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외야석] 해설위원 장성호의 色? “시청자를 즐겁게”

입력 2016-05-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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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특유의 외다리 타법으로 2100안타 기록을 세운 장성호 KBSN 해설위원은 이제 배트 대신 마이크를 잡고 야구팬들을 만나고 있다. 야구해설가로서 목표는 ‘즐거운 해설’이다. 동아닷컴DB

■ 배트 대신 마이크 잡은 2000안타 레전드 장성호

“급해서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사직구장은 중계부스에서 남자화장실이 굉장히 머네요. 어쩔 수 없이 여자화장실을 썼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단 둘이 있을 때 대화가 아니다. 실제 야구중계 방송에서 나온 말이다. 방송을 탄 0.1초간 정적이 흘렀지만 모두가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경기가 이어지면 각 타자에 대응하는 수비 시프트, 그리고 수비 포메이션, 투수와 포수의 볼 배합 목적과 타자의 대응에 대한 설명이 청산유수로 이어진다. 현역에서 은퇴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장점을 극대화해 자신이 직접 타석에서 눈과 몸으로 체험한 투수의 공에 대한 느낌을 말할 때는 생생함이 묻어난다. 20년 동안 2100안타를 치고 은퇴했으며, 이제 배트 대신 마이크를 잡은 장성호(39) KBSN 해설위원의 이야기다.


처음엔 투수이름도 생각 안 나더라
웃음코드 맞추고 이제 디테일해설
여자화장실 해프닝 후 물 안 마셔

아이들이 선수때보다 더 응원해 줘
박수받고 떠나는 선수 축복받은 것
팬들이 야구 더 재미있게 봤으면…

장 위원에게 연락을 한 건 15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서재응(SBS스포츠)과 최희섭(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은퇴식 직후였다. 장 위원은 팬들의 뜨거운 눈물과 격려 속에 은퇴한 두 주인공과 함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였다. 해태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KIA를 대표했던 스타플레이어였기 때문에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한 장 위원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선수시절에 대한 회고가 궁금했다. 또 하나, 최근 프로야구의 큰 흐름인 해설가와 코치, 은퇴 후 양 갈래 진로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야구해설은 칼날 위에 서 있는 직업이다. 자칫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을 줄 때는 성난 파도처럼 비난이 이어진다. 철저히 중도를 지키고 정석대로 방송을 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혹평이 줄을 잇는다.

그 냉혹한 무대에서 해설 데뷔 첫 해, 장 위원은 점점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방송가에서도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좋은 해설가는 음성이 방송에 잘 어울리고 전문성을 갖추고 폭넓은 지식과 발로 뛰는 취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장 위원은 “시청자들이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시범경기부터 약 3개월간 해설가로 방망이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처음에는 긴장을 정말 많이 했다. 분명히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스스로도 모르겠더라. 전날 투수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난 적도 있고,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웃음에 코드를 맞추며 시작했다면 이제 디테일한 설명을 충분히 담는 해설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 생방송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정말 어렵다. 꼭 극복해야 할 과제다.”


-오프닝부터 경기 종료까지 방송시간만 4시간 이상이다. 신인 해설가들 모두 생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던데.

“하하하. 사직구장은 중계부스에서 남자 화장실이 정말 멀다.(중계부스와 기자실 전용 화장실을) 아무도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여자화장실을 급하게 썼다. 죄송하다. 목이 타서 물을 마시고 싶지만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참아야 한다. 또 희한하게 새로운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면 경기 중반부터 속이 더부룩한 게 화장실을 좀 더 길게 가고 싶어지더라. 꾹 참고 방송했다. 하하하.”


-투수에 대한 분석력, 수비 포메이션과 시프트 등에 있어 굉장히 해박한 지식이 느껴진다는 야구팬들이 많다.

“아직 부족함이 많다. 20년 동안 프로에서 뛰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동료 해설위원들이 다른 포지션 출신들이라서 많이 묻고 배운다. 수비 부분은 조성환 선배에게 질문을 많이 하며 한 번 더 공부했다. 많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있다. 중계는 경기장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면서 시청자들의 시각에서 최대한 바라보려고 한다.”


-kt에서는 최소 한 시즌이라도 더 현역으로 남아주길 원했다.(조범현 감독은 장성호 은퇴 전 “대타자와 같은 클럽하우스에 머물고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것 자체가 젊은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장성호 스스로도 더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은퇴 시기는 직접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뛰고 싶지만 팀이 없다면 아쉬움이 얼마나 크겠나. 해설은 꼭 해보고 싶은 직업이었다. 2010년대 초반 스포츠채널 프로야구 선수 당구대회에 출연했는데, 즉석에서 해설을 하게 됐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다. 야구를 더 재미있고 신나게 볼 수 있는 해설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이제 유니폼을 입고 배트를 휘둘렀던 아빠 대신 정장을 입고 마이크를 잡은 아빠를 TV에서 보게 됐다.

“광주에서 대전으로 다시 부산에서 수원으로 아이들이 아빠가 팀을 옮길 때마다 전학을 했다. 고맙고 미안하다. 처음 한화로 트레이드 됐을 때는 석 달 정도 혼자 살아보기도 했는데 가족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더라. 우리 아이들은 성격이 참 ‘쿨’하다. 아빠가 은퇴했을 때도 슬퍼하거나 아쉬운 모습이 없었다. 지금은 열심히 응원해준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걸 보니 좋은가 보다. 아들은 부상이라도 당하면 엉엉 울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없으니 안심하는 것 같다.”


-현역시절 9년 연속 3할 타자였다. 2100안타 기록도 세웠다. 화려한 선수생활이었다. 해설가로 첫 출발도 훌륭하지만 많이들 유니폼을 벗으면 아쉬움이 밀려온다고 하던데.

“돌이켜보면 솔직히 스스로 뿌듯하고 대견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계속 과거를 돌아보며 아쉬움 속에 있는 것보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해설을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다. 선수시절은 즐거운 추억이다.”


-스타 선수들의 은퇴 후 진로는 뚜렷이 양 갈래로 나뉘고 있다. 한 쪽은 코치, 다른 한 쪽은 방송 해설가다.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


“해설은 은퇴 후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려움도 있지만 꼭 해보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나 2∼3년 후에 자부심과 긍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일을 생각할 것 같다. 반대로 해설가라는 직업이 자긍심을 준다면 더 도전할 것 같다.”


-절친한 친구 서재응과 후배 최희섭의 은퇴식을 봤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야 KIA를 떠났으니…. 많은 팬들에게 박수 받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축복인 것 같다”

장 위원은 지난해 kt에서 뛸 때 “아이들이 질문으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묻더라, 두 아이가 태어난 순간, 그리고 큰 딸 서진이가 결혼하는 날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고,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온 야구를 그만둘 때 은퇴식 주인공이 됐을 때도 스스로에게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라고 했었다. 7월에 수원 kt위즈파크에서는 KIA와 kt의 경기가 열린다. 만약 은퇴식을 연다면 그 때가 가장 어울리는 무대가 아닐까.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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