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THIS IS 레알 ESPANA!

입력 2015-08-10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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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투어 제공

THIS IS 레알 ESPANA!

#2. 마드리드 근교 도시들

스페인 여행은 마드리드 인근에서 빛나고 있는 몇몇 도시들로 이어졌다. 익숙하지만은 않은 이름들, 톨레도와 세고비아 그리고 쿠엥카. 마드리드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 아닌, 스페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도시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야기에 갑자기 가봐야만 할 것 같은 깨알 같은 여행지들.

톨레도Toledo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남서쪽으로 7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로 마드리드를 찾은 여행객들 대부분이 이곳을 다녀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항상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2천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간직한 톨레도는 마드리드로 천도되기 이전의 수도로서 한 때 스페인의 모든 힘과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유적들의 공존이 자아내는 이색적인 도시 분위기는 이 땅에서 벌어졌던 대립과 갈등, 그 속에서 피어오른 한 시대의 화려함과 영화가 그려낸 톨레도만의 특별한 자화상이라 할 것이다.

TIP.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마드리드에서 톨레도까지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렌페Renfe 라고 불리는 기차는 마드리드 시내의 아토차Atocha역에서 탈 수 있으며 약 30여 분이면 톨레도 역에 도착한다. 기차보다 좀 더 많은 운행 횟수를 갖고 있는 버스는 메트로 6호선과 11호선이 만나는 엘립티카 역Plaza Eliptica에서 출발한다. 기차에 비해 가격이 절반 정도로 저렴하지만,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로 좀 더 길다.

황토색 위엄, 톨레도
톨레도로 향하는 버스 승차장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버스를 타지 못할까 초조하기도 했지만 여행지로서 톨레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의 시외버스 보다 좌석이 두 배는 많은 것 같은 기다란 톨레도 행 버스는 고맙게 나에게도 한 자리를 내어주었다. 한산했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교외 풍경에 넋을 놓는 것도 잠시, 버스는 톨레도 버스 터미널에 들어섰고 터미널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나타났다.

마치 커다란 산처럼 서 있는 황토색 도시. 그 도시가 터미널 앞의 수많은 여행자들을 내려다보고 선 모습. 하늘을 향해 말끔하게 솟아오른 뾰족한 두 개의 탑이 순식간에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정상의 알카사르Alcazar. 생경하기까지 한 톨레도와의 첫 대면에서 이 도시의 위엄을 빠르게 전해준 가장 친절한 단서였다. 길이 이어지는 대로, 눈이 이끄는 대로 알카사르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에 이끌려 알카사르로 향하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알카사르에 이르러 톨레도의 모든 것을 보고야 말 것 같은 예감이 오히려 초행길의 설렘을 더욱 크게 부풀려 주고 있었다. 마치 알카사르의 허락과도 같았다.

돈키호테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중세도시
가려져있던 옛 도시의 속살들이 골목을 따라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닳고 닳은 돌들이 온화한 빛을 내며 촘촘히 들어앉은 골목들은 오직 사람의 통행만 허락하기라도 하듯 좁고 또 어지럽게 이어졌다. 골목을 만들어주는 때 묻은 건물 밖으로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다양한 모습의 풍경들이 반가웠다. 골목골목을 지나 큰 거리로 들어서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장엄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 때론 동그랗고 부드럽게, 때론 각지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저마다 자신들이 태어난 시대와 그 시대의 주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앞에 몰려든 서로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서 있는 돈키호테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터졌다. 훌쩍 지나버린 세월을 알지 못하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막힌 표정. 그 옆에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돈키호테와의 만남을 추억하느라 분주할 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돈키호테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던 마음은 나만의 욕심이었을까.

