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 오승환. 스포츠동아DB
강풍·추운 날씨 악조건 이겨낸 내구성
돌직구 움직임에 ML홈피 커터로 착각
경기 후 “자신감 생겼다” 구위에 확신
‘역사가 시작됐다!’
세인트루이스 불펜투수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 오승환(34)이 2016년 코리안 빅리거 활약의 서막을 열었다. 오승환의 빅리그 데뷔전 현장은 4일(한국시간) 피츠버그 PNC파크였다. 세인트루이스 마이크 매서니 감독은 2016시즌 개막전부터 에이스 애덤 웨인라이트(6이닝 3실점)에 이어 곧바로 오승환을 투입했다. 0-3으로 뒤진 7회말 등판한 오승환은 첫 타자 맷 조이스를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존 제이소를 2루수 땅볼로 잡았으나, 앤드루 맥커친에게 또 볼넷을 내줬다. 1사 1·2루서 오승환은 데이비드 프리즈와 스탈링 마르테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위기를 벗어났다. 메이저리그 전체 첫 경기였던 이날의 주인공은 피츠버그 개막전 사상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며 4-1 승리를 이끈 프란시스코 리리아노(6이닝 10탈삼진 무실점)였지만, 한국 팬들에게는 오승환의 등판이 값을 매길 수 없는 순간이었다.
● 커터인 듯 커터 아닌 ‘오승환표 돌직구’의 위력
오승환은 첫 경기에서 27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가 12개에 불과했다. 상대한 5타자 중 4명과 풀카운트까지 가는 등 힘겨웠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았다. 바로 이 결과 자체에 오승환도 큰 가치를 뒀다. 오승환은 “스스로 (내 공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던지고 내려와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 자신감은 다름 아닌 돌직구가 미국에서도 먹힌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4일 미국 동부지역은 강풍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바람 끝이 차갑고 강했다. 피츠버그에는 전날 밤 눈까지 내렸다. 악조건 속에서도 오승환의 포심패스트볼은 최고 92마일(시속 148km)을 찍었다. 경기 실황을 내보내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이 포심패스트볼을 커터(컷패스트볼)로 표시했다. 그러나 오승환은 “나는 커터는 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승환의 직구 볼끝이 얼마나 살아 움직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범경기에서 드물었던(9.2이닝 4개) 탈삼진으로 위기를 돌파한 대목은 더욱 긍정적이다.
● ML은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곳!
오승환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2005년 개막전을 불펜투수로 시작한 것을 제외하면 10년 이상 마무리였다. KBO리그는 물론 일본프로야구(한신)에서도 구원왕에 올랐다. 그러나 2년 연속 45세이브 이상을 거둔 트레버 로젠탈이 버티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오승환은 중간투수 보직을 맡아야 한다. 오승환은 “(마무리나 중간이나) 무조건 점수를 주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유망주가 아니기에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는 것은 이미 늦은 것”이라는 말에는 최고 무대에서 겨루는 자의 고독감과 독기가 서려있다. 세인트루이스 매서니 감독은 “(첫 경기인 데다 날씨가 추워 힘들었을 텐데도) 잘 던져줬다”고 칭찬했다. 5일 개막전에 돌입하는 김현수(볼티모어), 박병호(미네소타), 이대호(시애틀), 추신수(텍사스), 그리고 최지만(LA 에인절스)에게도 무언의 격려로 다가올 오승환의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전이다.
워싱턴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