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 병역혜택을 얻을 수 있기에 대표팀 선발을 원하는 선수들의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과욕은 화를 부를 수도 있다. 지난해 3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대표선수들이 훈련 도중 미팅을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2010년 아시안게임의 덫에 빠진 선수 속출
대표팀 발탁에 심리적으로 쫓겨 성적 추락
초연하게 노력한 선수가 기회와 행운 차지
조범현 kt 감독은 광저우아시안게임이 열린 2010시즌 KIA 사령탑이었다. 그 해 시즌 개막 직전 조 감독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었다. 조 감독은 이미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상태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해 병역특례 혜택을 바라는 많은 선수들이 KIA전 때면 더 집중할 것 같다. 팀 감독으로선 손해일 수도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조 감독은 빙그레 웃으며 “국가대표팀을 생각하면 모든 선수가 잘 해야 한다. 다만 KIA전에서만 잘 하면 솔직히 얄미울 수도 있겠다”며 농담을 섞어 답했다.
조 감독은 이어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시즌 때는 매 경기 집중해야 한다. 아시안게임을 의식해선 안 된다. 부담감, 스트레스 때문에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조 감독의 걱정처럼 2010년 ‘아시안게임의 덫’에 빠진 선수들이 각 팀에서 쏟아져 나왔다. KIA에서도 대표팀 발탁을 학수고대했던 선수들 가운데 여럿이 부진을 보였다. 2009년 우승 주역이었던 투수 곽정철과 손영민이 함께 부진에 빠졌다. 2009년 23홈런을 날렸던 나지완도 타율이 2할대 초반으로 추락하며 슬럼프를 겪었다. 나중에 나지완은 “어리석었다. 개막부터 아시안게임대표팀 선발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계속 심리적으로 쫓기면서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과욕을 부리다 부상을 당하는 선수도 나왔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기도 했던 롯데 박기혁은 아시안게임대표팀 선발과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취득이 동시에 걸려있었다. 그러나 시즌 초부터 부상이 이어진 까닭에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올해 9월에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펼쳐진다. 병역특례를 노리는 선수들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이 각 팀의 핵심 전력이다. 삼성 차우찬, 두산 오재원 이원석, LG 유원상, 롯데 손아섭 전준우, KIA 김선빈 나지완, NC 나성범 이재학 등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명예와 병역특례를 올 시즌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4년 전 많은 선수들처럼 ‘아시안게임의 덫’에 빠지면 자신은 물론 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표팀 근처에 가기도 전에 지리멸렬할 수 있다. 게다가 인천아시안게임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삼성 류중일 감독은 미필자 배려에 앞서 실력 본위로 최강 전력을 구축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밝힌 상태다.
아시안게임대표팀 합류가 ‘좁은 문’이나 다름없는 마당에 지나치게 대표팀 합류에 ‘올인’하다 보면 자칫 심리적 중압감이 가중돼 시즌을 그르칠 우려가 높다.
그렇다면 해답은 없을까. 2010년 넥센 강정호가 좋은 사례다. 강정호도 4년 전 똑같은 미필자 신분으로 대표팀 합류를 갈망했다. 그 역시 심리적으로 쫓겼을 테지만, 초연하게 상황을 즐겼다. 강정호는 2010년 올스타전 때 갑자기 KIA 모자를 빌려 쓰고 조 감독에게 인사하는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다른 군미필 선수들이 KIA를 상대할 때면 오히려 몸이 굳고 조 감독 앞에서도 쭈뼛쭈뼛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정신적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2014시즌의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는 아시안게임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