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내 야구인생은 아침…전성기 오지 않았다”

입력 2015-12-2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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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가면 승리를 바라는 야구팬들의 눈길 속에서 김광현은 9년을 살아왔다. 이제 에이스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결과를 떠나 최선의 노력을 다한 선수이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스포츠동아DB

■ 김광현이 말하는 김광현

SK의 좌완 에이스 김광현(27)은 2007년 KBO리그에 데뷔한 이후 한국야구의 중심에 있었다. 소속팀 SK와 대한민국야구대표팀의 영광은 곧 김광현의 족적이었다. 2015시즌까지 데뷔 후 9년은 늘 ‘김광현다워야 한다’는 주위의 기대어린 시선과 싸워온 시간이었다.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 12’ 결승전(미국전) 승리를 선사하며 김광현은 ‘왜 김광현인지’를 새삼 입증했다. 김광현으로 살아온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오직 그만이 말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업적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따라가보고 싶었다.

졌을 때 욕 먹는 게 당연하지만 늘 최선 다해
올해는 볼넷 주느니 홈런 맞을 각오로 던져
2년간의 재활 힘들었지만 구위 많이 좋아져
난 아직 젊다…메이저리그 꿈 접지 않았다


● 김광현, 프로9년 잊지못한 순간들


2007년 4월 10일
프로데뷔전. 삼성 양준혁에게 홈런을 맞는 등 4이닝 3실점, 그러나 2010년 9월 19일 양준혁 은퇴경기에서 김광현은 4타수 무안타 3삼진을 뽑아낸다.


2007년 10월 26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7.1이닝 1안타 9탈삼진 무실점, SK 대역전 우승의 분기점이자 대한민국 에이스 김광현의 첫 장을 연 게임.


2007년 11월 8일
아시아시리즈 주니치전. 6.2이닝 3안타 5탈삼진 1실점. ‘일본킬러’김광현의 존재를 알린 일전.


2008년 8월 22일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전 일본전. 8이닝 6안타 5탈삼진 2실점. 류현진(LA다저스)과 더불어 한국야구 사상 최강의 원투펀치 이루며 올림픽 금메달


2009년 8월 2일
두산 김현수(현 볼티모어) 타구에 왼 손등 맞고 시즌 아웃.


2010년 6월 10일
삼성전 9회 2사까지 2볼넷만 내주며 노히트노런 눈앞에 뒀으나 최형우에게 안타 맞고 결국 완투마저 달성 못해.


2010년 10월 19일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마무리 투입돼 1.2이닝 4탈삼진 1실점으로 우승 확정. 마지막 아웃을 잡고 포수 박경완(현 SK 배터리코치)에게 90도로 인사해 화제.


2011년 6월 23일
KIA전. 147구를 던져 ‘벌투’논란 일으켜. 이후 김광현이 뇌경색을 앓은 사실이 드러났고, 기나긴 재활에 들어감.


2012년 10월 16일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6이닝 5안타 10탈삼진 1실점. 김광현의 재기를 알리는 한편 SK를 6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끈 게임.


2014년 12월 14일
결혼식.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도전했으나 협상 결렬되며 SK 잔류 선언. 결혼식 바로 전날. SK는 비FA 투수최고 연봉이자 SK 역사상 투수 최고연봉 보장.


2015년 11월 21일
프리미어12 결승전 미국전. 5이닝 4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대한민국을 초대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져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려 한다”


-프리미어 12를 마치고 어떻게 지냈나?

“잘 지냈다. 둘째아이도 얻었는데,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힘이 될 것 같다.”


-2015년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프리미어 12 결승전 초대 승리투수가 된 것이 정말 뜻 깊다. SK가 5위에 그쳐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운도 많이 따랐고, 투구이닝이 늘어난 것에 대해 충분히 만족한다.”


-항상 잘 던져야 한다는 시선 속에서 던지는 기분은 어떤 것인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던진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해왔다.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더라. 무조건 이겨야 되는 경기일수록 ‘져도 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려 한다.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결과가 좋더라.”


-그래도 결과가 안 좋으면 내상이 있을 것 같다.

“스스로를 많이 다그치는 편이다. 솔직히 하루 동안은 힘들다. 다만 지금은 금방 털어버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프로 10년차니까, 수없이 당하니까, 경험이 되는 것 같다.”


-커리어가 쌓이면 좀 초연해지나?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이 들수록 더 하다’고 하더라(웃음). 부담은 가지만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기대를 건다는 것은 나를 향한 응원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도 비판을 받으면 억울할 때도 있지 않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니까, 졌을 때는 못했으니까 욕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다만 김광현이라는 투수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한다.”

SK 김광현의 2016시즌 목표는 180이닝 투구다. 안 아프고, 팀 승리에 기여하는 투수가 목표다. 스포츠동아DB



“올해 소득? 초반 실점해도 포기하지 않는 투수가 된 것”


-데뷔 이래 지금까지 국가대표 에이스는 계속 김광현이다. 반면 일본은 계속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 당사자로서 어떻게 받아들이나?

“어떻게 보면 부담이지만 행복하다. 감독님들이 믿어주시고, 국민들이 생각해주시니까 과분하다는 생각이다. ‘도와주는 후배가 나왔으면’ 하는 약한 생각을 하기보다 일단 무조건 주어진 등판을 이기는 게 나의 몫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노장이 되면 후배들에게 경험을 알려줄 수 있을 테니 지금 많이 경험해두고 싶다.”


-야구는 노력인가? 재능인가?

“반반인 것 같다. 재능이 있어야 노력이 더 빛나는 것 같고….”


