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볼링 국가대표 이나영.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2·3인조 금 이어 5인조 은…개인종합서 금
오랜 무명 시간 끝에 작년 늦깎이 태극마크
여리다는 말 싫어 부상에도 이 악물고 경기
“이 악물고 쳤다. 아픈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여자볼링대표 이나영(28·대전광역시청)이 2014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선수단에서 첫 3관왕으로 등극했다. 이나영은 30일 안양 호계체육관에서 펼쳐진 5인조 경기에서 1256점을 기록해 개인전·2인조·3인조 경기까지 포함한 개인종합(24게임)에서 합계 5132점(평균 213.83점)으로 말레이시아의 신리제(5095점)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5인조 경기에선 손연희, 정다운, 김진선, 이영승, 전은희와 함께 은메달(합계 6048점)을 합작했다. 24일 개인전 동메달을 시작으로 2인조와 3인조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땄던 이나영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과 동메달 1개씩을 획득했다.
● 무릎 부상에 이 악물고 출전
무릎 근육이 파열되는 고통도, 긴 무명의 시간도 이나영의 금빛 스트라이크를 막진 못했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오른쪽 무릎. 테이프가 칭칭 감겨있는 모습에서 한 눈에 봐도 정상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훈련 도중 다친 이후로 지금까지도 통증이 이어지고 있다. 이나영은 “통증이 있었지만 게임에 집중하다보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참을 만했고, 이를 악물고 쳤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나영의 말과 달리 무릎 부상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닌 듯했다. 그녀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테이핑을 걷어내고 그 위에 얼음 팩을 올려 아이싱 마사지부터 했다. 관중석에서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본 어머니 김미향(51) 씨는 안타까운 마음에 두 손을 꼭 모았다. 김 씨는 “‘괜찮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 오늘 무릎 상태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딸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합숙훈련을 하느라 얼굴을 본 것도 몇 개월 만인데,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있으니 절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경기 후 한참 동안 서서 딸을 기다린 김 씨는 “고생했다”고 말하며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 ‘여리다’는 말이 듣기 싫었다!
이나영은 지난해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된 ‘늦깎이’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가장 밝게 빛났다. 볼링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다니는 볼링장을 따라다녔고, 취미로 볼링을 하다 선수의 길을 택했다. 성적도 좋았고 청소년대표를 지낼 정도로 한 몸에 기대를 샀다. 그러나 태극마크와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27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나이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라면 꼭 한번 국가대표를 해보고 싶었기에 그 믿음 하나로 계속 도전했다.”
태극마크를 향한 이나영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녀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볼링이 더 좋았다. 몇 년 동안은 볼링 이외엔 그 무엇도 관심이 없었다. 소속팀 코치님과 함께 밤새도록 연습할 때도 많았고, 집에 와서도 밤늦도록 연습하면서 오로지 국가대표만 바라보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땀을 흘렸지만, 태극마크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를 따라다닌 꼬리표는 ‘너무 여리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나영은 주변의 그런 평가를 보란 듯이 이겨냈다. “‘여리다. 너는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싫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이제는 ‘너 정말 독하다. 악바리다’라는 말을 듣고 있다. 국가대표가 된 이후엔 더 자주 듣고 있다.”
부모님의 헌신도 이나영을 강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이영호(52) 씨는 딸이 집에서도 훈련할 수 있도록 자전거 튜브로 연습도구를 만들어줬고, 어머니 김 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딸과 함께 땀을 흘렸다. 이나영은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다”며 웃었다.
안양|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