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으로 기선잡은 후 어린딸 동행 선물 …이정철 감독의 ‘데스티니 밀당’

입력 2015-03-2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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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데스티니는 남편과 떨어져 홀로 딸과 함께 한국에서 생활해왔다. 미국인 보모가 중간에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코칭스태프의 부인, 프런트 직원, 동료선수들이 함께 데스티니의 육아를 도와야 했다. 스포츠동아DB

■ V리그구단들 ‘외국인선수 모시기’ 백태

‘NH농협 2014∼2015 V리그’를 결산하는 챔피언 결정전(남녀 각 5전3승제)이 27일부터 시작된다.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팀 도로공사와 플레이오프(PO)를 통과한 2위 IBK기업은행이 먼저 맞붙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국가대표 라이트 공격수 니콜(도로공사)과 데스티니(IBK)의 대결에서 승부가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자부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화재와 PO를 거친 2위 OK저축은행은 28일부터 격돌한다.


● 좌절과 선택

지난 시즌 2연속 통합우승을 노렸던 IBK는 카리나의 결정력 부족으로 패배를 맛봤다. 챔프전에서 발휘했던 GS칼텍스 베띠의 투혼은 마치 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때 롯데 최동원을 연상시켰다. 무시무시했다. IBK 이정철 감독이 올 시즌을 앞두고 데스티니 영입을 결정한 이유였다. “시즌 때는 필요 없다. 봄에만 잘해주면 된다”고 했다.

국제배구계에서 유명한 ‘성격파 선수’를 데려오면서 생길 여러 문제도 고려했지만, 우승만 해준다면 나머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데스티니가 5년 만에 다시 V리그에 온다고 하자, 많은 이들은 예전의 성격을 기억했다. “엄마가 되고나서 유순해졌다”는 말도 있었지만, “성격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었다.


● 간보기

선수들을 엄하게 잘 다룬다는 이정철 감독은 데스티니를 처음부터 강하게 돌렸다. 푸에르토리코리그에서 발목 부상으로 중도 퇴출된 뒤 한국에 온 데스티니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 감독은 엄청난 훈련으로 몸을 만들게 했다. 그 기간 동안 데스티니가 몇 차례 눈물을 흘렸다. 이 감독은 공격의 파워를 위해 체중 증량을 요구했다. 무거워진 몸으로 정상적 점프를 하기 위해선 강한 하체근육이 필요했다. 그 힘든 시간의 밀고 당기기에서 이 감독이 이겼다.

한계에 왔다고 생각한 이 감독은 결과가 나오자 어느 정도 여유를 줬다. 데스티니는 기뻐했다. “이런 선수는 초장에 잡지 못하면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 그래야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안다”고 이 감독은 밝혔다.


● 부상과 태업, 그리고 면담

데스티니 성격의 가장 큰 문제는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정을 내려놓고도 다음날 갑자기 바꿔버리는 일이 많았다. 통역, 트레이너 등 주변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보모가 2번이나 새 얼굴로 교체됐다.

하필 PO를 앞두고 보모가 없었다. 누군가는 데스티니의 어린 딸을 돌봐줘야 했다. 코칭스태프의 부인이나 프런트 직원, 후보 선수들이 돌아가며 딸을 돌봐줬다. 이정철 감독은 훈련 때 어느 누구도 훈련장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지만, 데스티니에게만은 예외로 해줬다. 그 대신 원칙이 있었다. 경기 전 선수들의 이동버스에는 딸의 동행을 금지시켰다. 쉬어야 하는 다른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내린 결론이었다.

4라운드 부상 이후 데스티니는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2월 8일 흥국생명과의 5라운드 경기 때는 센터로 출전했지만, 기대이하의 실력을 보여줬다. 이 감독은 태업을 했다고 믿었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참지 못한 이 감독이 직접 나섰다. 2월 17일 현대건설과의 5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호출했다. “앞으로 할 말이 있으면 통역이나 트레이너를 통하지 말고 직접 내게 얘기해라. 계약서대로 하자. 감독의 정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내가 배려해줄 수는 있지만, 네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더 이상 용서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못 박았다.


● 화합과 당부

그날 이후 데스티니는 달라졌다. 이정철 감독의 강한 의지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후 데스티니의 플레이는 부상 이전보다 훨씬 좋았다. 이 감독은 채찍 외에 당근도 줬다. “포스트시즌부터는 훈련도 원하면 빼주겠다. 그 대신 다른 선수들은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책임감을 가져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당근도 있었다. 데스티니에게는 다음 시즌 터키리그에서 활약하고픈 꿈이 있다. 최근 김사니를 통해 터키리그의 어느 팀에서 관심을 보여왔다. 이 감독도 이 사실을 알았다. “여기서 좋은 평판을 얻으면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얼렀다. 지금 데스티니는 우승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리그에 보여주기 위해서다.

데스티니의 남편이 딸을 돌보기 위해 22일 한국에 왔다. 이 감독은 남편을 따로 만났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기다. 데스티니의 성격을 건드리지 말고 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라”고 신신당부했다.


● 외국인선수와 사리, 그리고 노벨평화상

팀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외국인선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감독이나 프런트 모두에게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데스티니만 예외적으로 튀는 것이 아니다. 어느 팀 사무국장은 외국인선수와 겪은 한 시즌을 돌이켜보며 “내 몸에 사리가 쌓일 지경”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많이 참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나 문화가 다른 외국인선수를 V리그 특유의 조직문화와 훈련방식에 적응시키는 데는 많은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다. 서로의 오해가 쌓이면 황당무계한 사고도 생긴다. 몇 년 전 어느 팀 여자 외국인선수는 동료들과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살았다. 숙소에서 방문을 닫아두고 혼자 하는 일이라고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일뿐이었다. 옆방의 어느 선수는 그 방에서 연기가 나자 불이 난 줄 알고 문을 열었다가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 선수를 보고 더 기겁했다.

어느 외국인선수는 TV에 나오는 멋진 옷을 보자마자 통역에게 사오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그 선수의 체격이 컸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옷을 사서 그 선수의 사이즈에 맞게 고치는 작업을 해서 즉시 내놓지 않으면 난리가 났다. 그래서 “통역 3년이면 노벨평화상 후보가 된다”는 농담도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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