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사랑한, 아버지의 꿈이 된 ‘영화 형제’ 조동인·조현우

입력 2014-06-17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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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바둑을 좋아하는 것도 아버지를 꼭 닮았다. 감독이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두 아들이 배우(조동인·오른쪽)와 제작자(조현우)가 되어 아버지의 꿈을 이루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 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12일 개봉한 바둑영화 ‘스톤’의 두 주역 조동인·조현우

인생의 축소판 이라는 반상위의 시나리오
개봉 못보고 암투병 중 세상 등진 조세래감독
맏아들 현우씨는 연출스태프·동생은 주연배우
바둑을 사랑한 아버지의 데뷔작이 더 특별한 이유


바둑은 인생과 닮았다. 물러섬과 전진이 반복되고, 실패할 듯하다가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주어진다. 정사각형 바둑판 위에서는 마치 ‘전쟁’과도 같은 삶의 면면이 펼쳐진다.

영화 ‘스톤’을 연출한 조세래 감독이 바둑알을 잡은 건 10대 시절이다. 감독을 꿈꾸기 전 바둑의 세계에 먼저 빠졌다. 결혼해 낳은 두 아들이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바둑알부터 쥐어줄 정도였다.

그의 맏아들 현우(28) 씨는 바둑보다 영화가 좋았다. 낡은 캠코더를 들고 “블록버스터 만들겠다”고 라이터가 터지는 장면을 ‘연출’한 게 13세 때다. 하지만 동인(25)은 형과 달리 9세 때 접한 바둑에 꽤 흥미를 느꼈다. “어머어마하게 치열한 싸움”이고 “거칠고 남자다운 게임”인 바둑의 매력에 빠졌다. 이젠 아마추어 3단의 실력까지 갖췄다.

아버지의 DNA는 아들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두 아들은 영화의 세계로 들어섰다. 중학생이던 현우 씨가 ‘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초등학생인 동인이 장래희망 란에 ‘배우’를 적었을 때도 감독은 별 말이 없었다.

그런 조 감독의 꿈 역시 ‘영화감독’이었다. 대학 국문과를 다니던 시절부터 소설보다는 시나리오가 좋았다. 학교를 관두고 영화사를 기웃댔다. 1980년대 일이다. 우연히 정지영 감독과 연이 닿았다. 1991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이듬해 ‘하얀전쟁’의 각본을 썼다. 상도 받았다. 비로소 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첫 연출작 ‘스톤’을 내놓기까지 꼬박 21년이 걸렸다. 어렵게 탄생한 ‘스톤’은 12일 개봉했지만 조 감독은 개봉관을 찾을 수 없다. 지난해 11월 그는 암 투명 중 눈을 감았다. ‘스톤’ 작업을 마무리한 뒤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꼬박꼬박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동인은 ‘스톤’의 주연배우로, 현우 씨는 연출부 스태프로 참여하며 익숙해진 호칭이다.

“2011년 즈음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줬다. ‘날 주인공 시켜주려나’ 했는데 모든 스태프가 주인공과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했다.(웃음) 실망해서 군대나 가야지 싶었는데 다시 제의가 왔다. 주연 맡을 만한 배우 중 그 누구도 바둑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더라.”(조동인)

영화는 천재 바둑기사가 조직 보스의 바둑 선생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바둑을 매개로 이어지는 인간사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로 극단에서 연기를 배운 동인은 ‘스톤’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조 감독과 두 아들은 작은 승용차를 타고 촬영장을 오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늘 ‘오늘은 무슨 안주로 술 마실까’ 고민하는 게 이들 부자의 주된 대화 소재였다. 현장 연출부였던 현우 씨는 “나에겐 퇴근이 없었다”고 했다.

“촬영 때나 집에 와서도 언제나 영화 이야기를 했다. 현장에선 충신 같았고 집에선 마치 간신처럼(웃음) 스태프의 여러 의견을 감독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감독의 부재로 인해 현우 씨는 영화사(샤인픽쳐스)의 대표 직함까지 갖게 됐다. 아버지가 이끌던 회사다. 아들로서 책임감도 작용했다.

1993년 조 감독은 ‘스톤’의 모태이기도 한 영화 ‘명인’의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키로 했다. 하지만 투자의 어려움이 닥쳤다. 잠시 영화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중고 자동차 관련 일을 했고 기원도 운영했다. 바둑소설 ‘승부’도 펴냈다. 모두 가족을 위한 선택이다.

“어릴 때부터 감독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 형제와 함께 노는 걸 그 어떤 것보다 좋아하셨다. 언제나 대화도 많았는데 그게 특별한 일인지 몰랐다.”(조현우)

“조세래 감독님은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연출자다. 다음 영화에 또 출연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조동인)

형제는 ‘스톤’을 넘어 더 넓은 영화의 세계로 나선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현우 씨는 9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작품 연출을 시작한다. “재미있는 단편영화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다.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일대일’에 출연한 동인은 7월 초 일본 후쿠오카영화제로 향한다. 첫 주연작 ‘스톤’이 영화제에 진출한 덕분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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