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베이스볼] 선수가 갑, 구단은 을…FA 아이러니

입력 2013-05-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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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태균(왼쪽 사진)은 복귀해외파라는 애매한 신분으로 15억원이라는 거액의 연봉을 받는다. 넥센이 이택근(가운데 사진)에게 안긴 4년 총액 50억원의 FA(프리에이전트) 계약에는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LG로 떠나보냈던 과거에 대한 보상이 담겨 있었다. KIA가 4년 50억원을 투자한 김주찬(오른쪽 사진)은 NC의 1군 참여로 시장이 확대된 데 따른 FA 프리미엄을 누렸다. 여러 외부요인이 작용하면서 FA 시장에는 ‘공정가’가 사라져 대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스포츠코리아 제공·스포츠동아DB

■ 예비 FA들 성적 부진에도 몸값은 올라만 간다

성적 못 내면 몸값 하락? 상식 안 통해
한 구단이라도 ‘지르면’ 부르는 게 값
FA ‘대박’ 행진…선수들 눈만 높아져
수요와 공급 불균형…육성정책이 해답

프로야구계는 2013시즌이 끝나면 역대 최대의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측한다. 삼성 오승환 장원삼, SK 정근우, 롯데 강민호, KIA 윤석민 이용규 송은범, 두산 손시헌 이종욱, LG 이대형 등이 올 시즌 후 FA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대박’을 눈앞에 둔 예비 FA들의 성적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신통치 않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예비 FA들이 죽을 쑤고 있어도 몸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구단 관계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성적을 못 내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상식인데, 그 상식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국내 구단들이 처한 딜레마다.

○돈 잔치 벌어진 FA 시장

구단들은 “이제 선수의 적정 몸값이란 말은 사라졌다”고 얘기한다. 프로야구계에선 그 출발점을 넥센과 이택근 계약으로 본다. 2011년 시즌 후 LG에서 FA로 풀린 이택근은 4년 총액 50억원이라는 거액에 넥센으로 복귀했다. 이택근 스스로도 “과분하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당시 FA 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파격적 계약이었다. 넥센이 “이택근의 리더십과 상징성 같은 보이지 않는 측면까지 고려한 베팅이었다”고 설명했지만, FA 시장의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FA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시기 김태균이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에서 한화로 복귀했고, ‘발표 연봉’만 15억원에 달했다. 실제로는 더 많은 금액이라는 것이 타 구단들의 추측이었다. 김태균은 올 시즌에도 연봉 15억원을 받는다. 아울러 2012년 11월에는 롯데에서 FA로 나온 김주찬이 KIA로 이적하며 4년 총액 50억원을 받았다. 이러다보니 국가대표 주전 출신들이 수두룩한 올해 예비 FA들이 자신들의 몸값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구단들은 올 시즌을 앞두고 ‘FA 프리미엄’을 듬뿍 얹은 파격적 연봉인상으로 예비 FA들을 잔류시키겠다는 강한 의사도 미리 전했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구단들

그러나 이들 예비 FA들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구단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대박 후보자들’ 중에는 FA를 앞둔 심리적 중압감에 따른 일시적 슬럼프가 아니라 정말 하향세로 접어든 것으로 파악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A구단 관계자는 “분명히 그 정도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돈을 써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어렵다. 성적이 이 모양이어도 모 그룹에는 최소 50억원 이상을 요청해야 한다. 어떻게 설득시키나? 반대로 그렇게 베팅을 안 하면 놓친다. 그럴 경우, ‘팬심’이 돌아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렇게 시장이 예비 FA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짜여진 이유는 철저하게 공급자 위주인 프로야구의 속성 때문이다. 그 선수가 아니면 대체가 어려운 구조에서 ‘부르는 게 값’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구단들이 공동보조를 취해 이성적으로 대처하면 ‘미친 몸값’을 제어할 수 있겠지만, 단 한 구단이라도 ‘지르는’ 상황이 발생하면 합리적 몸값을 제시하는 구단만 FA 시장의 패자가 되는 환경인 것이다.

○FA 거품 언제까지 지속될까?

지금 한국경제는 끝 모를 침체에 빠져있는데, 전혀 다른 세상처럼 천정을 알 수 없게 흘러가고 있는 FA 시장의 거품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당분간은 유지되리라고 보는 것이 프로야구계의 시각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 NC에 이어 KT까지 가세하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FA들이 구단 확장의 최대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대다수의 구단들이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사실을 들 수 있다. 특별히 돈이 없어서 베팅을 못할 만큼 가난한 구단이 없기에 부익부빈익빈으로 가지 않고, FA 시장이 설 때마다 치열한 가격경쟁이 벌어지는 구조로 한국프로야구는 접어들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정책적으로 외부 FA에는 손을 대지 않는 기조를 유지해왔던 삼성과 SK 등도 결국에는 FA 시장에 참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이처럼 리스크도, 비용부담도 큰 FA를 영입하지 않고도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은 있는 것일까. 최근 수년간 2군 활성화를 통해 꾸준하게 1군 전력을 향상시켜온 삼성과 두산의 육성정책이 모범답안일 수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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