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표절논란 현재진행형…고동동 작가 누리꾼에 호소 [전문]

입력 2016-05-12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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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표절논란 현재진행형…고동동 작가 누리꾼에 호소

드라마 종영 후 잠잠했던 표절 공방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극본 류용재 연출 김홍선)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던 웹툰 ‘피리 부는 남자’ 고동동 작가는 온라인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8일 온라인 청원사이트 아고라에는 장문의 심경이 담긴 고 작가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고 작가는 “10년 준비한 작품을 어디에도 연재할 수 없게 됐다”며 “주변에서 법적다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더라. 저작권법상 표절은 인정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번 표절 논란은 지난달 20일 고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고 작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집필한 류용재 작가가 자신이 2014년 참여한 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었다”며 자신이 출품한 작품과 ‘피리 부는 사나이’ 간의 유사성을 제기했다.

그러자 류 작가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제작사인 콘텐츠케이를 통해 고 작가의 의혹을 전면 반박했다. 류 작가는 “2014년 고 작가가 응모한 공모전에 심사를 본 것은 맞지만, 원안을 확인한 결과 두 작품 사이 공통분모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고 작가가 주장한 제목이나 모티브 간 유사성에 대해서는 “독일 구전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미 수많은 영화나 웹툰 등에 영감이 됐다.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류 작가의 입장에 고 작가 역시 반박에 나섰다. 그는 “류 작가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유사한 장면이 수차례 발견됐다”며 법적대응을 시사했다.

그리고 양측의 첨외한 대립 속에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와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한국여성만화가협회, 대전만화연합, 전국시사만화협회 등 국내 만화단체들은 9일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고 작가를 지지했다.

만화단체들은 “명백한 절도 행위”라며 “공모전 출품작에 대한 운영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엄격한 시스템 강화를 촉구했다.


- 다음은 고동동 작가의 심경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동동 작가입니다.

저는 2016년 3월에 제작된 TVN드라마 “피리 부는 사나이”가 2014년 제가 제작한 “피리 부는 남자”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류작가는 2014년 광주 컨진 공모에서 “피리 부는 남자”라는 저의 작품을 심사한 심사위원 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 3개월 후,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드라마의 각본을 쓰셨습니다. 10 여 년간 “피리 부는 남자”를 준비하던 제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어디에서도 제 작품을 연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드라마 말미에 시작된 저의 표절의혹제기에 류작가는 사실관계와 다른 변명을 하고 있으며, 제작사는 무응답을 일관 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본 심사위원이 1년여 만에 똑같은 제목과 유사한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겁니다.

하지만 저의 이의 제기에 주변사람들은 걱정합니다. 법정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합니다. 표절은 저작권법상 인정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건 누군가 마음먹고 표절했다면, 즉 똑같은 대사와 똑같은 장면을 피하면 표절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저나 저 같은 신인들이 작품을 보호할 방법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방법 하나 뿐인 건가요?

매년 수많은 공모전이 개최 됩니다. 공모전에 응시하는 응모자들은 대부분 신인 작가이거나,
자신의 작품을 알릴 기회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공모전을 통한 입선은 작가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좁은 문’입니다.

바로 그 좁은 문 앞에 심사위원들이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에겐 귀한 시간을 쪼개는 시간낭비 일지 몰라도, 응모자들에겐 평생을 바래온 꿈을 위한 ‘좁은 문’ 입니다. 심사위원들은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경각심을 가져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 ‘좁은 문’을 통해 작가가 되었을 테니까요.

신인작가들의 마지막 희망인 바로 이 ‘좁은 문’에서 조차 표절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면, 이 세상에 새로운 창작자는 더 이상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 기성작가들은 손쉽게 신인작가의 아이디어를 가져가서 경력을 쌓고, 신인작가들은 아무리 열심히 작업을 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도 결코 데뷔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은 힘없는 신인들의 피해만 가져 오는 게 아니라, 창작 생태계의 신선한 공기, 새로운 개체들의 유입을 막아, 결국 창작 생태계를 파괴하는 심각한 일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기성작가들이 이런 맘을 먹고 심사위원이 되고, 신인들의 작품을 받아본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양심 있고, 자존심 가진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공모전 시스템과 저작권법은 일부 기성작가들이 마음먹고 신인작가의 작품을 도둑질 한다 해도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방조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일을 근절하기위해 가장 중요한건 기성작가들의 작가적 양심일 것입니다. 하지만 거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양심만을 믿고, 창작이라는 거대한 아이디어를 보호하기에는 그 장치가 너무나 빈약한 것입니다.

다시는 공모전을 통한 표절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와 법적규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각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지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상식’ 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상식’이 바로 우리들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얼굴인 겁니다. 저는 지금 바로 그 기본적인 ‘상식’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원천 창작자를 보호할 수는 있는 울타리가 모두의 ‘상식’이 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청원 글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tvN·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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