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은 대선 때 정몽준 띄웠는데… 2012 올림픽은 안철수 편?

입력 2012-08-1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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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대한축구협회)가 만든 운동장에 와 보시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2002년 9월 중순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 행사.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월드컵 열풍을 타고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를 넘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턱 밑까지 추격하던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은 “정몽준! 정몽준!”을 연호했고, 옆에 있던 노 후보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에 따르면 9월 평균 정 의원 지지율은 31.4%로 노 후보(20.7%)를 제치고 이 후보(35.1%)의 지지율에 육박했다. 이후 정 의원은 지지율 거품이 빠져 그해 11월 노 후보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노무현 단일후보’가 탄생했다. 월드컵이 2002년 대선 정국의 결정적 변수 중 하나로 작용했던 셈이다.

상황과 주자는 바뀌었지만 10년이 지난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올림픽이라는 대형 스포츠이벤트가 대선 지형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런던 올림픽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비슷한 시기에 열리고 있는 여야 경선 흥행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올림픽 환호와는 대조적인 공천 뒷돈 파문은 정치권에 대한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반면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런 정치 불신에서 한 발짝 비켜 서 있다.

요즘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은 물론이고 박근혜 의원이 독주하는 새누리당 경선도 좀처럼 이슈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다. 한 미디어전문지의 분석에 따르면 올림픽 개막일인 7월 28일부터 이달 6일까지 10일간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 중 올림픽 관련 아이템은 전체의 61.6%였다. 대선 관련 보도는 대부분 단신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 원장은 올림픽 전에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고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한껏 지지율을 끌어올린 뒤 잠행에 들어갔다. 이쯤 되면 ‘치고 빠지기(hit and run)’ 전략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명탄원서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논란이 되는 등 ‘악재’가 터졌지만 그 여파가 크지 않았던 것도 올림픽과 무관하지 않다.

안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7월 24일) 직후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에서 박 의원은 39.1%, 안 원장은 31.2%였지만 올림픽 개막(7월 28일) 직후의 리얼미터 조사에선 박 의원이 35.2%, 안 원장이 34.0%였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원장으로선 지지율이 떨어질 소재가 있었지만 올림픽 영향으로 하락 시점이 늦춰지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며 “안 원장은 올림픽의 최대 수혜자”라고 평가했다.

물론 10년 전 월드컵처럼 올림픽이 끝난 뒤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원장이 올림픽으로 검증 공세를 피하고 지지율 유지 효과를 누린 동시에 ‘안철수의 생각’ 발간 이후 계획했던 대국민 접촉 기회를 놓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안 원장이 다음 주 올림픽 폐막과 함께 정치 행보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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