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베이스볼] 프로에겐 돈이 당근…메리트의 심리학

입력 2014-04-1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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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만 가면 별의별 메리트 등장
선수들 사구 1개 수십만원…눈에 불 켜
일부 구단은 라이벌 팀 표적 메리트도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미국 풍자소설의 대가 커트 보네거트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야구도 사람이 하는 이상, 돈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땀과 눈물이 드러나는데 비해 돈은 뒤에 숨어있지만 말이다.


● 승리의 ‘필요악’, 메리트

야구 선수는 연봉을 받는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이기라고 받는 돈이다. 그런데 이기면 가욋돈이 또 생긴다. 속칭 ‘메리트’다. 즉 승리수당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구단이 선수들에게 이 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른 구단들이 다 하는데 우리만 안하면…’이라는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 몇 년 전, 단장회의에서 메리트를 하지 말자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부자구단의 A단장이 주도했다. 이에 메리트에 회의적인 B구단 단장은 ‘얼씨구나’ 하고 찬성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메리트를 안 하는 구단은 B구단밖에 없었다. 더 경악할 일은 A구단은 가장 화끈하게 메리트를 주고 있었다.


● 메리트는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다면 메리트, 즉 승리수당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까. 이 질문에 대한 정설은 ‘예’다. 몇 해 전, C구단은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열세란 예상을 깨고, 첫 판에서 승리를 거뒀다. 마침 그룹 총수가 관전한 날이었다. 그날 밤 선수단 원정숙소를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수들은 금일봉 생각에 설레었다. 그러나 방에 들어온 회장님의 선물은 ‘꿀물’이었다. 선수단은 맥이 빠졌고, 이후 거짓말처럼 연패로 탈락했다.

D구단에서 E구단으로 이적한 모 코치는 포스트시즌을 한번 치르더니 혀를 내둘렀다. 전에 있던 구단보다 메리트의 단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코치는 “평상시 메리트를 거의 안 하더니 포스트시즌만 가면 별의별 메리트가 생기더라. 몸에 맞는 공 1개에도 몇 십 만원 메리트가 붙으니 선수들이 눈에 불을 안 켜겠나?”라고 증언했다. E구단이 가을만 되면 유독 야구를 잘한 숨은 비결 중 하나라 할만하다.

그러나 메리트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인간이란 ‘비교의 동물’이기에 어떤 타이밍에 얼마나 화끈하게 지를 수 있느냐에 따라 효험이 달라진다. 돈은 버는 것 못지않게 쓰는 것도 어려운 모양이다.


● 메리트의 심리학

구단은 기왕 메리트를 쓴다면 최대효과를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메리트의 종류가 다양하다. 월간승률, 주간승률에 따라 메리트가 발생하는 구단이 있다. 연승에 메리트가 붙는 시스템이 있다. 아예 1승당 메리트를 지급하는 팀도 있다.

지난겨울 대대적 전력보강을 하고, 우승 도전을 선언한 F구단은 올 시즌 메리트 시스템까지 바꿨다. 과거 연승 시, 공헌도에 따라 차등지급한 메리트를, 올 시즌부터 1승당, 코칭스태프 포함 엔트리전원 균등지급으로 바꾸는 파격을 실시했다. 메리트부터 1승을 향한 간절함이 읽힌다.

F구단과 대립하는 G구단은 F구단 경기에 맞춰 ‘표적 메리트’를 건다는 얘기가 돌았다. 얘기를 전해들은 F구단은 굉장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표적 메리트 자체도 기분 나쁘지만 액수가 뻥튀기 돼서 F구단 선수들 귀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F구단 선수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저열한 심리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의도를 떠나 실제 선수들은 정보를 공유하기에 메리트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은 팀 사기와 직결된다. ‘H구단이 메리트를 걸면 H구단 연고지역의 5만 원 권이 다 사라진다’는 과장이 나도는 것도 그래서다.

‘돈으로 승리를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보적이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 돈 없이 승리를 설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유효하다.

사직|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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