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만나는 유라시아&아프리카③] 마지막까지 추억을 선물한 러시아

입력 2015-09-10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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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송인근

<<‘멀쩡하게 직장을 다니던 30대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바이크 세계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미쳤다'와 '멋있다'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그게 미친 것이든 멋진 것이든 간에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조금 더 많은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할 뿐이다. '푸른 늑대를 찾아서'라는 이름하에 유라시아 횡단 및 아프리카 종단 바이크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송인근(35) 씨 역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30대 남성이다. 거창한 목표를 지닌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떠난 여행도 아니지만 그가 지나고 또 지나갈 50000Km의 여정은 마찬가지로 조금 더 용기를 발휘할 예비 모험가들에게 하나의 참고서가 될 만하다. 이에 동아닷컴에서는 송인근 씨의 9개월에 걸친 여행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사진 제공|송인근


●다시 러시아로


몽골에서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 단순히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도로와 풍경, 기분까지 확연하게 달라진다. 자연이 바뀌는 곳을 기점으로 국경을 만들어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러시아와 몽골을 여행하면서 스스로 가장 많이 바뀐점은 인사와 미소가 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마주치면 대개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짓게 됐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환대를 해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기름을 넣기 위해 러시아 주유소를 들렀을 때의 일이다. 단숨에 만취했음을 느낄수 있는 동양계 젊은 청년 두 명과 마주쳤고, 막무가내로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계속해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던 이들은 주먹을 들어 나를 때리는 시늉까지 했고, 설상가상으로 이들의 일행까지 합류하면서 술에 취한 5명의 청년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무섭다기보다 곤혹스럽고 피곤한 기분이 들었고, 요령것 맞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그나마 조금 착한 녀석이 일행을 진정시키고 '아임 쏘리'라고 사과하며 나를 보내줬다. 불미스러운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디를 가나 반드시 친절한 사람만 있다는 것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달은 사건이었다.

교훈이라면 교훈일 수 있는 사건을 겪고 다시 라이딩에 나섰지만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다. 여행이 지루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광활한 자연을 감상하는것도 하루 이틀이고, 몽골의 험난한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이후 포장도로를 달리는 일은 너무나도 단조로운 일이었다. 여행 그 자체가 일상이되면서 유명 관광지를 보아도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단조로운 여행을 타파할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시키면 한다'가 그것으로, 간단히 말해 한국의 지인들이 제안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젝트이다.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해서 ‘시키면 한다’ 프로젝트를 공지하자 상당히 흥미로운 미션을 받게 됐다.

●블랏과 함께한 러시아의 밤

사진 제공|송인근


첫 번째로 수행한 미션은 ‘러시아 친구와 보드카 마시기 대결’로, 이는 생각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예카테린부르크의 호스텔에서는 40대 중반의 디니스와 20대 초반의 블랏 두 명의 러시아인이 묵고 있었고, 첫날부터 이들은 한잔 하자고 술을 권유했다.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관계로 술 약속은 다음날로 미뤘고, 이튿날 밤이 되자 자연스럽게 이들과 보드카와 맥주를 마시게 됐다.

또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블랏은 클럽에 가기를 권유했고, 한국에서도 가보지 못한 클럽을 러시아에서 경험하는 행운을 얻게됐다. 물론 술과 관련된 일들이 항상 유쾌한 결말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사진 제공|송인근


하루는 블랏과 둘이서 보드카를 마시다가 거리의 다른 일행들과 시비가 붙었고, 취기가 올랐던 블랏은 다른 일행과 주먹다짐까지 벌이고 말았다. 특이한 건 러시아의 거리 문화로,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러시아에서는 이렇게 싸우기도 한다고 설명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경량급에 완전히 취한 사람을 데리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블랏을 조롱하던 사람들을 말리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러시아의 젊은 청년중에 앞니가 없는 것을 굉장히 많이 목격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 바이커와의 커넥션

사진 제공|송인근


또 다른 미션이었던 '러시아 바이크 클럽과 라이딩하기'는 많은 운이 따랐고, 또 평생 잊지못한 추억을 남겨준 미션이었다.

예카테린부르크 호스텔의 주인 안드레는 나에게 이 부근에서 바이크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시간과 장소가 맞아떨어지자 나는 지체없이 페스티벌 현장으로 바이크를 향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했지만 사람들의 친절 덕분에 페스티벌에 합류할 수 있었고,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큰 환대와 관심을 받았다. 덕분에 정식으로 이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고 러시아의 유서깊은 바이크 클럽 알카시의 뱃지와 스티커까지 받을 수 있었다. 첫 만남부터 헤어질 때까지 고마움의 연속이었다.

사진 제공|송인근


이 바이크 페스티벌에서 쌓은 인연은 예카테린부르크를 떠나 카잔에까지 이어졌다. 카잔으로 향하던 도중 바이크의 고장으로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곳에서 만난 에브게니와 카타리나는 휴가까지 내고 왕복 500Km의 거리를 달려와 수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물론 100% 나에 대한 호의만으로 그랬다기보다는 러시아 바이커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발휘됐다는 느낌이지만,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큰 고마움을 느낀 하루였다.

그렇게 인연과 도움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땐 곧 유럽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인연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이 나지 않았다.

사진 제공|송인근


●러시아의 마지막 선물

우연찮게 모스크바에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오형님'과 유라시아를 횡단중인 '토라에몽', '손현' 등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고 이들과 한동안 함께 지내게 됐다. 그렇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부르크에서 관광객같은 기분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진 제공|송인근


상트페테부르크에서 EU국가에서 통용되는 차량보험인 그린카드를 신청하고 발급을 기다리던 도중 어딘가에서 지갑을 분실하고 말았다. 지갑에 현금은 많지 않았지만 현금카드가 사라진 것은 정말 큰일이었다.

허겁지겁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분실신고와 재발급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지만 해외에서 자기 명의의 카드를 재발급 받는다는 것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다행히 카드를 재발급 받고 해외로 배송까지 마쳤으나 그 사이 발생한 금전적 손실과 은행사의 무성의한 태도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사진 제공|송인근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물건을 잘 챙겨야 하고, 잠깐의 실수가 큰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교훈과 해외에서의 은행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향할 준비를 마치고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에스토니아로 향하는 순간, 이곳에서도 의도치않은 돌발상황은 이어졌다. 마지막 짐정리를 마치고 주유소에서 출발하려는데 웬 군인들이 나를 찾아와 동행을 요구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슨 일인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하자, 알고보니 내가 국경검문소를 단순 검문으로 착각해 그냥 지나쳐 온 것이었다. 말그대로 국경을 넘어 도주한 나를 잡으러 군인이 출동한 상황이었다.

사진 제공|송인근


그렇게 러시아 군부대까지 끌려가 한참동안 서류작업 끝에 100루블(한화 약 2000원)벌금형을 받았지만, 유럽으로 넘어갈 생각에 수중에는 루블화가 한푼도 없었다. 결국 군인들은 그냥 에스토니아로 건너가라고 나를 보내줬다.

여행의 출발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랜시간을 머물렀던 러시아는 나와의 이별이 아쉬웠는지 그렇게 마지막까지 발걸음을 붙잡고 추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제 유럽이다. 또 새로운 시작이다.

사진 제공|송인근



※보다 자세한 여행기는 송인근씨의 블로그 (http://songig0831.blog.m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사진 송인근 / 감수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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