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강성형 감독의 반전카드…‘하나의 태양’을 만들다

입력 2015-12-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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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강성형 감독. 스포츠동아DB

KB손해보험 10연패 부진 원인 진단결과
주전세터 권영민·마틴 호흡 불일치 결론
“권영민 스타일에 맞춰라” 이후 정상궤도


10연패의 수렁에서 허덕이던 KB손해보험이 최근 2연승하며 기사회생했다. 11월 28일 대한항공에 3-0으로 승리하며 연패를 끊은 것이 반전의 계기였다.

사실 그 경기에는 행운이 따랐다. 일주일 사이에 3경기를 치르는 대한항공이었다. 11월 23일 삼성화재전에 이어 치른 26일 OK저축은행전 때는 비주전을 투입하며 전략적 운영을 했다. 승리 가능성이 낮은 경기보다는 이틀 뒤 KB손해보험전에서 전력을 다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OK저축은행이 주춤거리면서 빈틈을 줬다. 눈앞의 승리가 보이는데 내일을 생각하는 감독은 없다. 대한항공은 전력투구로 돌아섰다. 결국 OK저축은행전에서 혈투 끝에 3-2로 이겼지만, 체력이 고갈됐다. KB손해보험에 완패한 이유다.

그 덕에 10연패에서 벗어나자 그동안 몸을 무겁게 했던 부담과 조바심을 털어낸 KB손해보험 선수들은 기세를 이어갔다. 1일 한국전력도 3-1로 제압했다. 한때 어디를 봐도 답이 보이지 않던 팀은 이제 차츰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계기는 강성형 감독이 내린 하나의 결정이었다.


● 하늘에는 하나의 태양만 떠있어야 한다!

연패를 거듭하는 동안 KB손해보험은 부진의 이유를 여기저기에서 찾았다. 다양한 진단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주전 세터 권영민과 외국인선수 마틴의 호흡이 완벽하지 않다’로 모아졌다. 그동안 팀이 지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구세주로 보고 영입했던 세터와 팀 공격의 절반을 책임지는 외국인선수의 호흡 불일치는 큰 문제였다.

마틴은 대한항공 시절에도 좋은 기량과 강한 성격이라는 상반된 모습 때문에 구단을 고민에 빠트렸다. 이겨도 져도 그만인 선수보다야 강한 승부욕의 선수가 좋기는 하지만, 지나치면 또 문제가 되는 것이 배구다. 흔들릴 때 동료들을 다그쳐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드는 행동의 리더는 자칫 자신의 허물은 보지 않고 동료들만 탓하다 불만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KB손해보험은 그동안 외국인선수와 국내선수들의 케미스트리가 아쉬웠던 팀이다. 몇몇은 팀을 떠나면서 “세상에 이런 팀은 처음이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다. KB손해보험이 삼성화재와 가장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삼성화재는 어떤 외국인선수가 오더라도 팀의 일원이 됐다. 그렇게 만들었다. 팀 문화에 젖어들게 했다. 선수 스스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게끔 만들었다. 훈련과 휴식 때 외국인선수를 항상 챙겨주고 떠받들어주는 국내선수들의 헌신이 있었다. 경기 때 외국인선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스템도 영향을 줬다. 구단은 성과에 따르는 충분한 대우를 해줬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합쳐지면서 삼성화재 외국인선수는 팀원이 됐다. 스스로 승리의 책임을 지는 외국인선수를 삼성화재는 태양으로 만들었다.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이듯 팀에는 한 명의 에이스가 필요한데, 삼성화재 국내선수들은 에이스를 빛나게 해주는 보조 역할을 잘 수행했다. 어느 누구도 그 시스템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국인선수가 공격하면 모든 선수들이 엎드려 어택커버를 했다.

어떤 위치에서든 그에게 공을 연결해주는 삼성화재의 배구를 ‘몰빵 배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아직 V리그에서 그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팀이 삼성화재의 방법을 따랐다. KB손해보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시스템에 숨겨져 있는 정신(하늘에는 오직 태양이 하나뿐이다)은 지나쳤다.


모두가 빛나려고 해서는 이길 수 없는 것이 배구다!

강성형 감독은 마틴과 많은 대화를 했다. 구단도 다양한 각도에서 마틴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살폈다. 집안문제 또는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도 나올 수 있기에 최대한 편하게 속내를 들어보려고 했다. 면담 결과 외부적 문제는 없었다. 다만 세터와의 호흡이었다.

마틴은 원하는 토스가 오지 않을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것을 간과하지 않은 강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마틴을 따로 불렀다. 강 감독은 “너한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네가 안 되면 앞으로는 다른 선수를 쓰겠다. 이제는 너에게 맞춰줄 시간도 없다. 앞으로는 권영민이 하는 대로 그 스타일에 맞춰 배구를 하라”고 주문했다. ‘지금부터 팀은 권영민 중심으로 움직이겠다’는 결정이었다.

선수들은 저마다 코트에서 관중의 주목을 받고 가장 빛나는 선수가 되고픈 욕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빛나려고 해서는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팀도 리더 또는 에이스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잘 굴러간다. 코트에서 뛰는 6명 모두는 승리를 위해 중요하고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들지만, 역할에 따른 등급이 있어야 원팀이 된다. 선두 OK저축은행은 시몬을 중심으로, 현대캐피탈은 문성민을 구심점으로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KB손해보험은 그동안 이 부분을 자주 놓쳤다. 누가 진짜 리더인지, 동료들의 마음을 이끌고 가는 선수가 누구인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강 감독은 선수들 각자의 역할에 맞는 책임과 등급을 주는 교통정리를 단행했다.

이 결정 이후 권영민과 마틴의 호흡은 좋아진 것일까. 강 감독은 “호흡이 좋아진 것 같다. 벤치에서 지금 이 공은 마틴에게 가야 한다는 부분에서 마틴에게 가고 있다”고 말했다. 벤치가 예측한 대로 세터의 공이 움직인다면 팀은 정상궤도로 진입한 것이다.

물론 팀의 중심을 권영민으로 설정한 강 감독의 생각에 대해 마틴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결과로 미뤄 짐작할 뿐이다. 스포츠는 결과가 좋으면 고통스러운 과정과 내부의 불만은 ‘당의정’처럼 아름답게 포장되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 강 감독은 “연패 속에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있다. 훈련 때도 차츰 단단해지고 있다. 승리를 향한 간절함이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선수들끼리 뭉쳐서 더 끈끈한 팀이 된다면 실망스러운 경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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