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무 위 군대’ 김영민 “전쟁은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모순”

입력 2016-02-26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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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민을 만나자마자 영화 ‘일대일’(감독 김기덕)이야기를 꺼냈다. 2년 전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보는 관객이 없다는 이유로 김기덕 감독은 영화가 개봉한지 8일 만에 상영관을 내렸고 온라인 서비스로 전환을 해버렸다. 하필 그날이 인터뷰한 다음날이 될 줄이야. 이에 허사가 돼버린 인터뷰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는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다. 감독님도 상영관 확보를 위해 노력을 하셨다”라며 “그래도 ‘베니스데이즈’에서 작품상을 받아 위안이 됐다”라고 웃었다.

그는 현재 연극 ‘나무 위 군대’(제작 연극열전)에서 ‘분대장’ 역으로 열연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의 공격을 피해 올라간 용수나무 위에서 종전을 모른 채 2년을 지낸 두 군인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김영민이 맡은 분대장은 이미 전쟁에 질 것을 알고 있고 본토를 지키려는 신병에게 이러한 현실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도 국가가 전쟁에 졌다는 현실을 회피하고자 신병과 함께 나무 위에서 머문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나태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분대장은 종전임에도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고 나무 아래로 내려가길 거부한다. 이러한 분대장의 모습은 국가주의가 일으킨 전쟁의 모순과 삶에 대한 통찰을 말한다.

김영민이 ‘나무 위 군대’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문제의식을 잘 던진 글이라 생각했다”라고 입을 열었다.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가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하더라고요. 반전(反戰)작가이기도 하고요.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일본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하더라고요. 대본을 읽는 내내 반전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일본 상황에 맞춰 썼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생기는 분류, 그러니까 국가와 개인, 주류와 비주류, 개인과 개인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김영민은 프레스 리허설 당시 “연습을 하면서 분대장은 ‘국가’를 상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라며 “국가가 국민들에게 영향을 주듯, 분대장도 신병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까지 이기적인 인물을 연기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국가’라는 상징과 함께 분대장 역시 피해자임을 나타내고 싶었다”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분대장은 어릴 적부터 국가로부터 교육을 받은 사람이에요. 우리는 이 사람을 보면서 권력자, 지도자 혹은 ‘고정관념’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선 이 사람이 ‘국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하지만 전쟁에서 졌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고 신병에게 비겁해보일 수 있는 모습은 그가 전쟁과 국가의 또 다른 희생자임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나무 위 군대’에 공연되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는 무대에는 가득 채운 8m 높이의 뱅골 보리수가 있다. 김영민은 이 나무를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연기를 해서 보는 사람조차 혹시 떨어지진 않을지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는 호탈하게 웃으며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다”라고 했다.

“연습을 할 때는 2층의 세트를 두고 했어요. 발끝으로 중심을 잡고 연기를 했더니 다음날 온몸이 욱신거리더라고요. 그런데 극장에 들어와서 나무를 보고는 식겁했어요. 적어도 3층 높이는 되겠더라고요. 그런데 수없이 내리고 올라와서 이젠 괜찮아요.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죠. 늘 몸을 긴장시키며 연기하고 있어요.”


김영민의 전작을 살펴보면 유난히 어두운 색의 작품이 눈에 띈다.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마돈나’를 비롯해 ‘일대일’, ‘살인자’, ‘화이’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 ‘햄릿’, ‘에쿠우스’ 등 말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밝은 작품을 할 때는 왜 밝은 작품만 하냐고 묻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진하게 풀어내는 작품이라 밀도나 깊이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쩌면 코미디가 겉으론 웃긴데 가장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르일 거예요. 비극은 희극처럼, 희극은 비극처럼 연기하라는 어떤 말처럼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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