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풍경은 계속해서 변해갔다. 중세의 어느 쯤에 와있는 것 같은 도심에서는 당시의 복장을 한 이들의 공연이 열렸고, 음식점에는 고유의 음식을 즐기는 이들의 여유가 넘쳐났다. 톨레도의 오래된 모습들을 마음껏 누리다 보니 어느새 알카사르 앞. 문 닫힌 알카사르 주위를 돌다가 뜻밖의 풍경과 마주했다. 파란 하늘 아래 구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광활한 초지와 작고 낡은 성벽들. 아마도 수백 년 전의 톨레도와 가장 가까울 것 같은 풍경은 이 도시의 명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톨레도 여행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소코도베르 광장Plaza de Zocodover을 지나 톨레도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가서야 비로소 내가 기다렸던 톨레도의 이미지가 비슷하게 펼쳐졌다.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타호강 사이로 빼곡하게 펼쳐진 톨레도 시가지의 고풍스러움.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미처 그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기도 전에 발걸음을 급히 옮겨야했다. 마지막을 위해 남겨두었던 한 곳을 위해서. 하지만 결국, 발품만 잔뜩 팔고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야 했다. 톨레도에 너무나 큰 미련을 두고 온 것 같았다.

톨레도 위의 낙원, 파라도르Parador
다음날 아침, 예정된 일정을 미룬 채 다시 톨레도 행 버스에 올랐다. 부족한 일정이었지만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분명했기에 하루를 더 할애하기로 했다. 두고 온 보물을 찾으러가듯 이른 아침 향한 곳은 톨레도의 파라도르. 국내 유명 연예인 부부의 웨딩사진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급 호텔이다. 이곳을 꼭 가야만 했던 이유는 호텔 앞으로 펼쳐지는 사진 속의 로맨틱한 풍경 때문이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중세를 닮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사진에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부터 이미 가슴이 뛰었던 곳이다.

운 좋게도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파라도르 행 버스는 내가 정류장을 찾아가자마자 출발했다. 전날과는 다른 순조로운 상황에 한껏 가벼워진 기분으로 파라도르에 도착. 빠르게 호텔 안으로 들어서 주위에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로비를 지나 카페가 있는 야외테라스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사진 속 장면이 펼쳐질 야외 테라스의 문을 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톨레도의 풍경. 이제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옛것이 전해주는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지금 톨레도의 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내가 본 것은 이곳 사람들만이 기억할지도 모르는 먼 과거, 바로 신의 은총이었다. 신이 이곳에 앉아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시를 만들고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아끼고 사랑했을 것 같은 그 모습. 톨레도의 영화롭던 모습은 그래서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다음 일정은 잊어버린 채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카페에 앉았다. 한동안 꼼꼼하게 도시의 곳곳을 바라보았다. 내 두 눈에 톨레도의 과거가 생생하게 담길 때까지. 파라도르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내려갔다. 어제와는 완전하게 달라져 새롭게 다가서는 톨레도가 걸음이 끝나는 순간까지 하나씩 이어지고 있었다.

TIP. 파라도르 가는 법
파라도르는 수도원이나 고성 같은 역사적인 건물을 숙박시설로 개조한 스페인의 국영 호텔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파라도르가 각 지역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톨레도의 파라도르 역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알카사르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매시 45분에 7.1번 버스가 파라도르로 떠난다. 파라도르 버스 정류장은 이정표조차 찾기 어려운 도로에 있는데 도로를 건너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파라도르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세고비아Segovia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과다라마 산맥 기슭 해발 1천 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가 한 때 이곳을 수도로 정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과 중세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에게는 동명의 기타 브랜드로 친숙하게 들리는 이름이지만 사실 별다른 관련이 없는, 오히려 꽃보다할배 스페인 편에서 방영되며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세고비아. 반드시 봐야 할 세 가지가 있고 또 꼭 먹어봐야 할 특별한 음식이 여행자를 맞이하는 곳이다.

