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레바논 대회…이동국 4G연속골 ‘킬러 탄생’

입력 2015-01-01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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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스포츠동아DB

■ 한국의 아시안컵 도전사

1960년 대회 2연패 후 멀어진 정상
2011년 박지성·이영표 뛰고도 실패

한국은 아시안컵 초대 대회 우승국이다. 제1회 대회였던 1956년 홍콩대회에서 2승1무로 아시안컵의 첫 주인이 됐다. 서울에서 열린 1960년 제2회 대회에서도 3전승으로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열린 1964년 제3회 대회 이후 한국은 아시아대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시안컵에서 멀어졌다. 이스라엘대회에서 3위(1승2패)에 그친 뒤 1968년 제4회 이란 대회 때는 아예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태국에서 개최된 1972년 제5회 대회에서 한국은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박이천을 앞세워 1승2무2패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 제7회 쿠웨이트대회에선 8년 만에 다시 준우승을 일궜다. 조별리그부터 북한과의 준결승까지 4연승을 거둔 한국은 개최국 쿠웨이트와의 결승에서 0-3으로 완패하며 정상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20년만의 정상 탈환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7골을 터뜨린 최순호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1984년 제8회 싱가포르대회 때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은 1988년 제9회 카타르대회에서 이태호(3골), 황선홍, 김주성(이상 2골)을 주축으로 아랍에미리트(UAE)-일본-카타르-이란과의 조별리그, 중국과의 준결승까지 5연승을 질주했다. 파죽지세로 결승에 올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연장 접전을 펼치고도 0-0으로 비긴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3-4로 석패해 28년 만에 찾아온 트로피 탈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2000년 제12회 레바논대회에서 축구팬들을 열광시킨 주역은 이동국이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이동국은 인도네시아와의 조별리그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하는 등 4경기 연속골로 이 대회에서만 6골을 뽑아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새로운 스트라이커로 우뚝 섰다. 한국은 이동국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준결승에서 1-2로 패한 뒤 3·4위전에서 중국을 따돌리고 3위에 만족해야 했다. 중국전 1-0 승리를 이끈 결승골의 주인공도 이동국이었다.

박지성, 김남일, 차두리, 안정환 등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주역들이 대거 출동한 2004년 제13회 중국대회에선 이란과의 8강전에서 3-4로 무릎을 꿇고 중도에 짐을 쌌다. 이동국은 이 대회에서도 한국선수 중 가장 많은 4골을 터트렸다. 이동국은 2개 대회에서 총 10골을 뽑아 아시안컵에서 역대 최다골을 기록한 한국선수로 남아있다.

사상 최초로 동남아 4개국에서 분산 개최된 2007년 제14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한국은 2011년 제15회 카타르대회에서도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조광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당시 대표팀은 베테랑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를 비롯해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지동원, 손흥민 등 막강 라인업을 자랑했다. 기대대로 조별리그를 2승1무로 가볍게 통과한 뒤 8강전에서 난적 이란을 1-0으로 꺾은 한국의 준결승 상대는 일본이었다. 연장 혈투 끝에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 돌입했지만, 키커들의 잇따른 실축으로 0-3으로 져 아쉬움을 샀다. 한국을 꺾은 일본은 결국 통산 4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려 아시안컵 최다우승국의 영예를 안았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do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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