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하지만 사람 온기로 가득한 어느 날, 시장 한구석에서 왁자지껄한 소란이 피어오른다. 세련된 트렌드가 지배하는 MZ세대의 타임라인에 ‘뜬금없이’ 나타난 이들은 무채색 보다 요란한 컬러, 카페 라테 대신 믹스커피를 든 중년부부다.

유튜브 채널 ‘김해준’의 인기 코너 ‘낭만부부’ 속 김기필(김해준)과 나규리(나보람)가 그 주인공들. 이들 영상은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이 훌쩍 넘는 긴 호흡임에도 한 번 재생하면 마치 낡은 앨범을 넘기듯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낄낄대며 화면을 보다보면 어느덧 어린 시절 ‘그때 그 집’의 눅진한 온도와 냄새가 스친다.

‘낭만부부’의 위력은 대단하다. 본편 합산 조회수가 500만 회를 훌쩍 넘겼고, 숏츠 조회수는 1000만 회에 육박한다. 낯설지 않은 생활 리듬, 익숙한 호칭과 억양, 과장 같지만 분명 ‘있을 법한’ 현실감. 압도적 ‘하이퍼리얼’의 세계관을 구축한 두 사람을 만났다.


●“빌런 삼촌이 남긴 여백, 숙모를 만나 낭만이 되다”
김해준은 과거 ‘최준’이나 ‘쿨제이’ 같은 강렬한 부캐를 선보였지만 이번엔 힘을 뺐다.
“추석 때 잔소리는 엄청나게 하면서도 용돈은 계속 주는 ‘용돈 삼촌’ 캐릭터를 숏폼으로 올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잔소리할 거면 저렇게 해야지’라는 댓글을 보며 중년 캐릭터의 가능성을 봤죠.”

파트너로 김해준은 주저 없이 나보람을 택했다. 그렇게 탄생한 낭만부부는 경제적 여유가 생긴 삼촌이 귀농을 꿈꾸는 현실적인 ‘부부의 세계’를 열었다. 특이한 점은 설정을 촘촘하게 짜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식이 둘이고 유학을 보냈다는 정도의 (가상의) 큰 틀만 뒀어요. 시청자가 상상할 여백을 남겨야 재미가 커지거든요.”



●고증에 대한 집착, 소품 하나에 담긴 세대의 기억
‘낭만부부’의 폭등세에는 숨 막히는 ‘디테일’이 있다. 나보람이 착용한 굵은 금반지와 팔찌 등은 실제 집에서 가져온 것들이고, 방울모자는 그의 어머니가 애용하던 소품이다.
“분장 하고 시장에 가면 어머니들이 ‘너무 예쁘다’며 말을 거세요. 빨간색 옷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도 해주시고요.”

김해준 역시 ‘김기필 씨’가 되기 위해 ‘아저씨 의상’ 관련 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코미디빅리그’ 막내 시절부터 선배들의 의상을 챙기던 예민한 감각이 발휘됐다. 가족들 반응은 그야말로 ‘현실’ 그 자체다. 김해준의 아버지는 영상을 열 번씩 돌려보며 흐뭇해하지만, 어머니는 “내 남편을 또 봐야하냐”며 핀잔을 준다.

‘낭만부부’의 대성공은 모사에 있지 않다. 선을 넘지 않는 현실 풍자와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관통하는 당시의 생활 정서를 따뜻한 온도로 붙잡아두는 능력에 있다.
“멀리서 보면 짜증 섞인 아빠의 잔소리도, 영상이라는 안전한 거리를 거쳐 보면 유쾌한 풍경이 되거든요.”
젊은 세대에게 낭만부부는 그들의 언어를 빌려 ‘킹받지만’ 미워할 수 없는 부모 세대의 자화상이며, 기성 세대에게는 잊고 지낸 젊은 날의 낭만으로 자리하고 있다.



김겨울 기자 win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