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154km…‘파란만장’ SK 정영일 ‘다시 꾸는 꿈’

입력 2016-02-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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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정영일이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정영일은 고교시절 김광현(SK), 양현종(KIA)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오른손 투수로는 랭킹 1위였지만 동기들과 달리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먼 길을 돌아 스물여덟 살에 KBO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SK 정영일이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정영일은 고교시절 김광현(SK), 양현종(KIA)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오른손 투수로는 랭킹 1위였지만 동기들과 달리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먼 길을 돌아 스물여덟 살에 KBO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SK 정영일

마이너리그 돌고 돌아 한국야구 복귀
김광현과 동기…노하우 등 도움 받아
멀리 돌아서 왔지만 더 성숙해진 계기


여행자는 때로 먼 길을 돌아오기도 한다. 천천히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장거리 달리기는 얘기가 다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는 있어도 경주에서 돌아가면 손해다.

여기 먼 길을 돌고 돌아온 선수가 있다. 함께 출발선상에 있던 이들은 저 멀리 뛰어갔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16시즌 1군 데뷔를 앞둔 SK 우완투수 정영일(28)은 “동기들과 격차가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해외 유턴파’ 선수들의 물꼬를 튼 정영일과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났다.


● 다른 선택 뒤바뀐 처지 “뛰어난 동기들, 나도 잘하면 돼”

그의 동기는 내로라하는 한국야구의 에이스들이다. 팀 동료인 김광현(28)과 KIA 양현종(28)은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자리하고 있다. 나란히 올 시즌을 마치면 FA(프리에이전트) 자격도 얻는다. 2년 전 실패했던 해외진출에 다시 나설 가능성도 있다.

정영일은 둘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광주 진흥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 4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1경기에 13.2이닝을 던지며 23탈삼진을 기록한 고교 에이스 중 1명이었다. 정영일은 고향팀 KIA에 1차 지명됐다. 김광현도 연고팀 SK에 1차 지명됐고, 광주 동성고의 양현종은 2차 전체 1번으로 정영일과 마찬가지로 KIA에 지명됐다.

그러나 정영일은 둘과 달리 미국행을 선택했다. LA 에인절스와 입단계약을 맺고 태평양을 건넜다. 이후 이들의 야구인생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렸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한국야구를 지배하며 정상에 올랐고, 정영일은 마이너리그에 머물다 팔꿈치 수술 이후 방출의 아픔을 맛봤다.

그는 “주변에선 동기들과 격차가 벌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다. 앞으로 나도 잘해서 좁히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고 돌아온 한국야구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정영일은 지난 2014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5라운드 전체 53순위로 SK에 지명됐다. 수술과 재활, 그리고 해외 진출 선수들의 2년간 국내 복귀 금지 규정으로 인해 4년 가까이 마운드를 떠나 있었다.

그 사이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노크해보기도 했지만, 규정 탓에 퓨처스리그(2군) 출장도 불가능했다. 일본 독립리그까지 다녀온 끝에 국내복귀 유예기간인 2년을 채웠다. 해외파들의 복귀 러시가 이어진 2000년대 후반 이후 신인드래프트를 통한 국내 복귀는 정영일이 처음이었다.

그는 “지명을 받을 때부터 어떤 보직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한때 내가 야구선수인지 잊고, ‘이대로 끝날까’ 싶을 때도 있었다. 너무 야구를 하고 싶었기에 마운드에 건강히 서기만 바라고 있었다”며 “아직 내가 평가할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 야구는 강한 것 같다. 지난 2년간 상무에서 2군 경기만 뛰었지만, 가끔 1군 선수들을 만나면 힘과 기술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1구, 1구에 집중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실패한 꿈 그리고 새 출발 “좋은 경험, 성숙해지겠다”

뒤늦게 경험한 한국 야구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처음 겪는 한국팀의 스프링캠프도 미국과 달리 페이스가 빨라 준비를 빨리 해야 했다. 낯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동기는 가장 큰 ‘도우미’였다. 캠프에서 김광현과 친해지면서 ‘이럴 땐 이렇게 던져야 한다’, ‘안 좋을 땐 이런 식으로 하면 좋다’는 등의 소중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정영일은 “(김)광현이가 정말 친절하게 알려준다. 올 시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교육리그에서는 LA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리그팀과의 경기에서 직구 최고구속이 시즌 때(152km)보다 높은 154km가 나왔다.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코치들이 “몸 상태 괜찮냐”며 안부를 전하자, 경기에서 보란 듯이 증명했다.

비록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들 앞에선 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정영일은 “선수라면 누구나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서 뛰고 싶어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해 아쉽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최근 KBO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한국 무대로) 복귀하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많은데, 선수 입장에서는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성공하지 못했어도 좋은 경험을 했고, 또 그만큼 성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키나와(일본)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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