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정이 ‘몬스터 시즌’을 만들어가고 있다. 장타력과 해결사 능력을 두루 과시하고 있다. 최정이 지난달 16일 포항 삼성전
5회 2사 2·3루서 차우찬을 상대로 역전 3점홈런을 친 뒤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 1위 비결은 무심타법
노림수 보다 타이밍 초점…본능적으로 친다
난 홈런 타자는 아니다…3할-30홈런에 도전
수비도 공격, 들이대야 공도 잡을 수 있어
결혼은 내년쯤…결혼하면 야구 더 잘할 것
SK 최정(26)은 한국프로야구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는 타자다. 타격의 정확성과 파워, 주루·수비·송구능력을 모두 겸비한 ‘5툴(5-tool) 플레이어’로, “해외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야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19일까지 홈런(12개)·타점(39개)·득점(29개)·장타율(0.703) 1위 등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포진해있다. 3할-20홈런을 기록하면서도 “아직 완성형 선수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듣던 그가 올 시즌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성공은 2005년 프로 데뷔 이후 그가 빚은 무수한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마치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2000번의 실험을 했듯, 최정 역시 수시로 자신의 필라멘트를 갈아 끼웠다. 그래서 그는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유명한 말을, 자신의 삶으로 표현하는 선수다.
○야구에만 미쳤던 나, ‘쿨’하게 사니 전성시대!
-‘최정은 야구 고민 때문에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처럼 야구가 잘 될 때도 생각이 많은가.
“수비에서 실책이 많다. 중학생도 잡는 타구인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가서 공 맞고 12바늘을 꿰맨 뒤에 바운드를 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그 다음엔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게 되더라. 하지만 공을 끝까지 보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너무 많은 고민이 독이 된다’는 평도 있다.
“예전에는 투수랑 싸우기보다는 내 자신과 싸웠다. 안타를 못 치거나 무엇인가가 막히면, 속된 말로 미쳤다. 그래서 지인들로부터 ‘네가 왜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지고 가냐’는 말도 듣곤 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쿨’하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너무 야구에 빠지지 말자. 힘들게 살지 말자. 대충하자’ 그랬더니 잘 된다.(웃음)”
○아홉 시즌의 위대한 실험, 마침내 결실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등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자신의 타격 메커니즘을 완성했나.
“9년차인데, 폼 안 바꾸고 쭉 가고 있는 것은 올 시즌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한 시즌에 다섯 번 이상도 폼을 바꿨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지금의 폼으로 하고 있는데, 올 스프링캠프 때 내 것으로 만든 것 같다. 완성이라기보다는 이 틀에서 보완해가겠다.”
-변화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
“난 타격에서 노림수보다 타이밍을 중시한다. 구종을 노리면 힘이 들어가고, 좋은 결과가 안 나왔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치려고 한다. 나만의 타이밍으로 공 보고 공 치기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영상을 틀어놓고 그 타자들이 타격의 스타트를 끊을 때, 나도 타격을 시작하면서 내 타이밍과 비교해보곤 했다.”
-데뷔 초기에는 언더핸드에게 상당히 약했는데, 이제는 투수유형을 가리지 않는다.
“언더핸드의 공을 잘 못 쳐서 2008년에는 왼쪽 타석에 서기도 했다. 그 해에 처음 3할을 쳤다. 하지만 왼쪽 타석에선 장타력이 너무 떨어졌다. 난 거포 3루수가 되고 싶었는데, 내 색깔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위치히터를 포기했다. 이후 언더핸드의 공도 자주 보다보니 궤적에 적응이 됐다.”
○“난 홈런 타자가 아니다”고 말하는 홈런 1위
-올 시즌 전 허정욱 SK 스카우트팀장은 “최정의 고교시절 재능을 고려하면, 아직 자신의 잠재력을 다 보여준 것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손목의 움직임 등에 따라) 직구인지 변화구인지가 보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치고는 변화구를 잘 공략했던 것 같다. 하지만 프로에 와선 그런 부분이 잘 안 보인다. (김)현수(두산)도 3할5푼 이상을 칠 때,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구종을 파악했다고 하더라. 대단한 것 같다.”
