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정근우(32)가 십년감수했다. 15일 대전 롯데전에 앞서 훈련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던 그는 취재진과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표정부터 지었다. “정말 죽을 뻔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유가 있다. 하루 전인 14일 경기, 한화가 3-8로 뒤진 7회말 무사 만루였다. 타석에 선 김태균이 초구를 쳐 유격수 쪽으로 땅볼 타구를 날렸다. 3루주자였던 정근우는 주자가 2루와 1루에서 연이어 아웃되는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늦췄다. 홈에 도착해서도 홈플레이트를 밟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정근우는 “무사가 아니라 1사 만루였다고 순간 착각했다. 그냥 이닝이 끝난 줄 알았다”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천천히 덕아웃으로 향하는 정근우를 보며 1루쪽 덕아웃과 관중석이 얼어붙었던 그때, 정근우의 귀에 롯데 포수 장성우의 외침이 들렸다. “홈! 홈!” 1루수에게 얼른 홈으로 공을 던져 달라는 의미였다. 순간 정근우가 순발력을 발휘했다. 재빨리 방향을 바꿔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천신만고 끝에 득점이 인정됐다. 정근우는 “장성우의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지?’ 싶어 일단 홈부터 밟고 봤다. 주심이 세이프를 선언하자마자 ‘노 아웃 만루였잖아’라고 얘기해주더라”면서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홈에서도 아웃이 돼 이닝이 끝났더라면, 황당한 삼중살 플레이로 한동안 회자됐을 법한 장면이다. 정근우와 한화 모두에게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정근우는 “덕아웃에서는 다들 아무 말 안했지만, 팬분이 일침을 놓으시더라. 들어오는데 저 위에서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고 누군가 외치셨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늘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는 정근우도 이번만큼은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네! 알겠습니다.”
한편 정근우는 15일 경기 1회 첫 타석부터 좌중간 2루타를 터트리면서 2006년 이후 9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달성했다. 역대 여덟 번째 기록이다.
대전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
사진|스포츠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