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청천벽력같은 시한부 선고
AG 대만전 시구…“지금도 심장이 뛴다”
“거의 1년 만에 공을 잡아본 것 같아요. 이상하죠. 그렇게 오랫동안 공을 던졌는데 오늘 시구하러 나가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거예요. 하하.”
김진경 대한소프트볼협회 기술위원장은 30일 한국과 대만의 예선전이 치러지는 인천 송도LNG구장에서 시구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염광여고 1학년 때 피구를 하다가 체육 선생님의 눈에 띄어 소프트볼을 접한 뒤 25년간 단 한 번도 놓아본 적 없는 공이었는데,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면서 마치 처음 소프트볼을 시작할 때처럼 심장이 힘차게 뛰었다.
김 위원장은 한국여자소프트볼 1세대다. 한국에 소프트볼이 상용화하기 전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초창기였던 1989년 이화여자대학 소프트볼 선수로 뛰었다. 1990북경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발탁돼 1994히로시마, 1998방콕, 2006도하까지 총 4번의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았다.
김 위원장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구속이 90km가 넘었다. 마운드에서 포수까지 투구거리가 13.1m인 것을 감안하면, 타자들이 느끼는 체감속도는 150km에 육박한다. 빠른 공에 드롭볼, 체인지업 같은 변화구 구사도 뛰어났다. 김 위원장은 “다 옛날 얘기”라며 웃었지만, 지난해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선수로도 뛸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소프트볼은 비인기 종목이다. 여건도 여의치 않다. 경기를 뛰는 것보다 주위의 편견과 싸우는 일이 더 힘들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사람이 어떤 것에 미치지 않으면 열정을 부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소프트볼이 그랬다”며 “소프트볼은 나에게 몰랐던 세계를 알려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줬다”고 설명했다.
소프트볼을 향한 김 위원장의 열정이 너무나 커 하늘이 질투한 것일까.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았던 시한부 선고. 결국 25년 만에 소프트볼을 그만둬야했다. 그러나 암도 김 위원장의 소프트볼을 향한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원래 올해 5월까지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많은 분들의 기도와 엄마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다시 마운드에 못 설 줄 알았는데 오늘 다시 섰다. 시구를 하려고 기다리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더라. 1년 만에 공을 잡았는데 잘 못 던져서 아쉽다”고 웃었다.
인천|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