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과 김정남, 마이키가 14년 만에 그룹 터보의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1995년 2인조로 데뷔해 빠른 댄스음악에 김정남의 현란한 랩과 몸짓의 안무, 김종국의 뛰어난 가창력을 더하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린 터보는 1997년 9월 마이키를 영입해 새로운 리듬과 멜로디로 팬들을 만났다.
그러던 어느날 터보의 김종국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하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공개 활동을 자중하겠다”고 밝혔다. 1999년 바로 오늘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터보는 그 전 해인 1998년 12월31일 KBS가 생방송한 ‘한·중·일 콘서트’ 무대에 나섰다. 하지만 팬들과 시청자는 멤버 김종국의 모습에 상당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PC통신을 통해 “김종국의 태도가 불성실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립싱크는 성의가 없었고, 퇴장하면서 관객에 대한 인사도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가요계 매니지먼트사 단체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는 이듬해인 1999년 1월20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김종국과 그 소속사에 대해 무기한 제재를 내렸다. 방송사 등에는 출연 금지 등을 요청했다.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인으로서 역할을 망각한 행위”라는 것이었다. 당시 연제협의 이 같은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종국은 결국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해야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당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서도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훈련과 함께 음악적으로도 바로 설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는 시간을 갖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그해 10월 징계는 풀렸다. 그리고 터보는 정상적인 연예활동을 이어갔다. 훗날 해체하기는 했지만 당시 터보는 10대들의 또 다른 우상으로서 인기를 누렸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터보는 여러 기부활동 등을 통한 사회봉사에도 앞장섰던 그룹으로서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는 그만큼 이들의 어깨에 얹힌 책임감도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종국의 기자회견은 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아직은 미숙했던 그래서 더욱 성숙해질 기회를 준 구설의 결말이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