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릭 “어느새 18년, 끝까지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

서점에 즐비한 자기계발 서적들을 살펴보다 보면 문득 ‘이 사람들은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할까’라는 삐딱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글로만 떠들어대는 두루뭉술한 조언이 아닌 경험을 해 본, 혹은 특정 분야에서 자리 하나를 꿰차고 앉은 어떤 사람이 직접 내게 말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더라. 데뷔 18년 차 그룹 신화의 리더이자 배우 에릭(문정혁)의 입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죠”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의심의 여지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생명력이 짧은 아이돌 세계에서 에릭은 20년을 바라보는 그룹 신화의 리더이자 연기자로서도 자신만의 색을 구축해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 연예인이다.

“활동을 오래 했음에도 ‘내가 뭘 더 보여줘야 하나’라는 식의 고민을 많이 하진 않은 거 같아요. 신화면 신화, 연기자면 연기자 이렇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죠. 무엇보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활동했어요. 신화로서도 배우로서도 좋은 작품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유명세를 얻고 싶다는 마음도 전혀 없고요.”


MBC 드라마 ‘불새’(2004)를 통해 연기자 문정혁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그는 “당시보다 지금이 더 좋다”며 “솔직히 ‘불새’ 때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내가 공감한 캐릭터를 연기한 게 아니다”라고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또 오해영’은 어린 친구부터 부모님 세대까지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죠. 제 주변만 봐도 어머니 친구분들이 팬이셨어요.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드라마를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죠. 오해영과의 사랑이야기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해영의 가족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따뜻했어요.”

에릭은 ‘또 오해영’에서 서른 중반의 음향 감독 박도경으로 분해 동명의 오해영‘들’에서 극의 중심을 잡으며 로맨틱코미디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자연스러운 눈빛과 대사 처리가 박도경을 현실 남자친구로 느끼게 했다. 연기를 잘하는 가수에 지나지 않던 에릭이 MBC ‘케세라세라’(2007), KBS2 ‘연애의 발견’ 등으로 꾸준히 로맨틱코미디물에 도전, 그만의 로맨스 연기 세계를 구축해가면서 쌓은 로코 연기가 응집된 듯 노련했다.

“박도경 캐릭터는 연구하면서 힘들었다기보다는 실제로 연기를 하면서 더 힘들었어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친구잖아요. 감정 표현이 서툰 박도경을 제 표정, 대사로 설명하기 보다는 제작진이 깔아놓는 음악, 영상미 등과 잘 어우러지려고 했어요. ‘또 오해영’ 제작진들은 영상 끝판왕들이시죠. 제가 예전에 출연했던 작품들을 다 연구하셔서 멋있게 나오는 각도를 찾아주셨더라고요. 쪽대본이 아니었는데도 밤샘 촬영을 한 이유가 스태프들이 완성도를 위해 욕심을 내줬기 때문이죠.”


박도경에 대해 “멋있는 놈”이라고 한 에릭. 실제 연애할 때의 에릭은 박도경보다 멋있을까? 그는 “박도경이 훨씬 멋있다”고 빼면서도 자신의 매력을 은근히 어필했다.

“박도경이 더 멋있죠. 근데 비슷한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웃음) 여자를 대하는 부분? 도경이는 내색을 안 하면서 챙겨주잖아요. 비슷해요. 결혼은... 하면 좋겠지만 제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예전에는 막연하게 아빠라는 게 멋있어보여서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었는데 이제는 진짜 나이가 먹으니까 현실로 와 닿더라고요. 어쨌든 이번에 촬영하면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박도경은 제 인생 캐릭터고, ‘또 오해영’은 제게 전환점을 마련해준 작품입니다. 이렇게 사고 없이 현장 분위기 좋고 시청률까지 좋은 경우가 없었거든요. 전 항상 반대의 상황에서 일했죠. (웃음) 여러 가지로 다 좋았어요.”

인터뷰는 드라마와 연기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기승전‘신화’였다.

“차기작은 아직 모르겠어요. 우리 팬들은 자꾸 사이코패스 역할을 해달라고 하는데 팬들이 왜 그런 걸 좋아하지? (웃음) 일단 하반기에 신화가 컴백을 합니다.”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사진제공=E&J엔터테인먼트