-KBO 토종투수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다.

“항상 마운드에서 살살 던진 적은 없다. 아마도 그래서 1위인 것 같다. 올해 들어 많이 터득한 게 전에는 살살 던지다 안타 맞으면 ‘세게 던질 걸’ 했는데, 올해는 ‘어차피 똑같은 안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올해 야구 트렌드가 많이 변했다. 선발투수로서 경기수가 늘어나니까 5이닝 무실점보다 7∼8이닝 2∼3실점으로 이닝을 끌어주는 투수가 더 인정받고, 승리를 가져간다는 것을 배웠다. 예전에는 팀 색깔도 그랬지만, 5이닝만 점수를 안 주면 1-0으로 끝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닝을 끌어줘야 중간투수도 쉬고 그렇더라.”


-김광현이라고 하면 강속구, 슬라이더, 탈삼진 능력이 떠오른다. 제3구종과 컨트롤, 완급조절은 진화되고 있는 것인가?

“조금씩 되고 있는 것 같다. 변화구를 하나 익히기 위해 길게는 3년이 걸린다고 하더라. 커브는 3년째 던지는데, 이제 (직구가 50%, 슬라이더가 40%라면) 10% 정도 차지한다. 내년에는 좀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볼넷이 많이 줄었다. 올해 생각이 바뀐 것이 ‘볼넷을 줘서 주자 쌓아놓지 말고 차라리 홈런을 맞자’고 마음먹었는데 볼넷이 많이 줄었다.”


“메이저리그? 기회 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약 2년간(2011∼2012년) 재활을 했던 투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구위 회복이다.

“진짜 거짓말 같이 재활하며 좋아졌다. 2년은 정말 아팠다. ‘경기를 나가면 안 되나? 수술을 해야 되나?’ 싶을 정도였는데, 트레이너 코치님들이 잘해주셨다. 지난해와 올해 조심스러웠는데, 아프다는 생각이 안 들어 무척 좋다.”


-재활은 이제 끝난 것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어깨에 대한 부분은 완전히 놓지 않았다. 2년의 재활기간 너무 힘든 기억이 남아있다. 그 이후 캐치볼을 3일 이상 쉰 적이 없다. 재활은 거의 3년을 본다고 하더라. 내년이 그 마지막 해인데, 목표로 180이닝 이상을 잡고 있다.”


-야구가 재미있나?

“재밌다. 물론 전지훈련 가서 훈련하는 것은 단조롭고 힘들지만, 경기를 위해서 하는 훈련이다.”


-잘하니까 재밌지 않나?

“못했을 때도 타자를 이기는 법을 연구하고, 이겼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프리에이전트(FA) 100억원 가치의 투수라고 나왔던데.

“(몸값은) 구단에서 판단할 문제다. 마운드에서 열심히 던지는 게 나의 첫 번째 몫이다. 한국, 미국, 일본 중 내년 시즌 후 어디서 뛸지 아직은 모르겠다.”


-메이저리그 재도전 의사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한 번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계약에 실패했다. 가족들이 있으니까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많이 생각한 끝에 계약이 안 된 것이다. 미국은 금액을 많이 줄수록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 같더라. 기회만 보장된다고 하면 나가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선배님들을 많이 보고 자랐고, 야구선수로서 최고의 꿈이니까…. 아직까지는 나이가 많지 않다. 힘이 더 붙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접진 않았다.”


-내년 시즌 어떤 데이터에 집중할 것인가?

“꾸준함이다. 올해도 문제가 됐던 게 5이닝을 못 채우고 내려간 적이 몇 번 있었다. 30경기 6이닝씩 잡고 180이닝, 딱 그 정도만 하고 싶다. 그게 쉬운 게 아니다.”


-마운드에서 심리상태가 표정에 드러난다고 하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표정만 보면 아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시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특별히 표정을 가지고 뭐라고 안 하셨으면 좋겠다(웃음). 스스로 생각해서 표정을 만들어간다. 질 때도 웃을 때가 있다.”



● “전성기?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 나는 멀었다”


-2016시즌을 앞두고 SK의 전력 유출이 많다.

“이제 내가 SK 선수 중에 중고참 정도 되는 것 같다. 중간에서 잘해야 될 것 같다. SK 투수들이 약하지 않다. 프리미어 12 때도 ‘투수가 약하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투수조장을 맡았는데, ‘다 잘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인데 왜 자꾸 해보기도 전에 약하다고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욕먹을 각오하고 일부러 이렇게 얘기했다. ‘김광현이 있는데 왜 약하다고들 하느냐?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다른 투수나 선배들이 많았지만, 후배들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말이었다. 내년 우리 SK도 결코 약한 투수진이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다. 항상 목표는 우승이다.”


-현역 인생을 새벽 0시부터 밤 11시59분까지에 비유한다면 지금 몇 시쯤일까?

“아직도 아침인 것 같다. 아직 정오가 안 됐다고 생각한다. 기회는 많고, 한 날보다 할 날이 더 많다. 더 배울 일이 많다. 아직 멀었다.”


-먼 훗날 김광현이 어떤 선수로 기억됐으면 싶은가?

“위키피디아처럼 (100억원 가치가 있는 투수가) 됐으면 좋겠다(웃음). 모두가 대한민국의 선발투수하면 떠올리는 투수가 되고 싶다. ‘국민타자’, ‘국민유격수’처럼 ‘국민’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이 정말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업적과 실력과 인성이 있어야 되니까. 그런 투수가 되고 싶다.”

문학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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