TIP.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로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는 버스와 기차를 이용할 수 있으며 편도 약 1시간 거리로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버스는 메트로 3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몽끌로아Moncloa역에서 출발하며 역 내에 있는 세고비아 행 버스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기차는 메트로 10호선 차마르틴Chamartin역에서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대부분 시간대가 다양하고 요금이 저렴한 버스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세고비아 여행의 덤, 라 그랑하La Granja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와 세고비아 행 버스를 탔다. 당일여행으로 계획한 세고비아 일정 속에 다른 도시 한 곳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날 보다 더욱 마음이 급했다. 그 도시는 세고비아에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지만 하루에 몇 차례 없는 버스 시간을 생각하면 계획했던 곳들을 다 돌아볼 수 있을지 우선 걱정부터 앞섰다. 약 한 시간 만에 세고비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내리는 순간, 우연히 'La Granja'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옆에서 출발하려는 버스의 안내판에서 빛을 내고 있는 그 이름. 라 그랑하! 고민할 것도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여유로운 미소의 버스 기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티켓을 내어주었고 라 그랑하로 가는 20여분의 짧은 시간동안 내 마음은 서서히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버스 기사가 한적한 정류장에 버스를 세우자 옆에 앉아있던 백발의 할머니가 창밖을 가리키며 ‘Palacio-왕궁'라는 말로 내릴 곳을 일러주었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라 그랑하 데 산 일데폰소La Granja de San Ildefonso’ 궁전.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닮았다고 해서 ‘스페인의 베르사유’로 불리는 궁전이다. 십여 년 전 다녀온 베르사유 궁전의 경이롭던 모습, 그림 같은 정원에서 맛보았던 달콤한 휴식과 평화. 그 기분을 라 그랑하의 궁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래 전 흐뭇했던 추억을 그리워하며 오늘 스페인의 이 작은 시골마을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리던 베르사유와는 달리 너무나 한산한 출입문 앞에서 혹시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만 했다.

뾰족하게 솟은 왕궁의 첨탑을 바라보며 걸어 들어가는 길, 사람은 보이질 않고 청량한 새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크기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생김새만큼은 베르사유를 닮은 듯한 궁전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바쁜지 나를 봐도 본체만체 할 뿐. 궁전 내부를 장식한 화려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왔다면 기가 찰 그런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호젓하게 왕궁을 산책할 수 있어 더욱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거대하고 눈부신 정원과 분수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고 오래 전 추억을 회상하며 베르사유에서의 시간을 하나씩 되짚어봤다. 그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었던 그 때의 모습은 없지만, 라 그랑하의 작은 베르사유에는 그만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다른 것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왕궁을 혼자 걷는 시간, 마치 내가 이곳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 지금껏 어느 왕궁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호사를 느릿느릿 누린, 어쩌면 인생의 한 번뿐일지 모르는 영화 속 주인공 같았던 시간.

라 그랑하의 덤, PIZZA Dumbo
스페인의 작은 시골마을 라 그랑하에 유럽에서 피자가 가장 맛있는 집이 있다면? 말이 안 될 것도 없지만 말이 되는 것도 좀 어색한 그 정보를 듣고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준비해 갔던 지도는 정확하게 나를 안내했다. 커다란 피자 반죽을 빙빙 돌리는 사진과 함께 ‘유럽 챔피언’이라는 어마어마한 글귀가 쓰여 있는 피자집, 피자 덤보. 오후 1시가 넘었지만 가게 안에는 덤보씨만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마을 음식점은 대부분 오후 1시 30분에 손님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이른 시간임에도 기꺼이 피자 주문을 받아주었고 나는 남길 게 분명한 ‘덤보피자’ 한판을 모두 주문했다. 가게 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상장과 기념사진들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던 나를 주방에서 피자를 준비하던 그가 불렀다. 그는 피자 반죽을 돌리고 공중에 던진 뒤 멋지게 받아내는 묘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멋진 웃음과 함께 마지막 포즈를 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먹지 않아도 이미 맛있어져버린 그의 피자를 앞에 두고 핫 소스를 달라는 나에게 그가 가져다 준 것은 뜻밖에도 올리브유였다. 유럽의 피자챔피언이 가르쳐준 덤보식 피자 먹는 방법. 피자를 먹을 때면 늘 떠오르는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http://www.pizzadumbo.com
A. C/. Infantes, 10 LA GRANJA

