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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재일교포 선수들은 슈퍼스타였고, 한국야구에 기술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3년 장명부(삼미)의 시즌 30승은 여전히 깨지지 않는 기록이며 요미우리 출신 김일융은 1984∼1986년 삼성에서 3년간 54승을 거뒀다. 이후 해태왕조의 시작 포수 김무종, 1989년 빙그레에서 타격왕에 올랐고 당시 연습생이던 장종훈 현 롯데 코치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고원부 등 재일교포 선수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러나 사실상 2000년대 초반부터 재일교포 선수들은 KBO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다. 노모 히데오의 단짝 포수로 활약하며 일본에서 19년을 뛴 김영화가 2003년 롯데에 입단했지만 단 7경기 만에 돌아갔고, 2003년 삼성에 입단한 고지행은 2005년 한화에서 은퇴했다. 이후 재일교포는 사실상 KBO에서 맥이 끊겼다.
그 많던 재일교포 선수들은 왜 사라졌을까.
최근 롯데는 형제구단인 지바롯데 등을 통해 영입 가능한 재일교포 선수들을 파악했다. 전력 보강을 위해서였다. 관계자는 “3세, 4세로 넘어가면서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꽤 이름 있는 선수와도 접촉을 했지만 한국행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얼마 후 결혼과 함께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선수생활 황혼기 때 한국행을 결심하는 재일교포들이 많았다. 그러나 KBO리그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다.
제도적인 변화도 제일교포 영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팀당 2명씩 재일교포 선수를 자유롭게 영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무조건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지명 후 구단과 계약해야 한다.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거물 재일교포를 찾아내 한국행 약속을 받아도 드래프트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구단이 먼저 지명할 수 있다. KBO리그 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재일교포 출신 야구인들은 KBO리그에서 큰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근 한화 감독이 재일교포였고 송재박 두산 코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10년간 뛴 실력파로 1988년 OB에 입단하며 고국을 다시 찾았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