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현의 가을 다이어리] 부상병 이용훈 “팀 위해 조금이라도 던지고 싶다”

이용훈. 스포츠동아DB

전 고집쟁이였습니다. 타고난 힘으로 타자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용훈아, 직구만 빨라서 다 되는 게 아니야. 일단 컨트롤이 돼야 해.” 저를 위한 조언이었는데,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습니다. ‘150km를 한 가운데 던지면 되지. 무슨 소리야!’

고집은 어느새 아집이 됐습니다. 컨트롤이 되는 날에는 완벽하게 이기고, 제구가 흔들리면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생활을 반복하고도 삼성(2000년)에서 SK(2002년), 다시 롯데(2003년)로 이적한 뒤에도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한계가 왔습니다. 구종(직구·커브)이 단조로운 투수가 한 가운데 승부만 고집하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지난해부터는 1군보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왜 2군에 있어야 하는지, 미치도록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고, 제 안에 있던 ‘야구의 정의’를 모두 깨부수었습니다.

‘과거의 이용훈을 버리자!’ 제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투수는 어떤 공을 던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으로 타자를 이길 수 있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선배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했던 완급조절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산대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올해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깨달음 덕분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더 속상합니다. 이제야 야구의 재미를 찾았는데 시즌 후반기 어깨(건초염)가 아프면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고, 포스트시즌마저 TV 중계로 봐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급한 마음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부상을 당한 뒤 곧바로 훈련에 돌입한 게 독이 됐습니다.

다행히 후배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주고 있어 고맙고 뿌듯합니다. 물론 저도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갈 겁니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조금이라도 팀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들 조금만 더 힘내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적을 일궈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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