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봉 인터뷰 in BIFF] 즈비아긴체프 감독 “韓, 영화에 대한 사랑 어메이징!”

입력 2014-10-10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아, 이게 ‘셀카봉’이라는 거군요? 부산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걸 많이 봤어요. 신기하네요.”

영화 ‘리바이어던’(2014·러시아)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셀카봉’을 휘적대며 신기한 듯 바라봤다. 처음엔 사람들이 죄다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모습에 이상한 사람들인 줄 알았단다. 용도를 알려주니 그제야 이해를 하고 사진 찍을 장소를 찾더니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했다. 그러고선 “두 번째 사진이 더 잘나왔다”며 “그걸 꼭 써 달라”고 귀여운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생애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건물과 사람들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기분은 “완전 최고”라고 말했다. 인터뷰 전날은 자갈치 시장에 다녀오기도 했다. “해산물이 막 꿈틀거렸다”며 꿈틀거리는 제스처를 취한 감독은 부산에 대해 인상적인 도시라고 평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한국 관객들이에요. 한국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러 가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참 놀랍네요. 그만큼 영화에 대한 사랑, 만든 이들에 대한 존경이 증명되는 거잖아요. 사실, 재능 있는 제작자들이 영화를 만들지만 보러 가는 관객들이 있기에 영화 산업이 있는 거거든요. 한국 영화 산업이 발전하는 배경에는 분명 관객들의 힘이 클 거라 생각합니다. 아주 놀라워요.”


영화 ‘리바이어던’은 바렌츠 해 부근의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 니콜라이가 갑자기 마을의 시장으로부터 집을 뺏기고 이에 니콜라이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패한 시장과 사회 권력을 맞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다. 사회의 이면을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2014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각본상을 거머쥐었고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제87회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 영화 부문으로 출품을 확정지었다. 그가 이런 놀라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우연히 미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 한 스태프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벌어진 ‘킬 도저’라는 사건이 있었어요. 자동차 수리하는 정비공이 갑작스레 자신의 땅을 큰 권력에 의해 빼앗기게 된 거예요. 결국 그는 ‘킬 도저’(개조된 불도저의 이름)를 갖고 저항을 했고 경찰에 포위됐지만 결국 자살을 선택했죠. 이 이야기를 듣고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했어요. 러시아도, 한국도 종종 이런 사건이 발생하거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처음에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리바이어던’을 모큐멘터리(Mockumentary·소설 속의 인물이나 단체, 소설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마치 허구의 상황이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장르)로 만들려 했으나 마음을 바꿨다. 최초의 구상 배경 역시 미국이었으나 러시아로 옮겼다.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모큐멘터리에서 픽션영화로 만든 거죠. 실제 이야기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신경 쓰며 새로운 영화를 창조하겠다는 데에 중점을 뒀어요. 예술은 삶을 모방하고, 삶은 예술을 모방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점점 확대돼서 ‘보편성’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보편적으로 만드는 데에 힘을 썼습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국내 관객에겐 너무 낯선 인물일지 모르나 러시아의 유명 감독이다. 첫 장편 ‘리턴’(2003)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추방’(2007)으로 칸 영화제 공식초청, ‘엘레나’(2011)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러시아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찬사와 함께 명실 공히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러한 찬사가 아직은 쑥스러운가보다. “한국에선 ‘거장’이라고 표현하던데”라고 묻자 그는 “누가 그렇게 보도했는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2001년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며 1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각 작품마다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 안에 내 모든 땀과 힘 그리고 노력을 쏟아 부었다. 좋은 평가를 받으며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긴 하지만 그 외에는 별 것이 없다”고 겸손히 말했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원래 연기를 전공했다. 무대에서 연기를 해왔다. 무대에 서는 게 평생소원이었던 그가 2001년부터 갑작스레 메가폰을 잡았다. 마땅한 계기는 없다. 그는 스스로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세월을 살아가며 꾸준히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여기까지 오기까지 명확한 사건이나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소수의 사람만 빼놓고 말이죠. 저도 그래요. 특별히 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없고 자연스레 하게 됐어요. 영화가 날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운명의 호출인거죠. 이제는 영화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됩니다. 영화가 있어야 내 삶이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이런 감정은 어떤 논리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내년 2월 22일 제87회 아카데미시상식을 가게 된다. 그는 “부산영화제에서 아카데미에 오른 내 경쟁작들을 보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리바이어던’이 아카데이상 리스트에 들어간 것은 영광입니다. 사실 제겐 뜻밖이었어요. 조국에서 제 영화를 아카데미로 보낼 줄 몰랐어요. 요즘 러시아가 ‘비속어’에 정말 많이 신경 쓰고 있는 상황이라서. 제 영화에 비속어가 좀 있거든요. 하하. 영화사나 배급사의 힘도 벗어난 것이라서 정말 놀라워요. 이건 거의 기적이라 볼 수 있는 거죠.”

해운대(부산)|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즈비아긴체프 감독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