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원 “트로트의 오해와 편견 깨고 싶다”

입력 2014-0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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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지원. 사진제공|인우프로덕션

‘트로트 신동’ 양지원(20)이 돌아왔다.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절묘한 꺾기 창법까지, 트로트를 제대로 구사해 ‘신동’이라 불렸던 그가 이젠 제법 성인가수의 모습을 갖추고 7년 만에 다시 팬들 앞에 섰다.

비록 국내에서 7년이라는 긴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일본에서 쌓은 경험과 창법은 더 단단해졌고 성숙해졌다. 양지원은 2007년 당시 일본의 한 메이저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엔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에 오니까 트로트 시장이 많이 퇴보되어 있더라. 10대나 20대 등 젊은 세대에서 트로트 장르를 외면하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봐도 트로트라는 키워드는 보이지 않더라. 지난해 9월 일본에서 건너와 최근 앨범을 내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새내기로서 트로트 부흥의 발판이 되고 싶다.”

당차다. 새로 내놓은 앨범의 성공을 넘어 트로트 전성기가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트로트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다. 이는 일본에서 경험했던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처음 건너가면 바로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할 줄 알았다. ‘일본어가 되지 않으면 앨범을 내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3년 동안 연습생처럼 언어 공부만 했다. 일본어 1급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또 여러 가지 문제가 걸렸다. 엔카 시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느껴보고 힘들어도 버터보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시부야, 신주쿠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 역 근처에서 마이크 하나 잡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에 들어가서 홍보 전단지도 돌리고,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7명 정도 모였던 공연도 500명으로 늘어나고 1000명으로 늘어났다. 그때서야 저를 인정해주고 앨범을 내주겠다고 하더라.”

국내에서 ‘신동’으로 주목받으며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큰 시장을 내다보고 건너간 일본. 그 곳에서 한계에 부딪히며 쌓은 경험은 피와 살이 되었다.

“사실 트로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악보도 잘 볼 줄 모르고, 곡도 쓰지 못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또 나이든 사람들만 듣는 음악이고, 어린 나이에 공부는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러 다닌다는 등 시선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 오해와 편견을 깨버리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 또 했다. 비록 일본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시간은 절대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트로트와 다른 장르를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소화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판소리를 배우러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3개월 동안 합숙하며 목소리를 크게 키우기 위한 연습을 했다.

“나훈아와 조용필 선배님이 폭포수를 맞으며 목소리를 키웠다는 걸 답습했다. 아이돌 가수들에게 보컬 레슨을 해주는 분들을 찾아가 따로 보컬도 배웠다.”

여러 가지 창법을 터득하고 그의 바람이기도 한 ‘트로트 붐’을 일으키기 위해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젊은 트로트를 내놓게 됐다. 바로 ‘아야야’다. 장윤정의 히트곡 ‘올레’ ‘꽃’ 등 만든 임강현 작곡가가 만들었다.

“‘슈가 트로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달콤한 음식은 계속 먹고 싶다는 뜻이다. 달콤한 트로트와 엔카의 부드러운 창법을 결합했다. 고음에서는 시원시원하게 터지는 매력도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비진아(비와 태진아의 협업)’처럼 트로트에 케이팝, 랩이나 힙합 등을 결합해 10대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그렇게 하다보면 트로트가 부활하고 10대들도 트로트를 찾아 듣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꼭 그날이 올 것이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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