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리사이틀 “거장이 왜 거장인가를 답하다”

입력 2015-04-29 1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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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익 한번 웃어보이곤 곧바로 ‘어택’. 대부분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연주에 앞서 음을 고르는 과정이 생략됐다. 이윽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1악장의 익숙한 선율이 객석으로 날아든다.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정경화 리사이틀. ‘불멸의 바이올린’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정경화(67)의 연주회에서는 눈을 감으면 손해다. 몸 전체가 바이올린이자 활이 되어 버리는 정경화의 연주 모습을 외면한다면, 감동의 절반을 덜어낼 각오를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온 몸으로 행하는 연주’다.

정경화의 ‘소리’는 전성기 시절부터 맑고 곱지 않았다. 칼칼하고 뼈가 단단한 소리다. 소리가 가진 에너지는 태양처럼 뜨겁고 강렬하지만 ‘크기’로 승부하지도 않았다. 바둑으로 치면 엷지만 발이 빠르고 접근전에 강한 조훈현 9단의 기풍과 닮았다.

정경화의 비브라토에 귀를 기울여 보자. 현악기 연주자들에게 비브라토는 일종의 억양 같은 것이다. 사람이 저마다의 억양을 갖고 있듯, 연주자들은 비브라토를 통해 감성과 개성을 드러낸다.

정경화의 비브라토는 은근히 두툼하다. 하늘하늘 가녀린 떨림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울림의 보폭이 크다. 애잔하기보다는 울컥한 감정을 토해내는 떨림이다. ‘봄’의 2악장에서 이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고희를 바라보는 거장에게서 젊은 시절의 싱싱한 기량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설상가상 정경화는 손가락 부상으로 긴 슬럼프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후루룩’ 움직여야하는 부분을 이제는 ‘후투툭’ 연주를 한다. 피치카토는 때때로 탁하고 불명확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거장의 연주는 ‘음악이 스포츠’가 아님을 증명한다. 기교는 음악을 완성하는 한 부분일 뿐이다. 거장이 지닌 음악의 깊이, 넓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경화는 반세기 이상 바이올린이라는 단 하나의 악기만을 연주해 온 사람이다.

그녀가 바이올린과 함께 보낸 ‘봄’이 50년이 넘는다는 얘기다. 50년이란 세월 안에는 50년만큼의 사연이 켜켜이 쌓여있는 법이다. 젊은 연주자들이 기교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거장의 비밀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영혼의 호흡’을 들려 준 정경화와 케빈 케너

베토벤 소나타 7번 1악장. 드디어 정경화가 ‘정경화스러운 연주’에 돌입했다. 그녀의 활이 현을 물고, 뜯고, 할퀸다. 때때로 그녀는 활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했다. 자신도 채 풀지 못한 수수께끼 하나를 허공에 던지는 기분이다. 의문이 남는 악장이다.

2악장 연주에 앞서 정경화는 살짝 지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꿈을 꾸어볼까요’하는 듯한 나긋나긋한 서두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날 피아노는 정경화가 “내 영혼의 동반자”라고 치켜세웠던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가 맡았다. 훤칠한 키의 신사다. 정경화와는 호흡이 맞다 못해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를 보는 듯할 정도다. 소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살아 있다. 특히 리듬감이 놀랍다. 마치 재즈 피아니스트가 콤핑을 하듯 활발하고 탄력적으로 움직인다. 유연함, 유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정경화의 연주와 궁합이 더할 나위없이 잘 맞는다.

마지막 곡은 베토벤의 9번 소나타 ‘크로이처’. 크로이처가 이렇게 멋진 곡이었나 싶을 정도다. 근래 들어 이렇게 황홀한 크로이처는 단언컨대 들어보지 못 했다. 정경화의 당당한 연주를 감싸기 위해 케빈 케너는 한 대의 피아노를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박력 있게 확장시켰다.

이날의 연주회에서는 뭐라 말하기 힘든 온기가 느껴졌다. 젊은 시절, 음악과 치열하게 싸웠던 여전사는 이제 미소와 여유를 지닌 왕녀로 돌아왔다.

그녀의 미소에서, 그녀의 음악에서 “오래 오래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져 왔다. 정경화의 연주를 오래 오래 듣고 싶다. 그녀와 함께 보낼 ‘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제이앤씨코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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