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선수들·믿고 맡기는 구단…‘기업은행의 힘’

입력 2014-03-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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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를 평정한 IBK기업은행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코트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인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기업은행 V리그 정규리그 2연패 원동력

1. 혜성처럼 등장한 채선아의 서브리시브
2. 김희진·박정아 안정되고 성숙한 플레이
3. 주전세터 이효희 자신만의 스타일 발견
4. 새로운 팀 문화 정착 ‘토털배구’의 완성
5. 현장을 신뢰하고 전폭적 지원 보낸 구단


걱정 속에 시작한 2013∼2014시즌이었다. 지난 시즌까지 팀을 지켜오던 주 공격수 알레시아가 팀을 떠났다. 팀 공격점유율 44%를 기록했던 에이스가 빠져나간 자리를 같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올레나로 채우려고 했다. 두 달간 함께 훈련했던 외국인 선수는 시즌 개막 한달을 남겨두고 갑자기 팀을 떠났다. 생각지도 못한 임신이었다. 부랴부랴 흥국생명에서 뛰었던 카리나를 영입했다. 서브리시브를 전담했던 윤혜숙도 팀을 떠났다. 공격과 수비에서 전력의 손실은 컸다.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기업은행 얘기다.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차 목표를 플레이오프 진출로 정했다”고 이정철 감독은 털어놓았다. 이 감독은 “바실레바 바샤 조이스 등 다른 팀 외국인선수가 업그레이드 됐고, 우리는 변화가 있어 걱정은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시즌에 들어가자 치고 나갔다. 1라운드 때 인삼공사 등에 패해 2위로 시작했지만 2라운드 전승을 거두며 선두로 올라간 뒤로는 압도적인 시즌을 운영했다. “특히 어려운 라운드는 없었다”고 이 감독은 말했다.

이유는 있었다. 첫째, 채선아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윤혜숙의 공백을 확실히 메웠다. 2일 현재 서브리시브 부문 1위(세트평균 4.59개)에 점유율 59.5%(성공률 40.71)의 채선아가 버텨주면서 기입은행은 탄탄한 배구를 할 수 있었다. 기업은행은 2시즌 연속해서 범실 부문에서 1위였다. 405개로 압도적인 수치. 2위 GS가 479개고 다른 팀은 모두 500개를 훨씬 넘었다. “배구는 먼저 25점을 내야 이기지만 실점을 쉽게 안 하는 팀이 이긴다. 배구는 실점의 경기”라는 것이 이 감독의 지론이다.

두 번째, 김희진과 박정아의 업그레이드였다. V리그 3번째 시즌을 맞아 더 안정되고 성숙해졌다. “지난 시즌까지는 잘 할 때와 못 할 때의 차이가 컸지만 이번 시즌에는 못 하다가도 마지막에 보면 제 성적을 냈다. 어느 정도 계산이 가능한 플레이를 한다. 큰 도움이 됐다”고 이 감독은 말했다. 이들은 카리나와 함께 레프트와 라이트, 센터를 오가는 다양한 공격옵션을 해가며 가장 이상적인 공격배분을 하는 ‘3각 편대’를 완성했다.

셋째, 주전세터 이효희가 자기만의 배구를 했다. 그동안 알레시아를 위한 배구를 했던 이효희는 카리나∼김희진∼박정아와 함께 하면서 훨씬 편해졌다. 특정 상황에서 누구에게 반드시 줘야 하는 부담이 없어지자 경기 상황에 따라, 선수 컨디션에 따라 다양하게 공을 올렸다. 억지로 높이 올릴 필요도 없었다. 편안하게 자신만의 빠른 배구를 하게 되자 창의적인 이효희의 토스는 더욱 빛났다. 이것이 팀 전체의 상승효과를 줬다.

네 번째, 새로운 팀 문화의 정착이었다. 지난 시즌 첫 우승을 경험하면서 선수들이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성장했다. 유희옥이 센터에서 큰 역할을 했고, 다른 선수들도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했다. 기업은행은 차근차근 토털배구를 완성했다. 선수들의 성장으로 새로운 문화도 만들어지고 있다. 어지간해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최근 보여준 끈질긴 플레이와 다 졌던 경기를 뒤집어 이기는 힘은 한창 때의 삼성화재(남자부)를 연상시켰다.

마지막으로 현장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구단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공교롭게도 V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팀들의 공통점은 현장을 향한 프런트의 존중이다. 얕은 배구지식을 가지고 선수기용에 관심을 가지거나 어줍지도 않은 충고를 현장에 하지 않는다. 행장을 비롯한 전 직원과 기업은행의 우수고객도 배구단에 큰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기업고객 가운데 삼익가구는 2일 선수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안겼다. 이번 시즌 우승선수들 모두에게 결혼 때 혼수용으로 필요한 홈가구 세트를 주기로 약속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승에 공헌한 선수를 직원으로 특채도 했다. 이효희가 지난 시즌 통합우승으로 첫 번째 대상이 됐고, 지난해 7월 KOVO컵 우승 뒤 남지연이 두 번째 수혜자가 됐다. 또 있다. 그동안 수일여중 훈련장을 빌려 쓰고 수원 장안구청 구민센터 시설을 이용하는 불편을 하루라도 빨리 해소하기 위해 전용훈련장과 숙소를 선물로 주려고 한다. 용인 연수원에 최첨단 훈련장과 숙소를 짓는 일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내년 7월이면 그 곳에 2개의 우승페넌트를 걸어둘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은행의 목표는 삼성화재와 같은 팀을 만드는 것이다. 감독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선수들을 위해 희생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고, 선수는 그런 감독을 믿고 따르면서 경기 때는 언제나 포기하지 않는 그런 문화다.

2일 인천에서 통산 2번째 리그우승 샴페인을 터뜨린 기업은행은 2연속 통합챔피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인천 l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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