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보스턴, 엘스베리 떠났어도 이 남자 덕에 웃는다

입력 2014-04-03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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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디 사이즈모어

전성기 땐 ‘4년 연속 20-20’ 등 최고 활약
2009년부터 각종 부상으로 ‘악재의 연속’
시범경기 3할 타율 활약…2년 공백 무색
레드삭스 WS 2연패 키플레이어로 급부상


메이저리그에서 2년 연속 월드시리즈를 차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2연패에 성공한 팀은 전무했다. 뉴욕 양키스가 1998년부터 3년 연속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이래 매년 우승 팀이 바뀐 것. 그만큼 팀 전력이 평준화됐다는 뜻이다.

이같은 흐름 때문인지 도박사가 예상한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의 올 시즌 우승 확률은 12대1에 그치고 있다. LA 다저스(7대1), 디트로이트 타이거스(8대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워싱턴 내셔널스(이상 11대1)에 이어 뉴욕 양키스와 함께 공동 5위에 랭크되는 데 그쳤다. 지난 시즌 우승을 이끈 주역인 1번타자 제이코비 엘스베리가 7년 1억5300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리며 숙적 양키스로 이적한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때문에 레드삭스의 2연패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이다.

하지만 레드삭스 캠프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팬들은 엘스베리의 이름을 잊은 지 오래다. 혹시나 하며 영입한 그래디 사이즈모어(32)가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맹활약을 펼치며 주전 중견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술을 무려 9번이나 받았고, 특히 지난 2년간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라는 사실이 전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신들린 듯한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사이즈모어. 그의 부활은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2연패에 청신호를 밝혀주게 될 것이다.


● 슈퍼맨이라 불린 사나이

사이즈모어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한 구단의 단장은 “만약 나한테 새로 팀을 구성하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선택할 선수는 바로 사이즈모어다. 그는 슈퍼맨이다”라고 단언했다.

1982년생인 사이즈모어는 일찍부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2000년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된 그는 마이너리그 시절 초대형 트레이드의 일원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둥지를 옮겼다. 2002년 6월 엑스포스는 바르톨로 콜론과 팀 드류를 받는 대신 사이즈모어를 비롯해 클리프 리, 브랜든 필립스, 리 스티븐슨을 인디언스로 보냈다.

2005년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행운이 찾아왔다. 당시 간판 스타였던 후안 곤살레스가 시즌 개막전에서 부상을 입어 사이즈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풀타임 메이저리그 첫해부터 타율 0.289, 22홈런, 81타점, 22도루를 기록한 그는 구단 역사상 로베르토 알로마에 이어 2루타 20개, 3루타 10개, 20홈런, 20도루를 동시에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 기록의 사나이

2006년 올스타전에 뽑힌 것을 시작으로 사이즈모어의 화려한 경력이 차곡차곡 쌓여 가기 시작했다. 2007년 5월 14일 발행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 모델을 장식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클리블랜드의 마이크 샤피로 단장은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사이즈모어는 2000년대 최고의 선수 중의 하나”라고 확언했다.

2008년은 그의 야구 인생에 있어 최고의 시즌이 됐다. 홈런(33), 타점(90), 도루(38) 부문에서 자신의 역대 최고 기록을 동시에 수립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32번째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4년 연속 20-20 기록을 이어갔다. 3년 연속 올스타에 뽑혔고, 2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차지했다. 생애 처음 실버 슬러거상도 품에 안았다.


● 부상의 악령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첫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09년부터다.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크클래식(WBC)에서 미국 대표팀으로 뽑혔지만 캠프 기간 도중 사타구니 부상을 입어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을 참고 경기에 나섰지만 결국 9월초 수술대에 올랐다. 한 달 가량 정규시즌이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인디언스가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 시즌을 기약하자는 차원에서 내려진 조치였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불과 1주일 만에 허리 디스크 수술도 받았다. 2010년에는 왼쪽 무릎이 말썽을 부렸다. 30경기 출전에 그친 채 시즌을 일찌감치 마무리했다. 이듬해에는 오른쪽 무릎 수술과 허리 디스크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2012년 구단이 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지만 인디언스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년 500만 달러의 조건에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두 무릎과 허리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2013년에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의 기억 속에서 ‘야구 천재’의 모습은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 추신수와 사이즈모어

추신수와 사이즈모어는 동갑내기다. 추신수의 생일이 20일 빠르다. 하지만 두 선수가 걸어 온 길은 정반대였다. 사이즈모어가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반면 추신수는 대기만성형 스타일이었다.

두 선수는 2006년 시즌 도중 추신수가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사이즈모어가 최고의 외야수로 자리매김했을 때 추신수는 붙박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사이즈모어가 부상으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2009년부터 추신수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추신수는 2년 연속 타율 0.300, 20홈런, 20도루를 기록하며 인디언스의 중심 타자가 됐다.

추신수도 2011년에는 부상을 당해 85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이듬해 155경기에 나서며 사이즈모어의 공백을 메웠다. 2013년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한 추신수는 생애 3번째 20-20 클럽을 달성했고, 출루율 0.423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선두타자로 인정받았다.

사이즈모어와는 달리 올스타,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등 눈에 띄는 수상 경력이 없지만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반면 FA 시장에서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사이즈모어는 1년 75만 달러의 조건에 레드삭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성적에 따라 600만 달러까지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추신수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사이즈모어의 통산 성적은 89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9, 139홈런, 458타점, 134도루, 출루율 0.357이다. 이에 비해 853경기에 출전한 추신수는 타율 0.288, 104홈런, 427타점, 105도루, 출루율 0.389의 성적을 남겼다. 타율과 출루율은 추신수가 낫지만 홈런, 타점, 도루는 근 3년을 통째로 쉰 사이즈모어가 여전히 앞선다. 절친이자 라이벌 관계인 두 선수가 올 시즌부터 펼치는 3라운드 대결이 기대된다.


● 절치부심

조니 데이먼에 이어 엘스베리마저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에 빼앗긴 레드삭스는 스프링캠프에서 주전 중견수로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를 낙점했다. 하지만 이제 23살에 불과한 브래들리 주니어는 시범경기에서 1할대 타율을 보이며 극심한 난조를 겪었다.

반면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캠프를 치르고 있는 사이즈모어는 줄곧 3할대의 타율을 유지하며 주전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갔다. 빠른 발을 이용한 수비 능력도 전성기에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드삭스 구단 관계자는 “2011년 이후 그라운드를 떠나 있던 선수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역시 그의 건강 상태다. 오랜 공백을 딛고 162경기를 치르는 장기 레이스를 무사히 마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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