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삭스·검은 안개…악마의 유혹, 美·日도 삼켰었다

입력 2015-06-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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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포츠와 도박, 그 얼룩진 과거

불법 스포츠 도박은 청명해야 할 그라운드를 검게 물들인다. 선수들을 향한 마수,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간 선수들의 승부조작이 리그 전체에 걷잡을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치고 팬들의 마음을 앗아간다. 한국의 4대 프로스포츠도 불법 스포츠 도박의 ‘검은 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K리그에선 2011년 국가대표 출신 최성국, 김동현을 포함한 선수 및 관계자 47명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영구제명됐다. 2012년에는 KBO리그 LG 소속이던 박현준과 김성현이 검찰 수사에서 승부조작에 참여한 사실이 발각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KBO는 이들을 영구실격시켰다. 또 그해 2월 V리그에선 승부조작으로 전·현직 선수 16명이 영구추방되기도 했다. 이 같은 불법 스포츠 도박의 그림자는 사실 더 오래 전부터 프로스포츠의 역사를 훼손해왔다. 야구로는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메이저리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이트삭스 잭슨·시카티 등 스타선수 8명
1919년 돈받고 WS 고의 패배…영구추방
‘4256안타’ ML 최다 안타 영웅 피트 로즈
신시내티 감독 시절 승부조작…영구제명

日도 1969년부터 3년간 승부조작 발각
니시테쓰 투수 나가야스 외 3명 영구추방
관중 외면 니시테쓰는 후쿠오카에 팀 매각

● 블랙삭스 스캔들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오랜 전통을 지닌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에는 여전히 ‘블랙삭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단어가 새겨져 있다. 1919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화이트삭스는 전설적 타격왕 조 잭슨을 위시해 에디 콜린스, 치크 갠딜, 에디 시카티, 클라우드 윌리엄스 등이 투타에 포진한 스타 군단이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내셔널리그 챔피언 신시내티를 무난히 꺾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부터 ‘화이트삭스가 일부러 패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화이트삭스는 1차전에서 19승 투수 시카티를 내고도 1-9로 졌다. 2차전에선 23승 투수 윌리엄스가 4사구를 남발하면서 2-4로 패했다. 경기 후 포수 레이 쇼크가 윌리엄스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3차전은 화이트삭스의 승리. 그러나 4차전에선 또 다시 선발로 나선 시카티가 5회 결정적 실책 2개로 2점을 내줘 0-2로 패했다. 5차전에선 잭슨의 실책 때문에 0-5로 졌다. 9전5승제의 시리즈에서 이미 1승4패로 수세에 몰렸다. 결과보다 내용이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그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월드시리즈 3주 전 투수 시카티와 윌리엄스, 1루수 갠딜, 외야수 잭슨을 비롯한 8명의 선수들이 도박사들에게 8만달러를 받고 고의로 시리즈에서 패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스타였던 이들이 짠돌이 구단주 찰리 코미스키 탓에 다른 팀 주전선수 연봉의 절반도 받지 못했던 것이 승부조작 가담의 이유였다. 5차전이 끝난 뒤 도박사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리란 점을 간파한 8명의 선수들은 다시 6차전과 7차전에서 정상적 승부를 펼쳐 3승4패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8차전 선발 윌리엄스가 “아내를 살해하겠다”는 도박사들의 협박에 굴복하면서 결국 월드시리즈는 신시내티의 우승으로 끝났다.

승부조작 의혹은 이듬해 시즌이 시작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당시 아메리칸리그 회장 밴 존슨이 내사를 지시했다. 그해 9월 뉴욕 자이언츠 투수 루브 벤턴이 시카티, 윌리엄스, 갠딜 등의 이름을 거명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이 들끓었다. 시카티는 코미스키와 구단 고문변호사 앞에서 전말을 자백했다. 관련 선수들도 속속 법정에 섰다. 법정의 판결은 무죄. “계약의 목적이 단순히 패하는 데 있지 않고 대중을 기만하려 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하는데,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의 판결은 달랐다. 커미셔너는 선수 8명에게 모두 영구추방 명령을 내렸다. 최고의 타자로 꼽혔던 잭슨의 명성도 그렇게 얼룩졌다.


● 피트 로즈의 영구 제명

피트 로즈는 메이저리그 통산 3562경기에 출장해 4256안타를 친 최고의 타자였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빅리그의 전설이었다. 그러나 도박중독으로 인해 현역 시절의 화려한 커리어와 야구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1989년 2월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피터 유버러스가 로즈의 베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뒤였다. 로즈는 당연히 펄쩍 뛰며 부인했다. 그러나 후임 커미셔너인 버트 지어마티는 끝내 로즈가 1987년 자신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신시내티의 52경기에서 경기당 수천달러에 달하는 베팅을 하고 승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선수보다 감독의 승부조작이 훨씬 쉬운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상 초유의 ‘감독 승부조작’으로 인해 로즈는 그해 감독직을 사임하고 도박중독 치료를 받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제명되면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마저도 사라졌다.


● 검은 안개 사건

‘검은 안개 사건’은 일본프로야구가 지우고 싶어 하는 암흑의 단어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선수들이 잇따라 돈을 받고 경기를 져주는 일이 발각된 사건을 통칭한다. 1969년 스포츠호치의 니시테쓰 담당 기자가 한 선수에게 “팀원 가운데 일부러 실책을 하는 선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스포츠호치는 요미우리신문 사회부와 협력해 조사를 시작했고, 니시테쓰 투수 나가야스 마사유키가 조직폭력배 관계자에게 승부조작 제의를 받아 실제로 가담하고 있었던 사실이 발각됐다. 니시테쓰는 시즌이 끝난 뒤 나가야스와 재계약하지 않았고, 일본야구연맹 감독관위원회는 나가야스에게 사상 최초의 영구출전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가야스는 이듬해 후지TV와의 인터뷰에서 “나 이외에도 투수 이케나가 마사아키, 요다 요리노부, 마스다 아키오, 그리고 포수 무라카미 기미야스, 내야수 후나타 가즈히데와 모토이 미쓰오가 고의 패배에 가담했다”고 폭로했다. 커미셔너는 6명의 선수를 상대로 사정 청취를 했고, 투수 3명은 결국 영구추방 처분을 당했다. 이후 니시테쓰는 1970년부터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고, 관중 동원 실패로 인한 경영 악화로 1972년 후쿠오카에 팀을 매각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토레이스 승부조작에 전·현직 프로야구선수들이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주니치 에이스 오가와 겐타로, 도에이 투수 다나카 미쓰구와 모리야스 도시아키, 한신 내야수 가쓰라기 다카오, 야쿠르트 내야수 구와타 다케시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이름이 속속 드러났다. 오가와와 모리야스는 영구추방됐고, 가쓰라기와 구와타는 3개월 실격 처분을 받았다. 이후에도 도박에 연루된 폭력조직과 깊은 친분을 맺어온 선수와 코치들의 혐의가 속속 공개되면서 계도와 근신 처분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일본프로야구의 ‘흑역사’였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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