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 허재, 떠날때도 쿨하게

입력 2015-02-10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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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농구대통령’으로 불렸던 KCC 허재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9일 전격적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KCC 사령탑으로 2차례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맛본 그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뜨린 지도자였다. 스포츠동아DB

■ KCC 감독 전격사퇴 왜?

스타출신 우승 감독, 고위층 신뢰 불구
우승 후보 꼽히던 올해 9위 부진에 결단
“다음시즌 위해서라도 이기는 경기 해야”
후배 추승균 감독대행에게 힘 실어주기

‘농구 대통령’이 미련 없이 스스로 물러났다. ‘대권’을 이어받을 후계자에게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는 편이 팀을 위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남자프로농구 KCC 허재(50) 감독이 9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적으로 자진사퇴했다. 추승균(41)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KCC를 지휘한다. 허 감독은 한동안 일선에서 물러나 심신을 추스르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 왜 전격 사퇴했나?

허재 감독은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2005년 KCC 제2대 감독으로 취임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시즌을 치르는 동안 2차례(2008∼2009·2010∼2011시즌)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2009∼2010시즌)을 차지하며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뜨렸다.

그러나 최근 3시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012∼2013시즌 13승41패로 최하위까지 떨어졌고, 2013∼2014시즌에도 20승34패로 7위에 그쳐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올 시즌의 부진은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허 감독 스스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KCC는 2014∼2015시즌을 앞두고 우승 후보로 꼽혔다. 공익근무를 마친 ‘골리앗 센터’ 하승진이 돌아오고, KGC에서 가드 김태술까지 영입했다. 명예회복을 다짐했지만 개막을 앞두고 김민구가 불의의 사고로 팀을 이탈하면서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정규리그 9경기를 남긴 가운데 11승34패로 9위에 머물고 있다.


● 팀을 위해 자신을 버리다!

허재 감독은 액면 그대로 자진사퇴한 것으로 보인다. 구단이 사퇴를 종용하고 자진사퇴로 포장하진 않은 듯하다. KCC그룹 고위층의 허 감독에 대한 신뢰는 이미 농구계에 익히 알려져있다. ‘KCC 종신감독설’이 나올 정도로 그의 입지는 탄탄했다. KCC 최형길 단장은 9일 “허 감독이 시즌 초반부터 많이 힘들어했다. 스트레스가 엄청났다”며 “이제 9경기밖에 남지 않았으니 더 이상 늦기 전에 추승균 코치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밝혔다.

4일 전자랜드전을 앞두고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만난 허 감독은 “시즌 초반보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며 쓴웃음을 지은 뒤 이런 말을 했다. “다음 시즌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계속 무기력하게 지는 것은 좋지 않다. 이기는 경기를 해야 선수도, 팀도 발전할 수 있다.” 팀의 장래를 위해, KCC의 미래 지도자로 성장해야 할 후배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허 감독은 자신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추승균 감독대행은 “허 감독님께서 이렇게 갑자기 물러나셔서 너무 안타깝고, 내가 보필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다”며 “갑자기 중책을 맡게 돼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선 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게 급선무다. 선수들이 의기소침해할까 걱정된다”며 “선수들과 함께 시즌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do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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