세고비아의 볼거리 두 가지, 대성당과 로마수도교
라 그랑하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세고비아로 돌아와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우뚝 솟은 웅장한 모습의 대성당이 나타났다. 마치 고대의 도시 위에 정교하게 조각된 왕관을 씌워놓은 듯한 모습은 세고비아 여행을 막 시작한 이들에게 전하는 무언의 엄숙한 메시지 같았다. 세고비아의 찬란했던 과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한 발의 신호탄이 되어버린 그 풍경은 잠시 후, 엄청난 광경으로 이어졌다.
아소게호Azoguejo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타난 로마수도교. 수많은 아치형의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수도교는 성을 감싸는 성곽이라 할 수도 또는 물을 건너기 위해 세운 다리라 할 수도 없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돌연변이와 같았다. 꽃보다할배 스페인 편에 등장했을 때 수도교라는 이름을 들으면서도 ‘대체 저 거대한 구조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떨쳐내지 못했었다. 세고비아에 가는 그 순간까지도 풀지 못했던 해답은 현장에서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리저리 쳐다보고 만져 봐도 끝끝내 침묵을 지키고 만 고대의 불가사의.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보고 나서도 속 시원히 내게 다가와주지 못한 세고비아의 명물은 2천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수수께끼로 결국 나에게 남았다. 로마수도교를 상상해 낸 사람들, 또 결국 이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어 낸 그들의 아이디어와 건축 기술은 2천 년 후의 한 이방인에게는 그저 미스터리일 뿐이다.

로마수도교는 로마시대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구조물이다. 세고비아 시내로 물을 끌어오기 위하여 약 17킬로미터 떨어진 산에서 물이 흘러올 수 있도록 만든 이 다리는 전체길이가 813미터, 최고 높이가 약 30미터에 달한다. 수많은 화강암을 다듬어 하나씩 쌓아 만들었지만 시멘트와 같은 그 어떤 접합제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만 끝냈지만 그 결과는 실로 위대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 이 수도교는 세고비아의 메시아로 숭고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세고비아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알카사르
세고비아를 찾아온 여행객들은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걷고, 또 같은 곳에서 같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로마수도교에서 한 번 놀라고 대성당에 들러 한 번 더 놀라고 마지막으로 알카사르 성으로 향했다. 로마수도교에서 약 20분쯤, 나는 사람들과 그렇게 함께 걷고 놀라며 드디어 알카사르에 도착했다. 알카사르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백설공주의 성’. 나의 유년시절 백설 공주는 겨울왕국의 엘사 만큼이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나의 또래들이 백설 공주를 모른다면......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만화 속 그녀가 살던 성의 모습은 아련하지만 그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나는 알카사르에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봤지만 둥글고 뾰족한 성의 탑과 성 주위를 감싸고 있는 초록 숲은 만화 속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입장료를 내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백설 공주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애초에 없었지만 옛 스페인의 어느 공주가 살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으로. 하지만 가장 먼저 내 앞에 나타난 건 화포와 칼 같은 전쟁 무기들과 철갑옷을 입고 기나긴 창을 든 채 말 위에 올라 나를 노려보는 돈키호테들 뿐. 성 안을 꾸미고 있는 가구와 소품들은 말 그대로 화려했고 이곳이 스페인임을 얘기해주듯 정열이 넘쳐흘렀다. 그러다 마주한 어느 방의 침실. 검붉은 커튼 사이로 드러난 붉은 침대, 그 위에 살며시 떨어진 옅은 주황빛 조명. 이곳에 공주가 살았다면 아마 이 침실은 그녀의 것이었을 것이다. 뱅글뱅글 한참동안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성의 꼭대기에 올랐다.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 속에는 걸어 온 길의 풍경도 있었지만 그 반대에 있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초원 위에 놓인 동화 같은 아담한 마을, 그리고 그 마을과 알카사르 성을 이어주는 구불구불한 도로는 내가 그리던 만화 속 바로 그 장면이었다.

