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라운드에 설 그날만을 위해 지루함을 견디고, 마음의 피로를 씻는다. SK 재활조 선수들이 2월 28일 인천 송도LNG구장 보조경기장에서 러닝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아파도 좋으니 다시 한번 야구 하고 싶다”
전병두 1년4개월째 이 악물고 재활 또 재활
나주환·이재원 빡빡한 스케줄 속 구슬땀
아침부터 쉼없는 훈련…통증에 일희일비
기약없는 반복…때론 선수 마음 생채기도
재활 마치면 “다시 만나지 말자” 작별인사
각 팀이 밀알을 뿌리는 시기다. 겨우내 따뜻한 곳에서 땀방울을 흘렸고, 이제 스프링캠프도 끝났다. 이들은 당장 개막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더 먼 미래를 보고, 차분하게 몸을 만드는 선수들도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추운 국내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래도 눈동자에 서린 열정만큼은 해외 스프링캠프로 떠났던 선수들 못지않다. 2월 28일 문학구장. 다시 그라운드에 서게 될 날을 고대하며, 늦겨울을 달구는 SK 재활조 선수들을 만났다.
○“재활 코치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다독여야…”
총 14명의 SK 재활조는 김경태 재활코치와 손지환 루키팀 코치, 전태영 컨디셔닝코치와 함께 훈련을 이어갔다. 이들 가운데는 전병두(투수·어깨)처럼 1년 반 가까이 복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선수도 있고, 정상호(포수·어깨)처럼 재활조에 합류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선수도 있다. 이재원(포수·왼 손바닥)처럼 당장 4월 1군 합류를 기약하는 선수는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부상 정도가 심해 복귀 일정을 예단할 수 없는 선수도 존재한다. 재활코치는 이 모든 선수들을 품어야 하는 자리다. 이날 훈련 시작 시각은 오전 10시. 김경태 재활코치는 오전 9시 이전 출근해 선수 개인별로 짜놓은 당일 스케줄을 확인한다. 일부 선수들도 미리 문학구장에 도착해 부상 부위에 마사지를 받거나 핫팩을 대며 몸을 예열한다. 이어 선수단 미팅으로 훈련일정 시작. “선수들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에요. 어제 공을 던진 선수라면 어깨 상태가 어떤지, 통증은 없는지, 회복력은 괜찮은지, 신경을 써야죠.” 재활코치는 선수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독여야 한다. 기약 없이 지루한 훈련이 반복되다보면, 가슴속에 생채기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 선수는 “1군 선수들과 경기장에서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눈을 피했던 경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집안일이나 연애문제처럼 선수들의 사적인 일들도 재활코치가 챙겨야 할 몫이다. “당장 연인과 헤어진 선수가 훈련 능률이 오를 리 없잖아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줘야죠. 자율훈련이라고 운동을 적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1. 한때 핵탄두 같은 직구를 던지던 전병두는 2011년 11월 어깨 수술을 받은 뒤 부활을 꿈꾸며 재활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수비 훈련도 그 일환이다. 2. 지난해 12월 왼손바닥 수술을 받은 이재원은 4월 내 1군 복귀가 목표다. 4번 타자 경쟁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진제공|SK와이번스
○“재활도 스케줄이 얼마나 빡빡한데요”
오전 10시 스트레칭과 함께 훈련 시작. 부상선수들이기 때문에 스트레칭은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오전 10시 반부터 튜브를 활용한 어깨 보강 운동이 이어진다. 몇몇 선수들은 각자에게 필요한 운동을 한다. 이재원은 체중관리 때문에 사이클 위에서 페달을 밟았고, 문학구장 옆 새싹야구장에선 좌완투수 김민식과 김영롱(이상 어깨)이 60m 거리에서 캐치볼을 실시했다. 개별 프로그램을 소화하느라 모두가 분주히 움직인다. 전태영 컨디셔닝코치에게 부상 부위 치료를 받던 나주환(내야수·종아리)은 “재활도 스케줄이 빡빡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며 웃었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2월 팀으로 복귀한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몸을 만들어왔다. “퇴근 이후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했고, 종종 문학구장에서 배팅훈련도 했다”는 것이 본인의 설명. 종아리 부상으로 현재 재활조에 있지만, 착실히 몸을 만들어 주전 유격수에 도전할 계획이다.
1. 박정배는 어깨 부상에도 불구하고, 지난 포스트시즌에서 팀을 위해 헌신했다. 현재는 아내 장희선씨와 딸 가율, 아들 태령을 생각하며 어깨 재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 박정배는 ITP를 소화했다. 김경태 재활코치는 핸드폰으로 박정배의 투구 동영상을 담았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야구 잘되면 행복하고, 잘 안되면 찌뿌듯하고”
오전 훈련을 마친 뒤에는 꿀맛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전병두는 문학구장의 한쪽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도 선발됐던 그는 2008시즌부터 SK의 전천후 투수로 활약했다. 당시 호흡을 맞췄던 이재원이 “대포알을 던졌다”고 말할 정도로 위력적인 직구를 구사했다. 그러나 2011년 11월 어깨 회전근 수술을 받았고, 오랜 재활기간을 거치고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칠 법도 하지만, 김경태 재활코치가 “다들 전병두를 본 받으라”고 말할 정도로 모범적인 선수다. 전병두는 “종종 1군 마운드에 서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한때는 ‘야구 못해도 좋으니, 안 아프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파도 좋으니 야구만 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로 복귀 의지가 간절하다. 이재원 역시 “타석에서 고통 없이 타격을 하는 꿈을 꿨다”고 밝혔다. 잠에서 깬 뒤 이틀 동안은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보다 더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이들의 삶은 이렇듯, 야구 하나에 일희일비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다시 오후 훈련이 시작됐다. 이날은 문학구장에서 차로 20∼30분 거리의 송도 LNG구장 실내연습장에서 ITP(단계별투구프로그램)와 수비훈련 등이 예정돼 있었다. 러닝 등으로 몸을 푼 뒤 ITP가 이어졌다. 이승호(허리)와 박정배(이상 투수·어깨)가 공을 주고받았다. 이날 이승호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주변에선 “공 좋다”는 탄성이 나왔다. 이승호는 “야구가 잘 안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찌뿌듯해요. 하지만 이렇게 공이 잘 들어가는 날은 훈련 하는 내내 기분이 좋더라고요. 눈동자도 말똥말똥하고…”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경태 재활코치. 사진제공|SK와이번스
○재활조의 작별인사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문학구장으로 다시 돌아온 시각은 오후 5시 반. 선수들은 오랜만에 탕수육, 깐풍기 등 중국요리를 배달시켜 기분전환을 했다. 하루의 피로를 잊은 듯 웃음꽃이 피었다. 아이싱과 치료 등을 마치고 문학구장에서 나오면 오후 6시가 넘는 시각. 그 이후라고 야구생각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날 투구 동작을 핸드폰 영상으로 담은 박정배는 “오랜만의 투구라 밸런스가 완전하지 않은 것 같다. 틈틈이 영상을 살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활코치는 가장 늦게 퇴근한다. 내일의 계획들도 점검해야 한다. 김경태 코치 역시 현역시절 2번이나 어깨 수술을 했다. 그래서 재활 선수들의 아린 마음을 더 잘 헤아린다. “선수들이 재활조를 떠날 때면,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고 얘기해요.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래도 홈경기 때 우연히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잖아요. 솔직히 재활조를 거친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침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LG와의 연습경기에서 김강민이 홈런을 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강민은 무릎 부상으로 1월 미국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고, 재활조에서 훈련했다. 재활조의 지도자들은 이럴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문학|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