집을 운영하다
김현우의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됐다. ‘어떻게 찾아 온 인생 첫 번째 올림픽 무대인데…. 태릉선수촌에서 가장 고되다는 훈련도 버텼는데….’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심지어 그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직접 영양탕집을 운영하셨다. 운동선수 아들의 체력증진을 위한 음식을 손수 챙기기 위해서였다. 운동선수 자녀를 둔 부모들이 보신 음식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는 에피소드는 흔하지만 직접 보신음식점까지 차린 것은 이례적이다. 아버지 김영두 씨(60)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현우는 초등학생 때 유도를 하다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 유도로 진학할 학교가 없어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유도를 할 때보다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현우에게 영양탕을 먹였는데 효험이 좋았다. 불교 집안이라 고기를 잘 안 먹지만 현우만은 좀 더 풍족하게 먹이고픈 마음에 가게까지 냈다.”
○ 손가락 골절 숨기고 뛰기로 결심하다
숨겨야 했다. 선수 생명이 단축되더라도 참고 뛰어야만 했다. 함께 병원에 간 소속팀 삼성생명 주무 김종대 씨는 올림픽 출전을 말렸지만 김현우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까지만 비밀로 하자고. 김현우는 소수의 관계자들을 제외하곤 주변에 골절 사실을 숨긴 채 런던행을 감행했다. 심지어 대표팀과 소속팀 지도자들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보고하지 않았다.
경기 날이 다가왔지만 손가락은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대진표’까지 받았다. 방대두 대표팀 총감독은 “대진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현우는 오른손 손가락을 테이프로 감고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손가락에 힘이 없어 맞잡기 기술을 적극적으로 쓰지 못했다. 맞잡기는 유도의 잡기처럼 기선 제압에 필수적인 기초 기술이다. 상대는 테이프를 감고 나온 김현우의 손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설상가상으로 김현우는 1, 2회전에서 상대와 충돌해 눈을 다쳤다. 눈은 점점 부풀어 올라 준결승부터 오른쪽 시야를 가렸다.
○ 불운과 행운이 교차하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 행운이 뒤따랐다. 결승에서 김현우와 만난 터마시 뢰린츠(헝가리)가 금메달 후보들이었던 프랑크 슈테블러(독일), 저스틴 레스터(미국), 마누차르 츠하다이아(조지아)를 차례로 격파하고 올라온 것이다. 주요 대회마다 김현우의 발목을 잡았던 사이드 무라드 압드발리(이란)도 8강에서 탈락했다.
결승전은 사실상 김현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부러진 손가락, 퉁퉁 부은 눈. 금메달을 알리는 종료 부저가 울리자 엑셀 레슬링 경기장에 모인 체육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정지현 이후 8년 만에 나온 레슬링 금메달이었다. 김현우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경기장에서 큰 절을 올렸다. “하나도 보이지 않고 부상 부위가 거슬렸지만 정신력으로 경기 했어요. 이 금메달은 저 혼자 딴 게 아닙니다. 부모님. 지도자 선생님들, 동료들 감사합니다.”
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