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삼성화재 블루팡스 신치용 감독(왼쪽)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이 5월 27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 호텔에서 만났다. 경기도 용인의 삼성 STC에서 체력훈련을 지도하던 신 감독이 서울로 원정경기를 온 류 감독을 방문해 대담이 성사됐다. 두 감독은 V리그 8연속 시즌 우승과 프로야구 4연속 시즌 통합우승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프로야구 3년 연속 통합우승 류중일 감독 “프로는 1등만 생존한다”
연속 우승 걸림돌은?
신치용 감독 “느슨함이 큰 적…모든 경기에 목숨 걸어야”
류중일 감독 “프로는 1등만 존재…나태해지면 바로 OUT”
감독으로 산다는 건?
신치용 감독 “우승 후 친했던 감독과 몇년째 서먹서먹”
류중일 감독 “친구조차 떠나간 외로운 자리, 하지만 숙명”
선수들 조련 비법은?
신치용 감독 “원칙 중심…나이 한계 짓는 선수 인정 안해”
류중일 감독 “관심과 격려 가장 중요…형님처럼 함께 한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이후 프로야구 감독(감독대행 포함)의 명함을 손에 쥔 사람은 현역감독을 포함해 모두 64명이다. 이 가운데 우승 감독은 고작 12명이다. 2시즌 연속 우승은 5명(김응룡 김재박 선동열 김성근 류중일)이 했다. 3년 이상 연속우승은 김응룡 감독과 류중일 감독 단 2명뿐이다.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51)은 이번 시즌 김응룡 감독(해태, 1986∼1989년)이 기록했던 4연속 우승이자 사상 첫 4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노린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신치용(59) 감독은 이미 국내 프로스포츠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13∼2014시즌 V리그 우승으로 7연속시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V리그 10시즌 가운데서 무려 8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V리그를 경험한 21명의 감독(4명의 감독대행 포함) 가운데 가장 빛나는 성과를 올렸다. 신 감독은 삼성화재 감독재임 20년째로 접어드는 다음 시즌에 V리그에서 또 한번의 우승을 꿈꾸고 있다. 경쟁 감독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자 선망의 대상인 신치용-류중일 감독, 두 사령탑이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났다.
● 우승 당일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승의 들뜬 기분이 가라앉은 다음날 아침 무슨 생각을 했나.
△류중일 감독(이하 류)=야구 감독은 경기에 이기면 코치들하고 악수하고 선수들하고 하이파이브 하는 순간만 기쁘다. 우승을 해도 헹가래 받는 순간만 기쁘다. 그 다음은 또 내일 경기, 다음 시즌 걱정이 앞선다. 우승팀이 하위권의 팀보다 이런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 연속 우승을 할수록 그 부담은 더 커진다. 신치용 감독님이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인다. 말이 7번이지. 감독은 항상 내일과 다음 시즌이 두렵다.
△신치용 감독(이하 신)=우승 다음날 새벽에 눈을 뜨면 ‘이래서 1년을 고생했구나. 이제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승 다음날 선수들과의 새벽 미팅에서 하는 말이 있다. “어제 일은 잊어라. 추억이다. 오늘부터 한달 휴가를 주지만 이것은 포상이 아니고 또 새로운 준비를 위해 몸을 가다듬으라는 것이다. 내년 봄을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냐”고 말한다.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잘 나갈 때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정상에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감독은 우승을 할수록 더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고 스스로를 쪼아야 한다.
● 아마추어는 우승을 위해 뭉치고 프로는 우승으로 하나가 된다고 한다. 우승이란 어떤 것인가.
△신=이런 인터뷰로 욕먹을까 두렵다. 나나 류 감독이나 상대 팀에서 보자면 ‘공공의 적’이다. 그렇지만 욕먹을 것이 두려워 적당히 경기를 할 수는 없다. 감독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리다. 힘들게 고생한 선수를 위해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도리다. 우리만 우승해서 다른 팀이나 다른 선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안 할 수는 없다. 우리 팀 주장 고희진은 우승반지를 8개나 가졌다. 그 반지를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은퇴하는 배구선수가 90%를 넘는다. 다른 선수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감독이다.
△류=프로페셔널은 1등만 살아남는다. 2011년 첫 번째 우승을 한 다음 시즌 초반에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코치들에게 싫은 소리를 좀 했다. 우승 맛을 한 번 보니 또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느 코치가 ‘작년에 했는데 또 하려고 하나’라고 불평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래서 그 코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신=연속 우승 팀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부의 느슨함이다. ‘이제 적당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문제다. 1년이고 2년이고 모든 경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금 우리 선수들을 한 달째 다그치는 이유다. 선수들에게 “지금 여유가 있냐? 여기서 한 번 무너지면 그 동안 우승의 추억은 다 과거가 된다”며 자극하고 있다.
