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더 클라이밍팀, 허공에 매달려 오르고 또 오르고…“올해는 애국가 울려야죠”

입력 2014-04-10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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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암벽에 매달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이더 클라이밍팀.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아이더는 스포츠클라이밍의 대중화와 전문선수 육성을 위해 5명의 클라이밍 기대주를 선수로 영입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승현, 송한나래, 박지환, 서성보(왼쪽부터).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비상 꿈꾸는 아이더 클라이밍팀

‘제2 김자인’ 송한나래
양대 종목 모두 하는 여자선수는 내가 유일

서성보의 클라이밍 입문 계기
등산 마니아 아버지 따라 산에 갔다가…

막내 김승현의 바람
친구들이 알만큼 대중적 스포츠 됐으면…

맏형 박지환의 훈련 방식
하루는 지구력훈련, 다음날은 근력운동


서울 성수동 2가의 K2 C&F 실내암장은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두 팔의 근육에만 의지해 가파른 벽에 매달려 있던 남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뮤지컬 위키드의 명넘버 ‘디파잉 그래비티(중력을 벗어나)’가 울려 퍼지는 듯한 장면이었다. 중력에 반항하듯 허공에 머물던 남자가 지면으로 내려왔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하니 남자가 시익 웃으며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다행이네요”라고 했다. 그는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아이더의 클라이밍팀 선수 서성보(20·신라대2)였다.

아이더는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대중화와 전문선수 육성 및 후원을 위해 2012년 4월 팀을 창단했다. 현재 소속선수는 박지환(25·숭실대4), 송한나래(22·한국외대4), 서성보, 양지원(18·서초고3), 김승현(15·경일중3) 다섯 명이다. 이들은 뛰어난 기량과 경험, 정신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대회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며 우리나라 스포츠클라이밍계를 대표하고 있다. 인터뷰에는 박지환, 송한나래, 서성보, 김승현이 함께 했다.


-평소 함께 모여 훈련할 기회가 많은가.

“(박지환)서울, 부산, 인천 등에 살고 있어 자주 만나기는 어렵다. 평소 훈련은 각자 하다가 대회 때나 팀 미팅 때 얼굴을 보고는 한다. 소통은 주로 카톡방(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이루어진다(웃음).”


-송한나래 선수는 인공암벽을 오르는 스포츠클라이밍과 빙벽을 오르는 아이스클라이밍 양대 종목을 소화하는 보기 드문 경우다. 두 종목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송한나래) 사실 두 종목을 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특히 여자는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스포츠클라이밍은 두 손과 발만을 사용하지만 아이스클라이밍은 얼음을 찍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장비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장비를 손처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섬세한 스포츠다.”

‘암벽여제’ 김자인(26) 이후 국내 여자 클라이밍계 최고의 기대주로 꼽히는 송한나래는 지난해 청송 전국아이스클라이밍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청송 아시아선수권 2위, 청송 월드컵에서는 5위를 해 스포츠클라이밍에 이어 아이스클라이밍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서성보 선수는 어떤 계기로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나.

“초등학교 6학년에 시작했다. 아버지가 등산 마니아셨다. 산악회에서 활동하셨는데 아버지 지인 분께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소개해 주셨다. 주변에서 ‘잘 한다, 잘 한다’하니 칭찬 듣는 재미로 빠져들게 됐다. 그 나이 때는 역시 칭찬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웃음).”


-김승현 선수는 팀의 막내다. 중학생인데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라고 하면 친구들 반응이 어떤지.

“(김승현) 전에는 ‘그런 것도 선수가 있냐’고 하더니 요즘에는 ‘아직도 그거 하냐’고 한다. 그런 친구들에게 ‘스포츠클라이밍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항상 말해도 이해를 못 한다.”

“(박지환) 우리가 어릴 때는 더 했다. ‘학교 건물에 한 번 올라 가 보라’고 요구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서성보) 학교 대청소하는 날이면 건물 외벽이나 창문을 닦으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송한나래) 난 ‘팔씨름 잘 하냐’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것 같다.”

아이더 클라이밍팀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여성에게 어떤 점이 좋을까.

“(송한나래) 호리호리하기 보다는 다부진 몸매를 만들어준다. 건강하고 야무진 근육이 생긴다. 여자가 봐도 멋진 몸을 완성하는데 좋은 운동이다.”

“(박지환) 여성 동호인들을 지도할 때 보면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면 몸집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더라. 절대 그렇지 않다. 여자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국제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많다. 국내 선수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송한나래) 몇 년 전부터 매우 높아졌다. 실력이 좋고 강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외국인 선수들이 견제를 하는 일도 많아진 것 같다.”


-견제는 어떤 식으로 하는가.

“(서성보) 선수들이 경기 전에 몸을 푸는 대기실이 있다. 작은 암벽이 하나 있는데 선수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라이벌 선수가 많이 매달리지 못하게 그 앞을 왔다갔다하는 식으로 은근히 견제를 하고는 한다. 나도 당해봤다.”


-평소 훈련은 어떤 식으로 하나.

“(송한나래) 이틀하고 하루 쉬는 식이다. 1주일에 5일 정도 훈련을 한다. 학생이라 주로 일과가 끝난 저녁에 3시간 정도 운동한다. 벼락치기 시험공부하듯 주말에 몰아서 하기도 한다(웃음).”

“(박지환) 이틀하고 하루 쉬는 사이클은 선수들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내 경우 하루 지구력훈련을 하면 다음날은 근력훈련을 하는 식이다.”

아이더는 스포츠클라이밍을 알리고 보급하기 위해 다양한 대회를 개최 또는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아이더 클라이밍 페스티벌’을 성황리에 개최하기도 했다. 일반 동호인을 대상으로 마련한 행사로 100여 명의 클라이머가 참가해 프로선수 못지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치열하게 경쟁했다. 2월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SPOEX 2014 아이더컵 전국볼더링경기대회’의 공식후원사로 참여했다. 아일랜드, 일본 등 해외선수들까지 몰리며 국제대회 못지않은 수준의 경기가 펼쳐져 동호인들의 각광을 받았다. 아이더 클라이밍팀 선수들도 참가했다.

“올해는 국제대회에 나가 애국가 울리고 와야죠.”

인터뷰를 마친 선수들이 하나둘씩 암벽에 매달려 훈련을 시작했다. 네 명의 남녀가 허공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그들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보지 않았다면,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웠다.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오르는 인간의 행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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