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경기 중엔 호랑이 감독님도 휴식 땐 친구처럼

입력 2014-02-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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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팀을 이끌고 있는 남자 사령탑들이 여자 선수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기업은행 이정철, 현대건설 황현주 감독은 선수들을 강하게 대하는 편이다. 반면 GS칼텍스 이선구, 인삼공사 이성희 감독은 부드러운 스타일에 속한다.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정철, 황현주, 이선구, 이성희 감독. 스포츠동아DB

■ 여자팀 남자 감독이 선수와 소통하는 방법

기업은행 이정철·현대건설 황현주 ‘강성’
무섭게 대하다가도 코트 밖에선 다정다감

GS칼텍스 이선구·인삼공사 이성희 ‘온건’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카리스마

프로배구 V리그 남자 지도자들이 여자 선수들을 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대화다. 같은 말을 하지만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다. 감독이 하늘을 가리키는데 선수들은 손을 바라보는 경우다. 그래서 여자팀 감독들은 “여자 선수들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예’라고 말해도 절대 ‘예’가 아니다” “여자 선수들은 한 번 돌아서면 되돌리기 힘들다”와 같은 경험담을 얘기한다. 남자 감독들은 어떻게 여자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소통을 할까.


●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GS칼텍스 이선구 감독은 경기 때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다. 나이 차가 많다보니 감독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잘 따른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얘기하듯 조곤조곤 작전지시를 한다. 이론가답게 기술적인 얘기가 많다. 선수들에게도 기술에 대한 갈증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세상에 훔쳐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스포츠뿐이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의 기술을 훔쳐라. 선수는 원숭이가 되어야 한다. 리그에서 잘하는 선수 3명의 기술을 보고 따르면 나는 4개의 기술을 가질 수 있다.” 처음으로 GS에서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는 이 감독이지만 마냥 유순한 스타일은 아니다. 오랜 해외 지도자 생활동안 남자들을 주로 가르쳤는데, 유명한 일화가 있다. 외국팀 선수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국으로 일부러 전훈을 데려온 뒤 국내의 다른 지도자를 시켜 한국 특유의 얼차려를 주게 했다. 그 기세에 놀란 선수들은 그 뒤 이 감독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었다고 한다.


● 조용히 말하지만 모두를 떨게 만든다

인삼공사 이성희 감독은 GS칼텍스에 유일한 우승을 안겼다. 2007∼2008시즌 암으로 투병 중이던 이희완 감독을 대신해 1월부터 감독대행을 했는데 리그 3위부터 시작해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 감독도 경기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지난 시즌 인삼공사 선수들이 21연패를 당하는 등 마음고생이 심해 질책보다는 힐링에 많은 신경을 쏟는다. 그렇지만 행동 하나, 조용한 목소리 하나에도 선수들은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스태프까지 포함해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모두를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다. “상대에 주눅 들지 말고 우리 것을 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 디테일이 강해야 진짜 강팀이다

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은 훈련이 많고 선수를 잘 혼내는 강성 이미지다. 외국인 선수를 고를 때도 “내 요구를 따르려면 힘들 것이다. 참지 못하고 우는 선수도 많았다”고 미리 경고한다. 힘들 때 다른 팀보다 한 시간 더 훈련해야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강한 훈련 속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은 일일이 꼬집고 넘어간다. 디테일에 강하다. 숙소에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 기술까지 모든 것을 확인하고 지시한다. 보통 열정으로는 어렵다. 지루한 숙소생활에 변화를 주기 위해 선수들과 다양한 이벤트도 많이 한다. 여름 훈련 때는 바이크도 타고 래프팅도 함께했다. 선수들과 ‘밀당’도 잘한다. 훈련이 한계에 왔다 싶으면 두말 않고 휴식을 줘서 효과를 높인다.


● 말도 무섭고 눈초리는 더 무섭다. 그러나 마음은 따뜻하다

현대건설 황현주 감독도 대표적인 강성 사령탑 이미지다.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작전지시 때도 거침없는 말이 나간다. 저러다 큰 일 나겠다 싶을 정도다. 경기가 안 풀릴 때 선수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눈초리는 채찍보다 더 무섭다. 약속된 플레이를 하지 않거나 고비에서 주저할 때는 거침없는 질책이 나간다. 여한이 없는 용감한 배구를 요구하는 황 감독은 훈련과 경기 외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선수들과 잘 어울린다. 선수들이 원하면 화끈하게 놀려준다. 선수들의 앞날과 복지에도 관심이 많다. 샐러리캡을 높이고 계약금도 줘야 한다며 몇 년째 주장하고 있다. 구단은 다스리기 버거워 해도 선수들에게는 지지가 높은 스타일이다.


● 대화의 방법을 연구하다

도로공사 서남원 감독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작전지시도 간단하다. 잘못된 플레이를 하면 짧게 언급하고 만다. 대부분은 격려의 말이고, 기본에 관한 얘기다. 선수에게 지시를 할 때도 먼저 스스로 하게끔 기회를 준다. 선수가 약속한 것을 해내지 못할 때는 감독이 나서지만 그 때도 이유를 설명해 스스로 납득하게 만든다. 여자선수들의 말 속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남자와 여자의 대화법을 다룬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자주 읽으며 대화의 기술을 공부한다.


● 화는 나지만 스스로를 질책한다

여자배구 지도자 생활만 30년이 넘은 흥국생명 류화석 감독은 요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팀은 속절없는 연패에 빠졌는데 마땅한 해결방법도 보이지 않아서다. 지고는 못 참는 성격이지만 경기 결과를 놓고 어린 선수들에게 질책을 해봐야 감정만 상할 뿐이라는 생각에 속으로 삭이는 중이다. 메모를 중시하는 류 감독은 작전지시도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이 많다. “가장 어리석은 감독이 선수 탓을 한다”고 믿기에 이번 시즌 결과도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팀이 지면 주변의 모든 사람도 우울해진다. 인간관계마저 나빠진다. 그것이 감독의 숙명”이라는 류 감독은 자신감을 잃은 선수들을 위로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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