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 한국축구’ 옌볜FC의 기적

입력 2015-06-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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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 옌지시는 현지 프로축구 갑(2부)리그 옌볜FC의 돌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특히 옌볜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도시 전체가 축구 열기로 뜨거워진다. 스포츠동아DB

올 시즌 타 구단 징계로 갑리그 잔류
10년 만에 개막전 승리 후 무패 행진
옌볜 동포들 “홈경기 날은 우리 축제”

1955년 중국 지린성 조선족자치주의 프로축구팀으로 창단된 옌볜FC(연변장백산축구구락부)는 12차례나 팀명이 바뀔 정도로 역사가 복잡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쓰라림과 아픔으로 점철됐다. 팀 매각은 물론,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 오가는 떠돌이 생활도 했다. 2001년부터 옌볜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지만 화려함은 없었다. 지난 시즌도 아주 처참했다. 중국 갑(甲·2부)리그 꼴찌로 2015시즌 을(乙·3부)리그행이 확정됐다.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축구단을 운영하며 많은 중국국가대표를 배출했다고 자부해온 200만 조선족도 함께 실의에 빠졌다. 이 때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갑리그 승격을 확정한 광동일지천, 옌볜과 함께 강등이 확정된 성도천성이 2014년 선수단 급여를 미지급한 사실이 밝혀지자 중국축구협회가 올 1월 말 옌볜의 갑리그 잔류를 통보해왔다. K리그에도 임금 체불이 종종 일어남에도 이를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는 반면, 중국은 강등이나 승격 취소 등 냉정하게 철퇴를 가한다.

물론 옌볜도 대대적 변화가 필요했다. 을리그행을 염두에 두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한 박태하(47) 감독과 오명관(41) 코치를 영입했다. 옌볜은 중국 하이난과 쿤밍에서 1·2차 훈련을 한 뒤 선수단을 추려 올 2월 거제도에서 마지막 담금질에 나섰다. 착실한 팀 리빌딩도 함께 진행됐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수원삼성에서 하태균을 임대하며 선수단에 긍정의 변화를 줬다. 당초 목표는 10위. 자존심을 회복하기에 충분한 순위였다. 박 감독도 당시 “불가능하지 않다. 주어진 환경에서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성과”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맞이한 2015시즌. 그런데 진짜 기적이 벌어졌다. 옌볜은 3월 16일 강서련성과의 원정 개막전을 1-0 승리로 장식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옌볜이 시즌 개막전에서 승점 3을 딴 것은 10년만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한해 예산 100억원 남짓한 옌볜은 1000억원대의 막강 자금력을 지닌 하북화하, 베이징홀딩 등 강호들의 틈바구니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이들은 경기당 보너스만 5억원에 달할 정도로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옌볜은 시즌 개막 후 12골을 몰아친 하태균의 활약을 앞세워 14경기 연속 무패(8승6무)로 단독 선두를 질주 중이다. 1경기만 더 치르면 전반기가 끝난다. 당연히 리그 1∼2위에 주어질 슈퍼리그(1부) 승격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현지에서 만난 동포들은 “홈경기 날은 우리의 작은 축제이자 제2의 명절”이라며 남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마냥 장밋빛 내일을 장담할 순 없다. 우승과 승격은 먼 이야기다. 옌볜의 이변이 계속되자 주변의 견제도 심해진다. 축구사랑이 유별난 중국인들의 조선족들을 향한 암묵적 차별일 수도 있다. 박 감독이 “아직은 승격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 이유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 결국 실력이다. 편파 판정 등 외적 변수를 막으려면 확실히 이기면 된다. 마지막의 웃음, 또 완벽한 전설을 쓰기 위해 옌볜은 북한이 내다보이는 두만강가의 백금과 용정 등 2개의 훈련장을 오가며 땀방울을 쏟고 있다.

옌지(중국)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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