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김한원·김원일 “다시 태어나도 해병대”…군대 축구가 그들을 키웠다

입력 2013-12-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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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선후배 수원FC 김한원(왼쪽)과 포항 스틸러스 김원일이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트위터 @sangjun47

■ 우리는 해병대 전우다 수원FC 김한원 & 포항 스틸러스 김원일

“다시 태어나도 해병대에 입대하고 싶으세요?”

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후회는 없어요. 다시 갈 겁니다.” 축구는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나 평탄한 길을 걷진 못했다. 주전을 꿰차지 못해 쫓기듯이 선택한 곳이 바로 ‘군대’였다. 축구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상무나 경찰체육단 같이 계속 뛸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기 마련. 그러나 둘은 ‘막군(일반 군)’이라 부르는 해병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최고의 한 수가 됐다. 해병대라는 전환점을 멋지게 돌며 새 삶을 마련했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포항 수비수 김원일(27)과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수원FC 공격수 김한원(32)이 주인공이다. 김원일은 사상 첫 포항의 FA컵과 정규리그 동시 우승을 이끌며 K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11 수비 부문에 올랐다. 김한원(32)도 팀의 챌린지 연착륙을 도우며 8골6도움을 기록했다. 선수층이 옅어 포지션 변경이 잦았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시즌을 마치고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을 한 두 선수를 1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한원

이병 때 아무리 축구선수라도 군대선 골키퍼
수원시청, 해병대 캠프 왔다가 스카우트 제의
전역하자마자 입단…후배들도 다 보냈으면

김원일

같은 포항 1사단 출신 한원 형 얘기 많이 들어
할 줄 아는 게 없던 훈련소 때 선착순은 으뜸
한 달 합숙 끝 건군 60주년 축구대회 우승도



● 삶의 도피처에서 희망을 찾다


-프로선수로는 특이한 해병대 출신 선후배다. 기수는 어떻게 되나.

김한원(이하 한): 저는 2001년에 입대했어요. 해병대 905기입니다.

김원일(이하 원): 제가 2007년 1월 입대했을 당시 말년 병장이 996기였거든요. 엄청 선배님이신데…. 저는 1037기입니다.


-병과는.

한: 포항 1사단에서 근무했어요. IBS 고무 보트를 탔죠.

원: 전 행정관님께 선배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처럼 축구 잘 하는 선수가 있었다. 엄청 빨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 아∼ 그래요? 좋은데요(웃음).


-지원 동기가 궁금하다.

한: 사실 저는 운동을 그만 두려고 했어요. 경호원을 할까 했고, 그래서 해병대를 선택했네요. 육군 가려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근데 해병대는 지원하고 보름 만에 통보 나서 바로 갈 수 있더라고요. (왜 관두려고 하셨는지?) 얘기를 하자면 긴데. 세경대를 졸업하고 동국대로 편입하기로 돼 있었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선수등록기한 같은 걸 모르시고 촉박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편입시험도 있는지 몰랐고. 선수니까 형식적인 줄로만 알았는데 떨어졌더라고요. 서로 불찰이었죠. 실망이 컸고 더 이상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중·고교 때도 원하지 않게 자꾸 틀어져서 원치 않는 학교를 가게 됐거든요. 우여곡절이 많았죠.

원: 숭실대 2년을 마치고 군에 갔어요. 주전을 못 잡고 앞날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대학교는 2년 마치면 선수들이 프로로 가고 물갈이가 이뤄지거든요. 그래서 해병대로 갔어요. 내쳐졌다는 느낌이 강했죠. 운동하면서 고생도 했으니까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7∼8월에 말씀드리고 2007년 1월 입대했는데 6개월 동안 허송세월 보내면서 폐인처럼 살았어요. 집에서 밖으로 안 나가고 컴퓨터만 부여잡고 있고. 들어가면서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결심했죠.


-훈련소 생활은 어땠나요?

원: 저는 훈련소 가서 운동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는 거예요. 바느질도 못해, 사격, 외우는 것도 다 못해서 힘들었죠. 대신 선착순 하나는 정말 잘 했어요(웃음). 간부들이 수색대 지원했냐고 물어봤죠.

한: 저도 선착순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김원일은 가자마자 축구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던데.

원: 훈련소를 마치고 부대로 넘어갔는데 보급 선임이 새 축구화를 주더라고요. 마음껏 뛰어보라고 해서 포지션 없이 뛰어다녔어요. 골도 넣었고요. 잘 한다고 말씀도 해주셨고 다른 중대랑 해서 이기니까 많이 이뻐하셨죠.

