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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해 배운 게 정말 많다. 화나는 일도 있었지만 다 공부가 되더라.”
일본 J리그 사간도스의 영웅 감독이었다가 지난해 K리그 1년차 사령탑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윤정환(43) 울산 현대 감독. 속으로 삭이고 티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K리그 클래식 6강권 밖으로 밀렸던 지난해는 악몽을 꾼 듯 아찔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과거는 지나간 일이다. 15일 일본 가고시마에서 막판 팀 전지훈련을 이끌고 있는 그는 “보세요!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요”라며 희망을 강조했다.
올 시즌 퀀텀 점프를 노리는 울산의 근거 있는 자신감은 선수단 구성의 변화다. 국가대표 공격수 김신욱과 골키퍼 김승규는 각각 전북과 일본의 빗셀 고베로 이적했다. 차포가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윤 감독은 “위기일수록 더 희생하고, 헌신하고, 분투하는 의식들이 자라난다. 그런 팀 분위기가 개인역량보다 몇 배 더 중요하다”고 했다.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은 무게감에서 김신욱에게 밀리지만, 제공권에 더해 왕성한 움직임을 자랑한다. 수원과 인천에서 데려온 좌우 날개 공격수 서정진과 김인성은 스피드와 돌파력을 갖춘 맹장들이다. 활동 영역이 넓은 선수들이 가세해 빠른 축구가 가능해졌다. 윤 감독은 “배고픈 선수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그게 선수들에게 전파되고 있다”고 했다.
선수 시절 패스 마스터였던 윤정환 감독은 지난해 롱볼 축구를 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앞선의 김신욱한테만 연결하는 단순한 공격루트가 빌미였다. 윤 감독은 “나의 축구는 유공 선수 시절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롱 볼 축구라고 개념화시키는 것은 오해가 있다”고 했다. 선수단 역량에 맞는 실용축구를 지향하는 윤 감독은 “고공 볼도 공격수의 가슴이나 발밑, 더 좋게는 배후의 공간으로 보낼 때 위협적이 된다. 새로운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공격로를 다양화하는 것이 올 시즌의 과제”라고 했다.
짧은 패스냐, 롱 패스냐의 성격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조성이다. 윤 감독은 “상대 위험지역에서 창조적인 플레이 열 번을 시도해 한번을 성공하면 골이 된다. 선수들에게 실수할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수비는 4-2-3-1의 기본 전형을 상대의 공격 위치에 따라 서너 가지 형태로 수시로 바꾸도록 고안했다. 선수 11명 전원이 상황에 맞춰 맞춤하게 움직이는 것은 기본이다.
다양한 선수를 하나로 모아야 하는 감독은 눈만 봐도 교감하고, 고민을 터놓을 정도로 소통해야 강력한 화음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습관은 제2의 천성이어서 선수들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더욱이 울산 선수단이 톱 레벨은 아니다. 윤 감독은 전지훈련 내내 “뛰어!” “공간!” “벌려!”를 쉴 새 없이 외치며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했다.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인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선수들한테도 부족한 게 보이면 곧바로 질책했다. 그는 “선수 하나가 몸의 방향을 살짝만 틀어도, 미드필더의 패스 방향만 바꿔도 경기 흐름은 순식간에 바뀐다. 그런 감각적인 지점에서 집중력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의 최종 목표는 똘똘 뭉친 팀이다. 윤 감독은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다져지면 선수들은 앞서고 있어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뛰고, 지고 있으면 골을 넣으려고 불같이 달려든다. 그게 강한 팀”이라고 했다. 훈련 뒤 선수들에게 “반드시 설명을 하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농담도 하면서” 챙긴다. 2002 월드컵 때 벤치의 고통을 절감한 그는 “가식적인 것을 싫어한다. 말 한마디라도 선수들과 진심으로 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 영입한 레전드 골키퍼 김용대나 공격수 박성호 등 고참들이 융화형이고, 지난해 신인으로 후반 출전 기회를 늘리면서 성장한 골키퍼 장대희, 공격수 김승준, 수비수 이명재 등이 듬직해 신구 조화도 짜임새를 더했다.
올해 울산의 명가 재건은 가능할 것인가. 윤 감독은 “아직 팀 전력은 완성치의 60% 수준이다. 선수들이 프로의 자세로 모든 신경을 팀에 쏟아야 한다. 시즌 초반 고비를 넘기면 내가 생각하는 팀의 힘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시즌 성적에 대해서는 “일단 6강에 들어야 하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