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의 카를로스 쿠엔틴(앞쪽)이 12일(한국시간) 홈경기에서 LA 다저스의 선발투수 잭 그레인키에게 사구를 맞은 뒤 마운드로 달려들어 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로 그레인키는 쇄골 골절상을 입었다. 사진제공|MLB.COM

샌디에이고의 카를로스 쿠엔틴(앞쪽)이 12일(한국시간) 홈경기에서 LA 다저스의 선발투수 잭 그레인키에게 사구를 맞은 뒤 마운드로 달려들어 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로 그레인키는 쇄골 골절상을 입었다. 사진제공|MLB.COM


■ 샌디에이고 강타자 카를로스 쿠엔틴

괴력의 사나이, 연봉 950만달러 팀 최고
통산 156개 사구 탓 끊임없는 부상 시련
그레이키에도 세번째…마운드 돌격 분노
다저스전 벤치 클리어링에 8G 출장정지
“상대가 자극…참았어야 했는데…” 후회


LA 다저스는 12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8회초 터진 후안 우리베의 결승 홈런에 힘입어 3-2로 신승했다. 샌디에이고 원정 3연전을 2승1패, 위닝시리즈로 마무리했지만, 다저스 선수들은 분을 참지 못했다. 무려 1억4700만달러를 들여 영입한 우완투수 잭 그레인키가 빈볼 시비 끝에 발생한 몸싸움으로 인해 왼쪽 쇄골 골절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다저스가 2-1로 앞선 6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파드리스 3번타자 카를로스 쿠엔틴은 볼카운트 3B-2S서 그레인키가 던진 몸쪽 공에 어깨를 맞았다. 잠시 그레인키를 노려본 쿠엔틴은 방망이를 집어 던지고 마운드로 돌격했고, 양 팀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벤치 클리어링을 빚었다. 두 선수 모두 키는 188cm로 같지만, 몸무게는 쿠엔틴(107kg)이 그레인키(88kg)보다 19kg이나 더 나가는 거구다. 풋볼에서 충돌하듯 서로 어깨로 밀치며 그라운드로 나동그라지는 순간, 쿠엔틴의 엄청난 파워에 그레인키가 부상을 입었다. 그레인키와 함께 퇴장 당한 다저스 중견수 맷 켐프는 “쿠엔틴이 명문 스탠포드대학 출신이라고 들었다. 야구 IQ가 좋은 선수라면 1점차 승부인 경기 중반 풀카운트에서 고의로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스탠포드는 머리 좋은 사람이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쿠엔틴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쿠엔틴은 왜 폭발했을까?

그렇다면 950만달러로 파드리스의 최고 연봉자인 쿠엔틴은 왜 몸싸움을 벌였을까. 지금까지 그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사구와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LA 인근 벨플라워에서 태어난 쿠엔틴은 어린 시절을 샌디에이고 인근 출라 비스타에서 보냈다. 고교 시절부터 풋볼과 농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하버드대학과 견줄 만한 미국 서부지역 최고 명문 스탠포드로 진학했고,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스탠포드에서 보낸 3년간의 성적은 199경기에서 타율 0.350, 35홈런, 170타점, 26도루. 쿠엔틴은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9번째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지명됐다. 그러나 투수가 아님에도 추신수(신시내티 레즈)처럼 팔꿈치 부상을 당해 토미존 수술을 받고 1년을 통째로 쉬며 재활에 매달렸다. 이듬해 싱글A와 더블A에서 뛴 그는 무려 43번이나 몸에 볼을 맞아 마이너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타율 0.332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다보니 상대 투수들의 집중견제가 이어져 볼넷도 69개나 얻어냈다.