TIP. 세고비아의 대표 요리,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
태어난 지 2개월이 되지 않은 새끼 돼지를 화덕에 구워 낸 통돼지구이로 스페인에서도 세고비아에서 처음 시작된 요리이다. 때문에 세고비아의 거의 모든 음식점들은 문 앞에 이 요리 사진을 걸어놓고 맛 집 대결을 펼친다. 부드러운 육질을 증명하기 위하여 손님 앞에서 접시로 고기를 자르고 그 접시를 바닥에 던져 깨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뛰어난 맛을 자랑하지만 너무 어린 돼지에 대한 가여움 때문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음식이다.

쿠엥카Cuenca
마드리드에서 남동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스페인의 소도시 쿠엥카는 과거 스페인을 정복했던 무어인아랍계 이슬람교도들이 지은 방어 거점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가장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천혜의 요새 도시이다. 마을 주변을 기암괴석들이 둘러싸고 있고 중세에 지어진 집들이 절벽 위에 늘어서 있어 오묘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이 도시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늘의 소리’에 영감을 주었던 도시이면서 우리나라의 파주시와 자매도시이기도 하다.

TIP. 마드리드에서 쿠엥카로
마드리드에서 쿠엥카로 떠나는 버스는 메트로 6호선 멘데즈 알바로Mendez Alvaro역에서 탈 수 있다. 약 2시간에 1대 간격으로 운행되며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쿠엥카 버스터미널에서 중세 유적을 볼 수 있는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터미널 맞은편에서 1번 버스를 타야한다. 약 15분 정도 소요.

마법에 걸린 도시 쿠엥카
톨레도와 세고비아 여행은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융성했던 스페인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으로 두 도시는 확연히 구분 될 수 있었지만 유적이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점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조금은 색다른 곳으로 관심이 이어졌고 그 적절한 대안을 찾아 발걸음은 쿠엥카로 향하고 있었다.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이지만 잘 보존된 중세의 풍경과 기묘한 자연경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쿠엥카만의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다는 점이 이 도시를 찾게 만든 매력 포인트였다.

1번 버스는 신시가지를 잠시 돌며 승객을 태우고 구시가지로 진입했다. 마요르 광장을 지나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오르는 버스는 둔탁한 엔진 소리와 함께 빠르게 과거로 들어섰다. 이윽고 도착한 종점은 황량했지만 바로 새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현재 위치는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곳이었고 한 가운데 낭떠러지를 둘러싸고 있는 저 멀리 보이던 옛 건물들은 나와 같이 반대편 절벽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여행객들이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주인 없는 절벽에 올라 사진을 찍었지만 절벽 위 위태로워 보이는 건물들에 비하면 그리 위험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상한 풍경이 나를 그곳에 붙잡아 두었다.

하늘을 날지 못하던 시절, 엄청난 고지대의 낭떠러지에서 올라온 뒤 또 다시 절벽을 기어올라야만 비로소 인간의 싸움은 시작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높이와 급격한 경사로 애초에 싸움이란 없었을 것 같은 이베리아 반도 최고의 요새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토록 훌륭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허공에 매달린 집Casas Colgadas은 이 마을 최고의 명물이다. 이름처럼 정말 꼴까닥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한 이집은 앙상한 철교를 지나 파라도르로 연결된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쓸쓸한 모습의 파라도르 앞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동 떨어진 절벽 위에 이 건물을 지어야만 했던 이들의 간절함에 대한 설명인 것 같았다. 마법에 걸린 듯 누군가 지어낸 이 도시는 언젠가 나를 다시 이곳으로 마법처럼 인도할 것이다.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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