신치용 감독-류중일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 두 분 감독은 ‘우승 제조기’로 불린다. 감독이란 자리는 외롭다고 한다.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류=맞다. 감독은 외로운 자리다. 특히 가족이 더 힘들 것이다. 누구누구의 아내, 자식으로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그것이 가족에게 가장 미안하다. 감독이 되면서 주위의 친구도 다 떨어졌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 정말 외로울 때 하소연할 사람도 없다. 혼자 숙소에서 술을 마시거나 어쩌다 단장 혹은 입단 동기인 김정수 매니저와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전부다. 외롭지만 그것이 숙명이다.
△신=코치들이 먼저 감독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얘기도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면 강요나 지시가 된다. 원정을 가면 숙소도 선수들과 다른 층에서 쓴다. 식사도 따로 한다. 혼자 방에서 이틀씩 쳐 박혀 있을 때도 있다. 주위에서 “왜 졌느냐”고 묻는 그 말이 가장 듣기 싫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우리를 이기는 팀으로 안다. 우리 팬들은 패배에 익숙하지 않다. 경기 뒤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지만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경기 전에도 밥도 먹지 못한다. 잠이 안 오면 빈속에 폭탄주를 빨리 마신 뒤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한다. 그렇게 해도 잠이 안 오면 꼬박 세운다. 그런 날은 밤새도록 그날 경기를 최소 5번 정도 복기한다. 강만수 감독은 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지만 내가 우승한 뒤로 몇 년째 말을 안 한다. 김호철 감독도 예전엔 함께 이태원에도 놀러가고 그랬지만 감독이 된 뒤로는 서먹서먹해졌다. 감독은 그런 자리다.
△류=홈경기를 하면 매일 오전에 MTB(산악자전거)를 타고 집 부근을 한 시간씩 돈다. 그때가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시간이다.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면 아무도 날 몰라본다. ‘당연한 우승’이라는 소리가 가장 듣기 싫다. 타 팀과 비교했을 때 항상 모자란 것이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고 또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다. 외로워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 감독이다. 감독은 모든 것에 책임을 진다. 잘 할 때는 감독이 필요 없다.
● 평소 감독의 위치에서 선수들을 어떻게 조련하는지 궁금하다. 적잖이 다그칠 것 같은데.
△신=원칙이 있어야 한다. 나는 절대로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후배는 기다려줄 수 있지만 선배가 늘어지면 집에 가는 길 밖에는 없다. 그래서 선참이 혹독하게 훈련을 하면 팀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 예전에 석진욱이 “감독 눈치가 무서워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가 무서워서 훈련한다”고 했다. 그런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싫어하는 타입은 스스로가 한계를 미리 정하는 선수다. 내가 약하면 만들어 내야 한다. 약한 것에 맞춰 훈련하면 발전이 없다. 프로선수라면 자신이 가진 능력이 80%뿐이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120%까지 가야한다. 언젠가 우리 선수가 “제 능력은 이것 밖에 안 되는데 왜 그 이상을 시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승팀이다. 우승 팀의 선수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단계까지 가야한다. 나는 기준을 우승팀에 둔다“고 대답했다. 결국 감독의 평소행동이 중요하다. 누구나 경기에 질 수 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가 팀을 만든다. 남의 탓 선수 탓을 하지 않고 감독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것이 쌓이면 선수들은 스스로 따른다.
△류=감독은 필요할 때만 보여야 한다. 선수가 팀에서 제일 먼저 보여야 하고 그 다음이 코치다. 예전 감독들은 권위도 있었고 무서웠다. 나는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와 차이를 좁히려고 한다. 위엄보다는 같이 호흡하고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들이 지닌 어려움을 먼저 얘기하고 관심을 가져준다. 따로 방에 불러서 얘기하는 것은 안 한다. 얘기는 그라운드에서 한다. 선수와 내가 같이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때 팀이 어려운 적이 있었는데 내 지시로 투수 야수는 물론 감독 단장도 같이 러닝을 했다. 같이 호흡을 하고 서로를 느끼자고 했다. 계기가 됐다. 선수에게는 감독의 관심과 격려가 가장 중요하다. 무관심이 제일 무섭다.
● 감독은 선수가 몸으로 느낄 때까지 기다리는 자리라고 한다. 특히 배구는 방송카메라가 생중계하듯 들이대고 있다. 경기 때 어떻게 지시를 내리나.
△신=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지시할 때가 있다. 그 지시는 단순해야 한다. “야 임마 뭐해?” 하면 끝이다. 그 말을 모든 선수들이 알아듣고 스스로 어떻게 하기 위해서 수천 번씩 연습하는 것이다. 경기 도중에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는 것은 선수에게 내가 잘 안다고 자랑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감독이 알면 뭐하나. 선수가 느끼고 하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선수가 그것을 알고 잘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감독은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감독이 팀과 선수에게 먼저 헌신하고 다가서지 않으면 카리스마는 생기지 않는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