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감정선 고운 손츠비, 사랑스러운 강츠비

입력 2015-12-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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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마지막 장면. 캣츠비(오른쪽·손동운 분)가 자신을 떠났다가 결국 되돌아온 페르수(선우 분)와 사랑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아이콘

■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RE:BOOT’


비스트 멤버 손동운 캣츠비 연기 일품
강기둥 캣츠비는 사랑할 수밖에 없어

신비한 페르수 선우와 섹시한 이시유
‘연적’ 선 역 맡은 다나·유주혜도 열연

이런 순결한 막장이라니.

20대 청춘들이 겪기엔 지독하게 아프고 가혹한 사랑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손가락 사이로 피가 배어나오는 상처 위에 소금을 짓이기고 있었다.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연출 변정주)’는 ‘RE:BOOT’ 버전이다. 이미 몇 차례 공연되었던 이 작품을 컴퓨터를 재시동(리부팅) 시키듯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다. ‘재탕’이 아닌 ‘재탄생’이다.

2004년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강도하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완벽한 서사와 영화에 밀리지 않는 감각적인 화면 연출, ‘명대사 열전’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대사, 배신과 고통의 반전 스토리로 대한민국 웹툰사에 굵은 발톱의 한 획을 그었던 명작이다. 6명 등장인물(원작에서는 의인화된 동물들이었다)들은 들숨이 다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흡입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은 배우들 이야기를 해보자.

백조가 되고 싶었던 백수 캣츠비. 아이돌그룹 비스트의 멤버이기도 한 손동운은 언젠가 정말 백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캣츠비였다. 이미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았던 손동운은 연기의 감정선이 참 고왔다.

강기둥 캣츠비는 다르다. 무능하고 순진하고 가난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한 여자를 정말 극진하게 사랑하는 법밖에 모르는 캣츠비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왜 페르수와 선이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게 된다.

캣츠비의 친구 하운두는 이규형과 김영철을 보았다. 이규형은 “내게 사랑은 종교”라는 하운두의 내면을 잘 그렸다. 무엇보다 노래가 시원시원해 좋다. 김영철은 좀 더 사악한(?) 하운두다. 그림자가 길고 어둡다.

페르수와 선을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선우 페르수가 비밀을 간직한 ‘신비의 여인’이라면, 이시유는 “도대체 당신이 왜!”라고 소리치고 싶은 ‘의문의 여인’이다. 선우는 미묘한 분위기의 계조가 좋다. 이시유는 특유의 섹시함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색감이다.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선은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멤버 다나, 그리고 배우 유주혜가 맡았다. 별 볼일 없는 스펙으로 결혼정보회사에서 C등급을 받아 캣츠비를 만나게 된 여인. 캣츠비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페르수를 잊지 못하는 그를 떠나야하는 아픔을 참 ‘예쁘면서 아프게’ 드러낸다. 취직 면접을 앞둔 캣츠비에게 양복을 사주며 부르는 “돈이 많아서 사 주는 게 아니에요. 잘 맞는 옷으로 신중하게 골라요”하는 노래의 가사, 캣츠비와 모텔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멈칫하며 “그거 알아요? 나에게 나무젓가락을 잘라서 준 남자는 당신이 처음이란 거”하는 대사가 묘하게 스며든다.

연적이 된 페르수와 선의 팽팽한 이중창은 그야말로 파란 불꽃이 튄다. 사랑에 대한 질문을 불편할 정도로 자꾸만 던지는 작품이다. 마음이 순결하면 육체는 상관이 없는 사랑, 친구를 배반하고 속여서 쟁취한 사랑,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에도 보내지 않는 사랑, 벽이 되어버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무어라 입을 열려는 내게 이 작품이 먼저 묻는다.

당신은 이들처럼 “미래 따위는 집어던져버려”할만한, 지독한 사랑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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