한: 좋은 선임이었네요. 저는 ‘니가 날고 기었던 축구선수라도 이병’이라고 골키퍼만 봤어요. 선임들이 공 보지 말고 상대 선임 덮치라고. 진짜 덮치고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한: 당시 내셔널리그 수원시청이 해병대 캠프로 왔어요. 운동할 만한 선수 모아서 2∼3경기 뛰었을 거예요. 수원시청 감독님 눈에 띄었죠. 전역 후 팀에 오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때는 축구와 연을 때려고 했을 때라 거절했죠. 근데 배운 도둑질이 축구뿐이라 마음이 동했고, 전역하자마자 수원시청으로 들어갔어요.

원: 갑자기 건군 60주년 축구대회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있던 1사단이 2005년 즈음에 해군 작전사령부한테 박살이 났다고 했어요. 윗분들이 이번에는 반드시 꺾자고 난리가 났어요. 1달 동안 모여서 합숙시키고(웃음). 결승에서 해군 UDT랑 붙었는데 전·후반 각각 1골씩 넣고 3-0으로 이겼어요. 이병 때도 사단체육대회에서 우승해서 14박15일 휴가도 받고 그랬죠. 그때 숭실대 윤성효 감독님이 기사를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말년휴가 나가서 인사 드렸더니 몸 만들고 가라고 하셨죠. 이후 줄곧 주전으로 뛰었고요.

한: 우리 때는 대회도 없고 그냥 소대끼리 PX 내기해서 축구 많이 했어요. 당시 군 사고가 좀 터져서 외박이나 휴가도 많이 못 갔어요. 2002한일월드컵 때 좋았죠. 짬은 안 됐는데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때 자유로웠어요.


● 삶의 등불을 떠올리다

-기억에 남는 훈련이 있었나요.


한: 특별한 기억은 없어요. 다만 새 연대장이 오셨는데 몇 백 킬로 행군을 했던 걸로 유명했죠. 사단장님이 혹해서 멀리 행군을 해보자고 하셨고요.

원: 얘기 들었던 거 같아요. 평소 강원도를 직선 코스로 찍고 오는데 예전 7연대가 강원까지 지그재그로 엄청 돌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한: 그게 우리였을 거예요. 최고 멀리 갔다 왔다는 거 같던데.

원: 연대 기록을 세워서 전체가 몇 박 몇 일 동안 휴가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저는 2달간 준비해서 강원도로 과학화 훈련을 갔었어요. 마일즈 장비(시뮬레이션 장비) 차고요. 산 넘고 2시간 넘게 행군해서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했는데.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다짐하고 한 발 내딛는 순간, 상대편이 설치한 지뢰 밟고 그냥 전사 했어요.


-이 동료는 꼭 해병대를 보내고 싶다?

원: 저는 고무열을 보내고 싶어요(웃음). 한원 선배 보면 저돌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이 좋잖아요. 무열이는 한번 막히면 주눅 드는 모습이 있어서. 스스로 자책도 많이 하고요. 후반기 돼서 영플레이어상 욕심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좀 나아졌죠.

한: 저는 후배들 다 보내고 싶은데. 훈련소 한번 다녀오면 더 잘하지 않을까요(웃음).


-해병대는 각자 어떤 의미였나.

한: 힘들었지만 값진 보람을 느꼈어요. 힘든 일일수록 보람이 큰 것 같거든요. 스무 살 때 막노동해서 처음 6만원을 벌었는데 아직 잊혀지지 않거든요. 해병대도 그런 시간이었죠.

원: 자부심이자 긍지예요. 한때는 해병대를 통해서 제가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어요. 축구를 잘 해서 이름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근데 축구를 하면서 해병대를 나온 걸 숨길 필요는 없는 거 같더라고요. 저를 알려주고 계기를 마련해준 해병대는 긍지잖아요. 지금처럼 축구하면서 행복하고 가족도 기뻐할 수 있고요.


김한원은?
▲소속팀 : 수원FC(K리그 챌린지) ▲생년월일 : 1981년 8월 6일 ▲신체조건 : 181cm 75kg ▲포지션 : 공격수 ▲학력사항 : 남지중-경남정보고-세경대 ▲프로경력 : 수원FC(2004∼2005) / 인천(2006) / 전북(2007∼2008) / 수원FC(2009∼) ▲2013성적 : 30경기 8골6도움 ▲수상경력 : 2005 내셔널리그(실업리그) 득점왕


김원일은?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K리그 클래식) ▲생년월일 : 1986년 10월 18일 ▲신체조건 : 185cm 77kg ▲포지션 : 중앙 수비수 ▲학력사항 : 통진중-통진고-숭실대 ▲프로경력 : 포항 스틸러스(2010∼) ▲2013성적 : 34경기 3골 ▲수상경력 : 2013 K리그 베스트11 수비 부문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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