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슬기는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다시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2번의 변신을 거쳐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성장했다. 다음달 캐나다에서 열리는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에서도 한국의 주전 골잡이로 나선다. 스포츠동아DB
4년전 언니들에 밀려 수비수였던 막내
작년 亞 U-19선수권 8골 득점왕 우뚝
이제는 캡틴 완장 차고 대표팀 해결사
팀 위해 포지션 또 바꿔도 괜찮답니다
캡틴 장슬기, 월드컵 6골 기대할게요
월드컵이 독일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에게 기쁨보다는 슬픔을 안겨준 대회였지만, 세계축구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돌아보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일과 남아공에선 우리 대표팀이 탈락한 뒤에도 현지에 남아 그동안 놓쳤던 다른 팀들의 경기도 보고 관광도 하면서 결승전을 기다렸지만, 이번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음달 캐나다에서 열리는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소집훈련에 들어간 한국대표팀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목포로 떠났습니다. 우리나라는 4년 전 독일대회에서 지소연 선수의 맹활약에 힘입어 3위에 올랐고, 같은 해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선 우승컵과 함께 골든볼, 골든슈를 싹쓸이한 여민지 선수가 스타로 떠올랐죠. 바로 그 대회에서 일본과의 결승전 승부차기 마지막 킥을 성공시켰던 장슬기 선수가 어느덧 성장해 주장 완장을 차고 이번 대회에 출전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장슬기 선수는 분명 오른쪽 풀백이었는데, 작년에 열린 아시아 U-19 여자선수권대회에서 8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4년 전 트리니다드토바고로 떠나기 전에 인터뷰했던 최덕주 감독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유소년 레벨에선 각 소속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선발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격수들이 대표팀에 모이는 경향이 있답니다. 당시 U-17 대표팀에는 여민지라는 세계정상급 스트라이커가 있었기 때문에, 막내였던 장슬기 선수는 공격수임에도 수비수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한 장슬기 선수는 처음에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낙천적 성격 덕분인지 운동에 집중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2년 전 일본에서 열린 U-20 여자월드컵에선 왼쪽 풀백으로 출전했고, 예선에선 중앙수비까지 봤다고 하네요. 수비진의 여러 포지션을 두루 거친 장슬기 선수는 이제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을 미리 읽을 수 있는 ‘슬기로운 공격수’로 탈바꿈했습니다.
여자 앞에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인터뷰 도중에는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군대스리가’에서 뛰어본 경험을 돌이켜보면 포지션은 늘 계급 순으로 정해지곤 했습니다. 병장은 포워드, 상병은 미드필더, 일등병은 수비수, 이등병은 골키퍼 또는 볼보이, 이런 식이죠. 간혹 특별한 재능이 있는 신병이 자대배치를 받아 공격진에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기도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하면 그날 밤 내무반에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단순무식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랭킹 포메이션’은 계급에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어쩌면 자연스러운 진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축구에선 결과가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선 골을 넣어야 하고, 골을 넣으려면 좋은 공격수가 필요하죠. 그래서 공격수들의 몸값이 가장 비싸고,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르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수가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골(goal)’은 말 그대로 목표일 뿐, 경기 자체가 될 수는 없죠. 공이 수비진에서 미드필드를 거쳐 전방으로 전달되는 과정이 없으면 골도 나올 수 없습니다.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장슬기 선수는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다시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두 번의 변신을 거쳐 아시아 최고의 골잡이로 성장했습니다. 내친 김에 혹시 미드필더 역할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팀을 위해 ‘성천쌤(정성천 감독)’이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따르겠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답니다. 이미 중앙에는 이소담 선수처럼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서 자기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하네요. 겸손합니다.
그럼 장슬기 선수는 캐나다에서 몇 골을 넣는 게 목표일까요? 아시아에서 여덟 골을 넣었으니까 월드컵에선 대여섯 골만 넣어도 좋을 것 같답니다. 역시 겸손합니다.
● 정훈채는?
FIFA.COM 에디터. 2002한일월드컵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 안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축구와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UEFA.COM 에디터를 거치며 축구를 종교처럼 생각하고 있다. 2014브라질월드컵에는 월드컵 주관방송사인 HBS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국제축구의 핵심조직 에디터로 활동하며 세계축구의 흐름을 꿰고 있다.
[스포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