-“난 홈런타자가 아니라, 중장거리타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앞으로 타율 3할5푼과 40홈런 중 어떤 것을 더 하고 싶나.
“2할 중·후반의 타율에 40홈런보다는, 꾸준하게 3할-30홈런을 치고 싶다. 물론 홈런왕이 되면 좋지만, 난 홈런타자가 아니다. 홈런타자는 (박)병호(넥센)처럼 홈런을 만들어서 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난 타이밍이 완벽해야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SK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있다. 챔피언 반지 3개를 낀 SK의 중심타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선수는 실력을 입력해두었다가 꺼내 쓰는 로봇이 아니다. 기복이란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영원한 자리란 없다는 점이다. 현재를 인정하고, 예전에 젖어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밖에서 보고 말하긴 쉽지만, 사실 우리가 우승을 할 때도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헤쳐 나가야 할 부분은 매년 생기는 것 같다.”
○수비도 공격이다!
-입단 당시에는 수비를 잘 못했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투수·타자 위주로 야구를 했으니,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냥 ‘수비란, 잡아서 아웃시키면 되는 것’이란 생각이었다.”
-지금은 수비 철학이 어떻게 달라졌나.
“수비도 공격이다. 바운드를 뒤로 물러나서 처리하려고 하면, 못 잡는다. 들이대야 한다. 난 아직도 수비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감 있게 들이댔는데, 운 좋게 글러브 안으로 공이 들어왔을 뿐이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
“일단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것. 그런 점에선 (강)정호(넥센)의 수비가 부럽다. (박)진만(SK) 선배처럼 편하고 가볍게 처리하는 수비도 하고 싶다.”
○류현진 킬러? 머리싸움에서 이겼을 뿐!
-2009∼2012시즌 류현진(LA 다저스)으로부터 타율 0.519(27타수 14안타) 3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류현진의 공을 어떻게 잘 쳤나.(최정은 류현진의 미국 진출 이전, 이 질문을 부담스러워했다. ‘괜히 화제가 되면, 현진이가 이 악물고 던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류현진은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최정을 가장 무서운 타자로 지목한 적도 있다)
“머리싸움에서 이긴 것 같다. 구질로만 보면 칠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현진이랑 상대하면, 머리가 잘 돌아갔다. 표정이나 폼을 보면, 어떤 구종을 던질지가 보였다. 그래서 현진이가 좀 어이없어 했다. 투수 입장에서 잘 들어갔다 싶은 공도 홈런이 되고 그랬으니까…. 구종별로 하나씩은 친 것 같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최정이나 이대호(오릭스) 같은 타자에게는 주로 직구 위주의 정면승부를 했다’고 말하던데.
“현진이가 힘으로 잡고 싶어 한 측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우리 팀의 (윤)희상이 형도 비슷하다. 청백전 하면 그 형 공을 잘 치는데, 끝나면 이렇게 얘기한다. 형은 무조건 직구 던질 것 같았어요.”
○결혼은 내년 안에!
-연봉이 5억2000만원이다. 내년 시즌 이후 FA(프리에이전트)가 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실감이 나나.
“물론 프로선수로서 (고액 연봉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하지만 거기에 젖어선 안 된다. 연봉을 실감할 때는 구단과 협상을 할 때뿐이다. 그 땐 솔직히 기분 좋다. 하지만 생활은 그 전과 똑같다. 돈 관리는 부모님이 하시고, 난 용돈을 타서 쓴다. 돈 쓸 일도 그리 많지 않다.”
-운동선수는 결혼을 빨리 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있는데.
“어버이날 경기 끝나고 판교 부모님 댁에 갔다. 집 밥을 몇 달 만에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내가 장가 갈 때가 됐구나!’ 싶었다. 결혼하면 야구도 잘 될 것 같다. 몸에 좋은 것도 많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상형은.
“특별히 없다. 게으르고 부정적인 사람만 아니면 된다. 결혼은 내년 안에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