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누비는 워킹맘 삼총사

입력 2015-02-03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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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대건설 김세영, 도로공사 장소연, 정대영(왼쪽부터)은 모두 30대 중반 이상 노장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로 코트에서 투혼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현대건설 김세영 도로공사 장소연·정대영 ‘엄마의 이름으로’

젖먹이 아들 둔 김세영 노련해진 블로킹
장소연은 배구선수 꿈꾸는 딸의 롤모델
정대영에게도 장소연은 ‘든든한 버팀목’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NH농협 2014∼2015 V리그 여자부 우승을 향해 달리는 도로공사와 현대건설이 엄마 센터들의 대활약 속에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다. 현대건설 김세영(34) 도로공사 장소연(41) 정대영(34)이 주인공이다. 출산 등으로 한때 정들었던 배구공을 놓았던 이들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측과 센스로 코트를 주름잡고 있다.


● 젖먹이 아들을 두고 다시 코트에 서다

김세영은 1일 KGC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7개의 블로킹을 했다.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블로킹 기록이었다. 5라운드부터 센터와 토종선수 중심의 배구로 플레이스타일을 바꾼 현대건설은 인삼공사를 상대로 쉬운 승리를 따냈다. 김세영이 상대의 공격을 앞에서 차단해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공격득점도 3개나 했다.

현대건설 양철호 감독은 “김세영이 그동안 높이에 비해 블로킹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점프 타이밍이 빨라 내려오는 타이밍에서 블로킹한 공을 안고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올스타 브레이크 때 점프 타이밍을 늦추는 훈련을 많이 했는데 효과를 봤다”고 했다.

2011∼2012시즌 인삼공사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결혼과 출산을 위해 유니폼을 벗었던 김세영으로서는 의미 있는 경기였다. 2년의 공백기 속에서 더욱 원숙해진 시야로 ‘블로킹에는 정년이 없음’을 보여줬다. 2일 현재까지 블로킹이 50개로 세트평균 0.602개다. 2년 전 우승 당시 75개의 블로킹(세트평균 0.636개)도 가능해 보인다.

1년 전만해도 이렇게 코트에서 다시 뛰게 될 줄은 몰랐다. 출산 뒤 쉬고 있을 때 양 감독의 전화가 왔다. “다시 배구를 해보자”고 했다. 젖먹이 아들이 있어 망설였다. 코보컵을 앞두고 양 감독은 “경기는 천천히 나가면 되고 우선 몸이라도 만들어보자”고 했다.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다시 숙소생활을 했다.

구단은 원한다면 유모 등 배려를 해준다고 했다. 막상 코트에 돌아오자 욕심이 났다. 많은 배려를 스스로 포기하고 배구에 매달렸다. 코보컵에도 출전했다. 공백기의 후유증으로 플레이가 어색했지만 양 감독은 “좋았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체력도 아직은 버틸만하다. 같은 포지션의 양효진이 인정하는 체력이다. “아이를 낳아서인지 힘이 더 좋다”고 양효진은 말했다.

김세영은 시즌 도중 한 달에 한 번 휴가 때 친정으로 가서 아이를 본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멀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엄마는 엄마다. 아이에게 배구선수 엄마의 모습을 인식시키려면 한참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지 김세영의 배구인생은 진행형이다.


● 딸아이에게 엄마의 한창 때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싶다

김세영과 함께 인삼공사에서 유니폼을 벗었던 장소연은 지금 도로공사의 플레잉코치 겸 센터로 뛴다. 나이를 말하면 질색하지만 마흔 고개를 넘었다. 공교롭게도 장소연이 15년 후배 하준임을 제치고 주전 센터가 된 이후 도로공사는 9연승이다. 정작 본인은 “황민경이 뛰면서부터∼”라고 하지만 도로공사의 돌풍은 베테랑의 힘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안다.

지난 시즌 막판 흥국생명과의 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을 때만해도 선수생활은 끝났다고 봤다. 나이가 있어 힘든 재활을 이겨내고 다시 선수로 뛰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정대영을 FA선수로 영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번 시즌 초반 거의 코트에 나오지 않았다. 몸이 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장소연은 장소연이었다. 3라운드부터 다시 기회를 잡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엄마가 한창 때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딸에게 엄마는 한 경기에 10점 이상을 쉽게 올리는 선수라는 것을 몇 번이나 보여줬다. 딸은 한때 엄마가 부상당하는 것을 보고 배구를 안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다시 배구선수를 꿈꾸고 있다.

조카 같은 선수들과 코트에서 경쟁하는 장소연에게는 경험과 세월이 주는 지혜가 있다. 1월 19일 장충체육관 재단장 기념으로 벌어졌던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 3-2 승리한 뒤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두고두고 새길만한 말을 했다. “상대가 공격할 때 블로커로서 무엇을 보느냐”는 질문에 “공격수나 공이 아니라 세터를 보고 세터의 생각을 읽는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상대가 어떤 플레이를 할 것인지 예측하고 움직이는 리딩 능력의 중요성을 말했다. 팽팽한 경기 때 이효희와 간간이 펼치는 이동속공은 여전히 상대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 롤 모델 곁에서 힘을 얻는 또 다른 엄마 선수

정대영(34)도 엄마선수다. 딸은 훈련이나 경기 때 자주 코트를 찾는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FA선수로 또 한 번 이적했다. 초반 주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서남원 감독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 면목이 선다. 무엇보다 선배이자 롤 모델 장소연과 함께 코트에서 뛴다는 것이 반갑다. 의지가 된다. 선배와는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으로서 육아라는 공통의 화제가 있다. 얘기가 잘 통한다. 결혼하지 않은 후배에게는 선뜻 물어보기 힘든 일도 상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정대영은 마음 편하게 배구를 한다. 그 결과가 도로공사의 선두 질주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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