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김성근 감독 “영수야, 야구 오래해야지”… 배영수 “예, 감독님”

입력 2014-12-05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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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는 15년간 정든 삼성 유니폼을 벗고 독수리로 비상할 새 시즌을 그리고 있다. 배영수는 한화와 3년간 21억5000만원에 계약한 것에 대해 “돈은 먹고 살 만큼 벌었다. 한화는 나를 진심으로 대해줬다”며 “돈보다는 자존심을 택했다”고 밝혔다. 스포츠동아DB

■ 한화에 새둥지 튼 배영수

우선협상 끝난 다음날 김성근감독의 전화
“날 인정해주셔서 눈물 참느라 힘들었어요”

날 위해 지역신문에 광고 낸 삼성팬들 감사
깡으로 버틴 야구인생…돈 보다는 자존심

“힘드냐?”

삼성과의 FA(프리에이전트) 우선협상 마감일(11월 26일)까지 사인을 하지 못하고 시장에 나온 배영수(33)는 이튿날인 27일 바람을 쐬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차를 몰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한화 김성근(72) 감독. 길 잃은 어린아이마냥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던 시간, 노감독의 첫마디는 배영수의 공허한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았다.

“예, 감독님.”

“야구 오래해야지.”

“그래야죠, 감독님.”

“구단에 얘기해볼 테니 연락이 갈 거다. 기다리고 있어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던 배영수는 동아줄을 잡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한화 구단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100%가 어딨겠노. 감독님 뜻이 그래도 한화 구단 입장은 다른가보지.’ 타구단과의 우선협상 마감일(3일)도 오후로 넘어갔다. 마음을 정리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저녁 무렵 서울 삼정호텔에서 한화 노재덕 단장과 김준기 운영팀장을 만나 협상을 한 뒤 2시간 만에 도장을 찍었다. 3년간 21억5000만원(계약금 5억원, 연봉 5억5000만원)의 조건. ‘푸른피의 에이스’가 ‘독수리’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 삼성은 날 키워준 팀, 삼성 팬들이 눈에 밟혀

배영수는 차를 몰고 대구로 내려갔다. 새 둥지를 찾았다는 기쁨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2000년 삼성 입단 뒤 15년간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의 ‘푸른 함성’이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잘 나갈 때는 물론이고, 수술을 하고 힘겨운 재활훈련을 할 때도, 1승12패 투수로 추락할 때도, 삼성팬들은 변함없이 그를 지켜줬다.

배영수는 4일 스포츠동아와 통화하면서 “삼성을 떠나게 돼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에 팬들이 지역신문에 광고까지 게재하며 나를 응원해주실 때는 눈물이 났다. 내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팬들께서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성이 싫어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나를 키워준 팀이고, 고마운 팀이다. 물론 이번에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생겼지만, 이제 섭섭한 감정은 없다.”

배영수는 이날 삼성 김인 사장과 안현호 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동안 자신을 보살펴준 구단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겨우 21억5000만원? 돈보다는 자존심!

그는 왜 21억5000만원의 조건에 한화로 이적했을까. 수십억 원이 오가는 FA시장에서 헐값이라면 헐값. 이에 대해 배영수는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고 했다.

“솔직히 돈은 먹고 살 만큼 벌어 놨다. 시장에서 내 가치에 이런 평가가 나왔다면 받아들이면 된다. 한화는 나를 진심으로 대해줬고, 따뜻하게 맞이했다. 나를 영입하면 삼성에 줘야할 보상금만 해도 최대 16억5000만원(올해 연봉 5억5000만원의 300%)이다. 내가 가지는 몫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한화는 40억원에 가까운 돈을 나를 영입하기 위해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 됐다. 어린 시절 무일푼이었던 나는 지금까지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야구를 했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왔다. 내 자존심하고 돈하고 바꿨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 한화에서 시작하는 제2의 야구인생 꿈꾸며

언제까지 뒤만 돌아볼 수 없다. 새로운 인생의 항로를 향해 노를 저어야한다. 그는 4일 대전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두 딸은 지금 미국에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함께 자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누나와 함께 집을 구하기 위해 대전 시내를 둘러봤다.

배영수는 “2000년 신인 때 김성근 감독님이 삼성 2군감독이셨다. 감독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루 500∼600개씩 투구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15년 만에 재회하게 됐다. 난 땀을 흘린 만큼 보상 받는다고 믿기 때문에 한화의 훈련량은 하나도 겁이 안 난다”며 웃더니 “삼성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했지만, 한화에도 김태균과 정근우 등 최고의 선수들이 있다. 삼성에 (진)갑용이 형이 있었다면 한화에는 (조)인성이 형이 있다. 최고의 포수 2명과 만나는 것도 나에겐 행운이다”면서 새로운 야구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낯선 한화팬들을 만나는 게 두렵지는 않을까. 배영수는 “한화팬들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내가 대전구장 마운드에 섰을 때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신다면, 나도 열정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보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렇다면 김성근 감독은 그때 왜 배영수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김 감독은 주저 없이 답했다. “배영수라는 대투수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영수만한 커리어를 가진 투수는 얻기 쉽지 않아. 컨트롤도 있고, 그만큼 공격적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투수가 우리나라에 몇이나 있나. 이긴 경험이 많잖아. 우리 젊은 투수들이 보고 배울 게 많을 것이야.”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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