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외국인선수 그로저의 서브가 상대팀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파워, 스피드, 회전에서 모두 역대 최고로 평가받을 만큼 위력적인 서브를 구사해 5라운드 이후 삼성화재를 상대하는 팀들에는 경계대상 1호로 떠올랐다. 사진제공|삼성화재배구단
세트 평균 서브 0.92개 압도적 수치
“파워·스피드 등 역대 외국인 중 최고
빠른 무회전 서브…무게감 상상초월”
올 시즌 센세이션을 일으킨 삼성화재 외국인선수 그로저의 서브는 V리그에서 활약하는 모든 리베로에게 충격과 공포다. OK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 리베로 정성현이 그로저의 서브를 받고 난 다음 몇 경기에서 흔들렸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11월 18일 대전 경기였다. 그날 그로저는 9개의 서브를 성공시켰다. OK저축은행은 이후 3연패를 당했다. 상상 이상의 공포를 경험한 수비수의 리시브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카드 정민수와 조진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3일 장충체육관에서 3세트 4연속 서브를 허용한 뒤 멘탈 붕괴 직전까지 갔다. 다음 경기부터 눈에 띄게 리시브에 자신감이 떨어졌다. 17일 그로저에게 무려 15개의 서브를 내준 KB손해보험이 후유증을 얼마나 수습했을지도 궁금하다.
그로저는 20일 현재 19경기에서 74세트를 뛰어 68개의 서브를 성공시켰다. 범실은 102개. 세트 평균 서브는 0.92개다. 2위 시몬(OK저축은행)이 0.51개, 3위 오레올(현대캐피탈)이 0.33개인 것을 고려하면 클래스가 다름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1시즌 동안 서브왕을 차지했던 어느 선수보다 기록에서 앞선다. 2005년부터 2013∼2014시즌까지 V리그가 시상했던 서브왕 가운데 세트 평균 0.5개를 넘겼던 경우는 4차례뿐이었다.
● 역대 V리그를 빛낸 서브왕은?
2006∼2007시즌 보비(0.53개), 2010∼2011 시즌 에반(0.50개), 2011∼2012시즌과 2012∼2013시즌 마틴(0.50→0.56개·이상 대한항공)이 세트 평균 0.5개 이상의 서브를 달성했다. 모두 대한항공 소속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그로저는 서브의 위력을 가늠하는 스피드와 파워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서브왕을 압도한다는 평가다. 공교롭게도 17일 KB손해보험전에서 한 경기 최다 서브 신기록을 작성했을 때 상대 코트에는 마틴이 있었다. 마틴도 4개의 서브를 성공시키며 서브왕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그로저의 기세에 눌렸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유럽예선에 출전하고 돌아온 그로저는 시차 때문에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서브 때 불필요한 힘을 넣지 않아 정확도가 더 높아졌다. 스윙의 밸런스까지 완벽했다.
이날 엔드라인에서 그로저의 서브를 지켜본 세터 출신의 최영준 KB손해보험 사무국장은 “얼마나 공에 위력이 있던지 정상적인 회전이 아니라 공이 찌그러져서 왔다. 미사일 같았다. 그런 공은 못 막아도 누구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브의 강도가 높아지고 영점조준까지 잡혀가는 그로저가 ‘꿈의 수치’인 세트 평균 1개의 서브를 달성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베테랑 수비수가 직접 경험하고 털어놓은 그로저의 서브
그로저의 무시무시한 서브를 직접 받아본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 여오현(현대캐피탈)과 최부식(대한항공)에게 솔직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그동안 경험했던 어떤 외국인선수보다도 그로저의 서브가 강하다”고 밝혔다. 최부식은 “서브가 무섭다. 솔직히 제대로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에이스만 내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하는데 힘들다”고 말했다. 여오현은 “그로저의 서브는 받기보다는 (팔이나 손을) 댄다는 생각뿐이다. 세계 톱클래스 선수이다 보니 서브가 아니라 네트 앞에서 때리는 공격과 같다. 수비라고 생각하고 리시브를 한다”고 고백했다. 여오현은 그로저가 연속 서브를 넣을 때 “제발 내게 오지 말라는 생각보다는 제발 범실을 해주라는 생각만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베테랑은 전문가답게 그로저의 서브를 기술적으로 분석해줬다. 최부식은 “파워, 스피드, 회전 모두 역대 최고다. 타점은 역대로 레오가 가장 높았고, 그로저는 파워가 좋다. 레오는 공을 찍어서 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로저는 공을 타고 때린다. 공에 체중을 실어서 때리기 때문에 받으면 묵직한 느낌이다. 무게감이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여오현도 “레오와 그로저는 무게감에서 차이나 난다. 스피드가 있는 데다 무회전이라 더 받기 힘들다. 플로터 서브도 받기 어려운데, 그것이 상상외로 빠르게 오니까 더 힘들다. 시속 150km로 던지는 야구의 너클볼을 생각하면 된다”고 평가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