○부상이 부른 첫 이적

2006년 트리플A 85경기에 출전한 쿠엔틴은 타율 0.289를 기록했는데 2루타 30개, 3루타 3개, 홈런 9개를 치며 52타점을 올려 빅리그 승격을 통보 받았다. 7월 21일 다저스전에서 꿈에도 그리던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그는 장신 좌완투수 마크 헨드릭슨으로부터 2점홈런을 뽑아내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시 팀의 주전 우익수는 션 그린이었는데, 기량이 예전 같지 않자 애리조나는 팬들로부터 ‘은퇴를 시키던지, 트레이드를 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결국 애리조나는 8월 들어 쿠엔틴을 주전으로 쓰기 위해 그린을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했다. 첫 해 쿠엔틴은 57경기에서 타율 0.253, 9홈런, 32타점을 기록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2007년 스프링캠프에서 쿠엔틴은 어깨를 다쳐 부상자 명단에 오른 채 시즌을 맞았다. 4월 17일 로스터에 등록했지만 66경기에서 타율 0.210, 5홈런, 28타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뒤 7월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그 해 12월 4일 애리조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최고 유망주 크리스토퍼 카터와의 맞트레이드로 쿠엔틴을 떠나보냈다.



○호세 칸세코의 환생? 그러나 또…

쿠엔틴은 화이트삭스에서 전혀 다른 선수로 변신했다. 2008년 8월 중순까지 무려 35개의 홈런을 때리며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다. 화이트삭스 팬들은 ‘TCQ(The Carlos Quentin)’를 외치며 그의 활약에 열광했고, 파워히터 호세 칸세코가 환생한 것 같다는 평가도 나왔다. 쿠엔틴에 대해 당시 LA 에인절스 소속이던 토리 헌터는 “그가 타격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레슬링선수 헐크 호건이 괴력을 부리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어처구니없는 부상이 쿠엔틴의 발목을 잡았다. 9월 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파울을 낸 뒤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하고 방망이를 땅에 내리쳐 팔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2005년 이후 3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던 화이트삭스는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정상을 차지했지만, 쿠엔틴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디비전시리즈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1승3패로 무릎을 꿇었다. 쿠엔틴은 한 달 일찍 시즌을 접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율 0.288, 36홈런, 100타점으로 실버슬러거를 수상했고, MVP 투표에선 더스틴 페드로이아, 저스틴 모노, 케빈 유킬리스, 조 마우어에 이어 5위에 올랐다.


○고향팀에서 꿈꾸는 재기

그러나 2009년부터는 성적이 들쭉날쭉했다. 화이트삭스 구단은 2011년 마지막 날, 기복이 심한 쿠엔틴을 샌디에이고로 전격 트레이드했다. 고향팀에서 뛰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그는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아 부상자명단에 오른 상태로 2012시즌을 맞았다. 5월 29일에서야 시즌 데뷔전을 치른 그는 주로 4번타자로 출전했고, 인터리그 경기에선 지명타자를 맡았다.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고 있던 파드리스는 7월 23일 쿠엔틴과 3년간 2700만달러의 조건에 계약연장에 합의했다. 옵션이 걸려있는 2016년까지 최대 3700만달러를 받을 수 있는 파격계약을 체결한 뒤 쿠엔틴은 “내가 자란 곳에서 기대이상의 대우를 해준 파드리스 구단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8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1, 16홈런, 46타점에 그쳤다. 타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펫코파크를 고려하더라도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부상 때문에 거의 절반 가까이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쿠엔틴은 17개의 사구를 기록해 구단 신기록이자 내셔널리그 1위에 올랐다.


○쿠엔틴과 그레인키의 악연

2013년 들어 샌디에이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부담감이 쿠엔틴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장타를 터뜨리기는커녕 타율이 1할대 후반으로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10일 다저스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 쿠엔틴은 4-3으로 리드하던 7회말 로날드 벨리사리오의 공에 손목을 강타 당했다. 결국 다음날 경기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레인키의 공에 어깨를 맞은 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레인키에게 사구를 당한 것은 이번이 3번째. 화이트삭스에서 뛰 시절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에이스이던 그레인키에게 2008년 7월과 2009년 4월 각각 한 차례씩 몸에 맞는 볼을 기록했다.

통산 156개의 사구를 당한 쿠엔틴은 “지금까지 몸에 볼을 수 없이 맞았어도 마운드로 올라가 싸움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레인키가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자극하는 말을 해 분노를 절제하지 못했다. 조금 더 참았어야 하는데, 과거의 악연도 있어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다저스와 파드리스는 16일부터 다저스타디움에서 3연전에 돌입했다. 12일 벤치 클리어링의 여파로 8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쿠엔틴은 이번 3연전에 나서지 못한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